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한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 한국과 독일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두 나라의 현대사를 아는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나라가 분할되면서 수십 년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가 첨예하게 대결했던 분단국가이자 냉전의 최전선이었다는 (정치적)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나라가 분단된 이유는 다르다. 독일은 전범국가였기에 분단이 처벌의 의미를 가졌지만, 한국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의 명백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미국(자본주의)과 소련(사회주의)의 대결구도 속에 억울하게 분단된 경우였다.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닌다나이 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너갈 때마다나는 나의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이런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왔다)— 김수영, 「현대식 교량」(1964)에서
발전국가와 메가스트럭처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상흔이 남은 여러 도시들의 한편에서는 시민들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소형 필지에 새로이 비공식적 주거를 지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행정가 · 정치가 · 기업가들이 필지를 대형화해가며 도시 재건을 꿈꿨다. 이러한 전후 도시의 상황은 아방가르드 건축가가 권위와 획일성에 대항해 시민을 위한 변화, 다양성, 자유의 문제를 재고하는 폭발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1960년대 메가스트럭처(megastructure)는 전후 프로젝트에서 공유된 대안적인 도시계획의 개념이자 특권적인 초국가적 건축의 흐름으로 평가돼왔다. 이는 영국 아방가르드 네오 퓨처리스트에게 ‘인간환경의 통합적인 디자인으로 거시적 레벨에서 (건축가의) 통제와 질서가 강조되는 반면 미시적 레벨에서는 (시민에게) 소비 · 여가 · 무질서의 자유가 제공되는 것’1이었으며, 일본의 메타볼리스트(metabolist)도 서구 건축가의 작업과 더불어 그 지구적 상황을 함께한 사회운동으로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발전국가 프로젝트를 메가스트럭처로 규정하는 것은 조금 더 복잡하다. 그 건축은 ‘서구에 보내는 메시지’2로 다소 압축되거나 오리엔탈리즘의 열망을 추구한 ‘파생적인 모더니티’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1966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종묘에서 남산까지 서울 시내 총 8개의 블록을 근대적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재개발 계획을 맡았다. 이듬해, 세운상가는 오래된 도심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가로지르며 등장했다. 이후 이 거대 구조물은 주변의 사용자들에게 서서히 잠식당하며 도심 영세 산업의 숙주로써 개발 압력에 버티며 50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세운상가를 활용한 공공영역의 재구축 시도가 새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동시에 세운상가 주변 블록에 대한 재개발 압력 또한 커지고 있다.
세운상가, 다시 살아나다 종묘 앞 큰길 너머에 낯선 이름, ‘초록띠 공원’이 있다. 2008년 말, 세운지구 들머리 현대상가 아파트를 보상에만 1,000억 원을 들여 허물고 들어선 공원이다. 이후 세운상가군 자리를 대신 할기다란 ‘띠’ 모양의 공원을 예비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러나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초록띠 공원은 아직 그 모습 그대로이며 나머지 세운상가군 역시 그대로 서 있다. 2013년 6월 25일, 세운상가군을 그 인근 재개발 지구로부터 분리한다는 서울시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인접한 세운지구도 블록 전체를 전면철거 후 재개발하는 방법 대신 기존의 조직을 살리며 작은 단위로 정비해 나가겠다는 이른바 수복적 계획으로 변경을 알렸다. 도대체 이 사태의 전말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남기고 있는가?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