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난. 이 말 하나를 곰곰이 살펴보고 싶다.
광화문을 바쁘게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보통 어떤 표정도 읽히지 않는다. 기쁨이나 슬픔 등의 감정을 드러낼 틈 없이 하루하루 생존하기에도 바쁜 곳이 서울이다. 높은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 직장인과 취업준비생들 모두 ‘불안’이라는 단어와 함께 산다. 높은 강도의 노동을 서로에게 요구하며, 모두가 지쳐있음을 확인하는 재미로 사는 도시. 그러나 이런 여유 없는 삶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울을 떠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서울에는 일자리가 있고, 거의 모든 문화 기반이 몰려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삶의 대부분이 상품화·시스템화되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예술과 정치는 어떤 공통의 지평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는 공동체 안에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괴물이 되어가는 미디어 속에서 우리 스스로 책임 있는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일상으로의 복귀를 주저하는 동안, 정치학자 박상훈과 예술가 임민욱이 만나 이러한 질문들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