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식 이다미(플로라앤파우나) 세대 감각과 관련해서는 나이가 달라도 디자인툴이나 디자인 방식, 작업을 다루는 관점이 비슷하면 동시대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출생연도 기준으로 윗세대와 느끼는 차이점은 윤리의식이다. 자신이 설계공모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는 윗세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도 슬프지만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다니 끔찍하고 의아하다. 여전히 인맥과 같은 영향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특혜와 로비가 자랑은 아닌 시대 아닌가. 또 우리 세대는 어떤 건축가의 제자도 아니고 어떤 건축가의 정신도 이어받지 않는 것 같다. 어떤 건축적 맥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보다는, 했을 때 내가 행복할 만한 작업을 하려는 느낌이다.
돌돌돌 얼마 전 트위터에서 떠내려오는 이미지들 사이로 성당 앞에 걸린 “모든 돌은 천국에 갑니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모든 돌이 천국에 간다니 천국이 있기는 한 지 내가 천국에서 기다릴 수 있을지 돌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죽음도 있는지 모든 돌이 착한지 신은 이름 없는 돌을 무엇이라 부를지 천국에도 중력이 여전해서 돌이 언제나처럼 가장 아래에 자리 잡을 것인지 신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지만 여기는 건축신문이니 세부적인 논의는 잠시 미뤄 놓겠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돌,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에 나름의 생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들이 주고받는 생기 사이로 공명하고 싶다는 소망, 이 모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불가능한 사랑의 마음, 그리고 세상에서 비인간적인 건 인간밖에 없다는 인간화 된 자연에의 각성 말이다.
라이프건축은 황수용과 한지영이 2016년 서울 부암동에서 시작한 작은 건축가 그룹이다. 우리는 라이프를 시작하기 이전에도 다수의 공모전을 함께 작업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 신뢰라는 것이 두 사람이 같은 방법론과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다르다. 쉽게 설명하자면, 황수용은 도시나 사이트의 경관, 주변과의 관계에서 건축 설계를 시작하고, 한지영은 내부의 프로그램이나 동선, 사람이 건축 공간에서 경험하는 감각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한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지 다양한 지점에 대해 서로를 설득하고 인정하며 결국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간다.
실무,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운 시간 이복기 졸업 작품 발표회 크리틱으로 만난 장영철 소장님과의 인연으로 와이즈 건축에 입사했다. 원클럽맨처럼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걸 꿈꿨기 때문에 와이즈 건축에서만 8년을 일했다. 그동안 포럼, 전시부터 주택, 근린생활시설, 박물관, 기업 사옥까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실무 경험 중에서도 지금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장영철, 전숙희 소장님이 시공자 등 협업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다. 프로젝트에서 결정을 내릴 때 그런 부분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장 소장님은 아이디어를 키워나가는 것에 관심이 많고, 전 소장님은 매우 꼼꼼하게 풀어가는 분이다. 이처럼 두 소장님의 성향이나 관심사가 매우 다름에도 조화를 이루며 한 단계씩 일하는 법을 배웠다. 노말의 세 소장도 성향이 완전히 다르지만, 두 분에게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서로 채워주고 맞춰가고 있다.
사무소는 10여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선후배로 같은 시기에 공부했고, 부부가 되어 함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다른 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했기에 피할 수 없는 의견 차이는 있고, 아직은 특별히 정해진 것 없는 유연한 상태로 건축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건축가입니까?’라는 질문이 매우 어색하고, 우리도 우리가 어떤 건축가가 될지 무척 궁금하다.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대학 시절부터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도 도시와 관련된 역사와 인문학 수업으로 서울 동네 답사를 다닐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볕이 좋은 날, 틈이 생기는 날이면 함께 산책하며 도시 구석구석을 관찰하곤 했다. 가려지고 덧대어진 것을 발견하고, 무심코 지나치던 많은 것을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재밌고 신선한 것들은 사진으로 기록해두는데, 나중에 들춰보며 도무지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 모르는 것들과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에 즐거워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경험하는 풍경들 속에 우리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남겨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