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던 땅에서 내몰린 신원 미상의 존재에 대한 전시 두 개가 8월 7일까지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1, 2관에서 열린다. 《홈리스의 도시》와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 그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여기 분명히 있음에도 투명한 존재로 여겨지거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줄 알았지만 여전히 이곳에 봉인되어 있으며, 제도권과 무관해 보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존재들의 아슬아슬한 삶을 조명한다.
스스로의 만족에 갇힌 사람들 “‘회의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Douter, c’est penser.” 데카르트의 말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회의하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은 부부 사이조차 설득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부부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을 때 대화를 통해 드러내고 가깝게 지내도록 노력하기보다는, 차라리 덮고 지나가는 편을 택한다. 얘기를 꺼내보았자 합의를 이루기보다는, 말다툼으로 마감되는 경험을 주로 해왔고 또 하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의 기존 생각에 대해 회의할 줄 모른 채 고집하기 때문인데, 애정으로 맺어졌고 대화를 나눌 시간도 충분하고 계급적 처지도 동일한 부부 사이에서조차 설득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
동화주의의 폭력성 다수결의 원칙에서라면 당연히 다수가 승리한다. 소수는 지는 편, 승자의 배경이다. 배경이 된 인간에게는 목소리나 인간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한 사회의 규범과 상식, 도덕을 곧 자신의 일상적 에토스의 기반으로 전유하는 이들에게 다수성은 그 자체로 선이고 정의이다. 사회의 안전과 안정은 곧 다수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는가 혹은 관철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소수를 위한 정책은 ‘예외적’으로, 크나큰 시혜로서만 존재한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를 따르는 근대적 국가는 많은 사람을 ‘우리=선량한’ 시민들로 호명하면서 아직 충분히 선량하지 못한 시민들을 훈육, 통제하는 장치들을 체계화했다. 소수자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여성, 어린이, 청년, 장애인, 동성애자들로 한정한다면― 는 선량한 사람으로 자신을 조직화하고 동화시켜야 할 임무가 주어진다. 가령 ‘장애인도 사람이다’와 같은 구호는 기존의 ‘인간(성)’의 정의(定義)에 스스로를 꿰어맞추는, 기존의 인간 규범에 편입되려는 소수자 편의 제스처를 가시화한다. 소수자의 소수자성(타자성!)을 희생하는 대신 주류의 인간성으로 이전하려는 이와 같은 동화주의(assimilationism)는 먼저 국민이나 인간으로 진입한 이들의 궤적을 소수자들이 또 반복하고 강화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미래’는 현재 선량한 시민들 다음에 자신들을 좋은 이름으로 부를 시간, 공간의 은유이다. 그렇게 다수결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는 서구화, 근대화, 인간화, 국가화, 정상화를 함께 끌고 앞으로 전진하는 체제이고 이데올로기이다. 안전과 안정에 대한 문화적인 희구는 양순한 신민들(subjects)로서의 인간 주체의 조율 혹은 출현, 혹은 인간 삶의 억압을 알린다.
소수자, 표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일반적으로 소수자를 ‘신체적 또는 문화적 특징 때문에 사회의 다른 성원들에게서 차별을 받으며,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즉 소수자란 자신이 지닌 어떤 특징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주류/지배 집단으로부터 차별받는 비주류/하위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이러한 소수자들은 역사상 존재했었고 어떤 시대에는 활발한 인간상으로 인정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억압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수자를 사회적 약자, 혹은 수적으로 적고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것 같거나 뭔가 수탈당한 존재 같은 등의 의미로 인식한다. 그래서 소수자를 약자나 패배자나 주변인으로 개념화하고 인정을 해 주자는 인식이 주조를 이룬다. 소수자운동조차 인정투쟁이라고 개념화하기도 한다.
소수자로서의 차이에 대한 강박 누구나 직업적, 전문가적, 오타쿠적 강박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나의 강박은 비슷한 것들에서도 차이를 찾으려는 것이고, 개념을 교란하는 감각의 산란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칸트의 용어로 말한다면 유사성을 찾고 범주화하고 원리나 개념을 끌어내는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 오직 하나의 경험에 풍덩 빠지는 훈련을 오랜 시간 해와서 일 것이다. 미학자로서, 미적인 것the aesthetic에서 윤리적, 정치적 가능성을 찾는 동시대 담론들의 맥락 안에서, 극단적 차이로서의 작품을 보호하고 작가의 생존법을 세속의 평균적 감수성에 전달한다. 예술은 번역불가능한 지방어vernacular에 대한 것이고, 표준어와의 환원불가능한 거리로 존재근거를 정당화한다. 너무 일찍 태어난 저주받은 작가에서 살아생전 명성과 부를 쌓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진저리나는 가난에서 무욕한 방탕에 이르기까지, 무병장수에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넓고 가지각색이다. 미학자로서 특히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그녀가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대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유를 쟁취하고 시대를 확장시켰는가에 있다. 따라서 내게 작가는 사회의 맹점이고, 사회의 미래이다. 그렇지 않은 작가들, 이미 충분한 해석을 거친 작가들마저도 그런 상태로 되돌리려고 애쓴다. 무엇보다 내가 즐기는 것이고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