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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진 동네책방 어릴 적 동네 골목을 한참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이 정류장 앞에 작은 서점과 구둣방은 잊지 못할 놀이터였다. 친절한 구둣방 아저씨와는 쉽게 친해졌다. 상표가 모호한 구두들을 팔기도 하고 고단한 구두 뒤축도 갈아주던 아저씨는 손재주가 좋았다. 쓰다 남은 가죽과 고무줄, 철사로 만들어 주셨던 새총을 뒷주머니에 넣고 뽐내면서 돌아다녔다. 동네에서 가장 미끈한 이 새총에 정성껏 주워 모은 자갈 탄을 장전하고 참새를 잡겠다고 뛰어다녔다. 훌륭한 사냥꾼은 못되었지만, 도구는 멋있었다.
독립출판에 대한 대중적인 호기심이 처음 생성되던 시기에 제작자들이 공통적으로 받았던 세 가지 질문들이 있다. “당신은 누구냐?”,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느냐?”, 그리고 “언제까지 할 것이냐?”였다. 첫 번째 질문은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 사람일까?’ 하는 그나마 순수한 호기심에 가깝다. 두 번째 질문부터는 호기심보다는 잠정적인 전제가 담겨있다. 분명 이익이 생기는 일은 아닐 텐데, 모자라는 비용 내지는 손해를 어떻게 메우느냐는 것이 두 번째 질문이었고, 그렇게 손해가 누적되는 활동이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 텐데 그 시기가 언제쯤이 될 것으로 보느냐가 세 번째 질문이었다.
1. 멀티플의 유통 공간 – 아트 메트로폴 AA 브론슨, 펠릭스 파츠, 호르헤 존탈이 조직한 작가 콜렉티브 제너럴 아이디어는 1974년 토론토에 ‘아트 메트로폴Art Metropole’이라는 기관을 설립한다. 그들이 밝히는 아트 메트로폴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아티스트북, 멀티플, 비디오, 오디오, DVD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를 전시, 홍보, 출판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은 실험적 예술에 대한 애정 이외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에디션을 유통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에디션은 복사(복제) 테크놀로지 안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개념으로, 당시 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플럭서스 운동과도 잘 어울렸다. 제너럴 아이디어에게 현대미술은 상품의 형식을 통해 유통될 수 있는 (개념의 확산보다는 ‘작품’ 소유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파일>(1972~1989)과 같은 잡지나 단행본 출판처럼 예술 활동을 기록, 수집, 보존, 연구, 유통하는 일도 병행했다. 지금까지도 캐나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아래 서점과 아카이브, 연구 학술 기관으로 토론토에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