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도시: 〈환상 도시〉를 만들면서 자생적으로 근대국가를 구축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 한국인에게 ‘모더니즘’이란 결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전시 준비를 시작할 무렵은 세월호의 트라우마가 ‘국가’에 대한 재고를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을 때였고, 1960년으로부터 소환하는 위태롭고도 화려한 총체적 에너지는 오늘에 대한 거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이지적인 청년이 낭만적인 중년이 되거나, 궁극으로는 고전에 귀의하고 마는 과정을 자주 보았다. 그러나 김중업의 낭만성은 처음부터 소질素質(<필그림 홀>, 1956)이며, 중년의 생의生意(<서산부인과 병원>, 1965)를 세우며, 말년에 흥융興隆(<서울올림픽 평화의 문>, 1985)한다.
올해 한국 건축계는 ‘없음’이라는 이슈가 지배했다. 학문적 제도적으로 겪고 있는 한국 건축의 정체성 혼란과 거울의 자리를 비워둔 채 사냥감 몰이에 급급한 현재 건축계 모습이 그 이유다. 지금이라도 한국 건축은 주체성을 갖고 공동의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건축에서 ‘지역성’ 논의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기도 했고, 입장에 따라 그 해석도 달랐다. 이 시점에서 다시 지역성을 이야기한다면, 개인이 중심이 된 열린 개념일 것이다. 10월 8일 이화여대에서 김광수, 황두진, 배형민, 김일현, 임근준 씨가 모여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란 주제로 열띠고 사방으로 튄 토론회를 가졌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