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식 이다미(플로라앤파우나) 세대 감각과 관련해서는 나이가 달라도 디자인툴이나 디자인 방식, 작업을 다루는 관점이 비슷하면 동시대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출생연도 기준으로 윗세대와 느끼는 차이점은 윤리의식이다. 자신이 설계공모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는 윗세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도 슬프지만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다니 끔찍하고 의아하다. 여전히 인맥과 같은 영향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특혜와 로비가 자랑은 아닌 시대 아닌가. 또 우리 세대는 어떤 건축가의 제자도 아니고 어떤 건축가의 정신도 이어받지 않는 것 같다. 어떤 건축적 맥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보다는, 했을 때 내가 행복할 만한 작업을 하려는 느낌이다.
한국적인? 내 작업이 어딘지 모르게 한국적인 구석이 있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는 ‘너무 각 잡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약간 풀어지는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치밀해지는 순간 탁 내려놓는 것이다. 일본 건축에서 별거 아닌데도 끝까지 쪼개어 가면서 작업하는 걸 볼 때 약간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 건축에서는 한 수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게서 양면성을 느낀다. 그게 바로 ‘한국적인’ 지점인가 생각했었다.
앞세대가 건축 담론을 위한 설계 작업에 몰두했다면, 동 세대 건축가들은 앞세대의 무거움을 덜고 넓어진 건축가의 스펙트럼 위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간다. 작업을 보여주는 매체와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조건이 달라졌을 뿐, 이들이 건축을 대하는 진지함과 고민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중 ‘앞세대와 차이, 동 세대와 공통 분모’에 대해 이야기한 건축가 여섯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젊은건축가상의 유효기간’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고는 젊은 건축가에 대한 관심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젊은건축가상 또한 10년이 넘었는데 왜 새삼스레 또 젊은 건축가일까 생각했다. 아마도 그 출발점에서 그들 세대와 지금의 현상에 대한 의심, 그리고 전환적 모색을 기대하는 것 같다. 유효기간이라는 말 자체가 모종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젊은 건축가라는 계층이 상품화되고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참이다. 이 상을 밖에서 바라보며 응원하는 한 명의 건축인으로, 그리고 젊은건축가상 단행본의 필자와 에디터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동 세대와의 공통분모’에 대해 이야기해준 다섯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이들은 일과 삶을 같이 즐기고 싶어 하고, 소규모 예산의 현실 속에 씨름한다. 상황과 처지가 같기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같은 세대 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앞 세대와 달라진 점’에 대해 이야기해준 일곱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이들이 학부시절과 책에서 마주한 앞 세대 건축가들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에 집중했다. 앞 세대와 달리 대중이 건축이라는 분야를 접하기 쉬워진 오늘날, 어떻게 건축을 다룰지 고민하는 젊은 세대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젊은 건축가’는 은밀한 포식자다. 올해로 22회를 맞이하는 ‘김수근건축상’에서도 그랬다. 최-페레이라건축(최성희·로랑 페레이라)의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이 최종 수상을 했고 프리뷰상에는 네임리스건축(나은중·유소래)의 <동화고 삼각학교>, EMA건축(이은경)의 <만리동 예술인협동조합 주택>, 스튜디오아키홀릭(정영한)의 <6×6 주택>, 유경건축(권경은·지정우)과 ANM(김희준)의 <파주 청석교회>, OBRA건축(Pablo Castro·Jennifer Lee)의 <삼하 유치원> 총 다섯 팀이 올라왔다. 1970년대 생 건축가가 대부분이다. 2010년 21회에는 조병수건축연구소(조병수)의 <땅집>이 선정됐으니 22회를 맞은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상은 중간의 ‘한 세대’를 빼놓고 가는 느낌이다. 60년대 생이 바로 그 세대로 5년 전 공간사와 네이버에서 진행한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12인’ 중 10명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할 때와 비교하면 아찔한 속도감까지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젊은건축가상’에 의해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젊은 건축가’라 불리는 70년대 생 건축가들을 본격적으로 주목할 때를 맞은 것일까?
허영심이 남긴 페허 2008년 10월 전 세계가 뉴욕 발 금융위기로 휘청 거릴 때 우리는 뉴욕에서 사무실을 열고 일을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1997년 한국의 IMF와 2001년의 9·11 테러로 인한 미국의 경제위기를 거쳐,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발 금융위기까지 근 10년 동안 무려 세 번에 걸친 경제위기를 경험했다. 그 10년 동안, 글로벌 금융자본의 크기는 1997년에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망칠 정도에서 전 세계를 망칠 정도의 크기로 커져 있었다.
표현 도구에 지나지 않는 ‘젊음’ 건축가 앞에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문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1 하지만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는 백년을 지속하는, 혹은 천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건축물에 대체로 가려져 있다. 이는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건축가들의 말과 그것이 기록된 사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비로소 전 세대의 건축가를 갖게 되었다”는 전봉희 교수의 말처럼, 이제 “우리의 건축계는 학생부터 은퇴 세대까지 전 세대가 현 체제 속에서 경험과 인식을 공유하는 긴 당대”2를 갖게 된 것이다.
경험 경험은 특정 장소에서 얼마간의 시간 동안 마주친 현상을 통해 지식과, 규범 그리고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집적은 단순히 층위를 이르는 퇴적에 그치지 않고 마주하는 과정과 결과에 효력을 발휘한다. 또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역사적 관성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사회의 일부로 작동하며 이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주관화된 관성으로 확증한다. 건축행위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경험의 중요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건축가로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관계들, 즉 사람들(건축주, 허가권자, 공사 관계자)과 사물들(재료와 구법) 그리고 새로이 형성될 풍경에 이르기까지 경험의 부재는 어느 지점에서든 시행착오를 가져온다. 이는 건축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건축이 만들 사회적인 관계까지 폭넓게 작동하며 경험을 통한 건축의 완결성을 결정하게 된다.
‘대서사’를 조상으로 둔 우리 건축문화는 건축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여러 개의 단어를 가지고 있다. 건축가, 건축사, 설계사, 그리고 그 와중에 또 젊은 건축가 혹은 신진 건축사라는 말이 등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새건축사협의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젊은건축가상’의 지원 자격이 정의하는 젊은 건축가 집단은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45세 이하의 건축하는 사람이다.
세대론은 대개 젊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특히 20대 대학생의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6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60년대 대학생(40년대 생)은 4·19세대, 70년대 대학생(50년대 생)은 유신 세대, 80년대 대학생(60년대 생)은 민주화 운동권 세대로 엮인다. 10여년 전 386세대가 호출될 때 세대론의 정확한 위상이 드러났다. 당시 30~40대를 현재의 시점이 아니라 그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겪었던 경험의 공유에 기대어 묶어냈던 것이다. 정치적 격변은 사라졌지만 20대 대학생을 세대론으로 묶어 호명하는 것은 9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건담의 ‘뉴타입’이나 에반겔리온의 ‘신인류’처럼 90년대 X세대는 새로운 시대, 세대 단절의 표상이었다. 최루탄 냄새가 사라진 학교를 다녔던 첫 세대인 90년대 대학생(70년대 생)은 정치적 주체가 아닌 대중 문화의 주체로 거듭났다. <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영화나 드라마 등이 호출하는 90년대는 모든 것이 디지털과 자본에 의해 재편되기 전이자, 기획사와 스타시스템 없이 음반이 백만 장이나 팔리는 ‘아름다운 시대belle époque’로 기억된다. 정치가 사라진 후 대학생은 그냥 대학생이었을 뿐이었고 세대론 역시 사라진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