대항하는 정체성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자아 혹은 집단이나 조직의 아이덴티티이다. 아이덴티티는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를 나타낸다. 만약 이것이 지속적이지 않고 매 순간 바뀐다면 그것을 정체성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정체성이 항상 동일하고 반복적일 필요는 없다. 정체성이란 상황과 사건을 통해 조정되고 교섭되면서도 지속성이라는 틀을 유지하는 자기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변화하는지가 사회학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시민의 도시, 서울』은 정림건축문화재단이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일환으로 기획한 시민 교양강좌의 강연을 글로 정리, 편집한 책이다. ‘사회적 자본’, ‘공동의 부’, ‘지역공동체’ 등의 큰 주제를 아우르며 사회학자, 행정가, 건축가, 활동가, 도시학자, 정치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를 통해 도시의 공공성은 무엇이며, 시민은 어떤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고통을 받는 자와 고통을 주는 자 최근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고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예술/ 카페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포럼이 있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하나같이 ‘빚’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공간을 운영할 때 빚은 시종일관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테이크아웃드로잉 뿐만 아니라 다수의 상가세입자들은 입주 시 내부공사, 권리금 등에 초기투자를 할 수밖에 없고 이 비용은 많은 부분 빚으로 충당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건물주의 일방적인 퇴출통보는 초기투자비용을 회수하고 빚을 갚을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최악의 상황을 세입자에게 강요하게 된다.
심보선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청중을 향한 것인지, 그냥 혼잣말인지 구분이 어려워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최근 ‘대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절, 단어, 문장, 문단 사이에 짧지 않은 침묵과 골똘한 눈이 하는 이야기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은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와 ‘대화’에 관해 좀 더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1
예술은 어떻게 공동체에 가 닿는가 예술을 공동체에 연결시키는 가장 흔한 논리는 “예술은 고유의 재현적 규칙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표현한다”라는 진술에서 잘 나타난다. 이 진술에서 “재현적 규칙을 통한다”라는 말은 예술적 테크닉을 발휘하고, 관습을 적용하고,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예술은 ‘그럴듯함verisimilitude’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재현하는 동시에 이 재현을 통해 바람직한 공동체를 구현하고 공공선에 기여해야 한다. 이 같은 재현론의 발의자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Poetics』 에서 재현할 수 있는 대상과 재현할 수 없는 대상을 구별한 것은 시적 재현이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미치는 도덕적, 정서적 영향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인이 영웅이 아닌 악인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그의 작품은 시민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며,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
원하는 집을 찾아 평생 떠돌아다니기에 우리는 방랑자다. 대부분 그 끝은 율리시스의 귀향길 같이 화려하지 않다. 일본의 도시형 수렵채집생활 제안자 사카구치 교헤Sakaguchi Kyohei는 돈과 자본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건축의 본래 의미를 모색한다. <움직이는 집> 프로젝트로 한국을 방문한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꿈꾸는 자유로운 주거 방식에 대해 들어본다. 이어서 교헤가 제시하는 세계에 대해 “현실로 작동하도록 디자인된 픽션”이 실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심보선 시인의 글을 통해 되짚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