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한국관: 국가 건설의 건축가들 ‘동시대’를 열망하다
신정훈
11,995자 / 24분 / 도판 20장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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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에겐 부럽습니다. 국가 건설의 시기 한국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개인보다 국가나 민족이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2 1985년 11월 도쿄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김수근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에게 이처럼 부러움을 드러냈다. 이소자키가 자신은 단게 겐조나 김수근처럼 “국가의 건축”을 고민하기보다 “국가를 등지고” 건축을 시작했다는 언급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이소자키의 언급은 김수근의 건축 이력을 정확하게 요약한 듯 보인다. 1959년 도쿄예대 대학원 동료들과 함께 남산 국회의사당 설계공모 당선으로 화려하게 데뷔하고, 1984년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의 감격스러운 완공을 보았던 김수근의 이력은 많은 면에서 일본의 국가 건축가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단게와 함께 자신을 위치 지은 이소자키의 언급에, 김수근은 긍지보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아마도 단게가 있었기에 그런 책임으로부터 놓여나 있던 같은 나이의 일본인 친구에게 오히려 부러움을 표했다. 뒤이어 “이 점에 있어서 이소자키 씨는 자유롭게 (건축을) 했습니다.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