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디자인하는 건축가 건축가라 자처하며 여러 해를 보냈지만, 아직 의뢰가 많지 않아 시간이 남을 때가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궁리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해서 가구나 명함과 같은, 건축설계가 아닌 다른 분야의 디자인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명함 디자인의 경우는 ‘개인 명함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인 정체성이 아닌 스스로가 부여한 개인의 정체성을 건축가와 의뢰인이 함께 탐색한다는 명분을 겸하고 있다. 영문명이나 직장명 등을 표기하는 관습 하나하나를 의심하면서 반드시 드러내고 싶은 것들만을 골라낸다든지, 여백의 개념에 구애받지 않고 지면 전체를 활용하여 정보를 배열한다든지, 명함의 앞 뒷면을 두 개의 분리된 평면이 아닌 서로 간섭하고 관통하는 두 공간의 경계로 해석한다든지, 글자가 의미가 아닌 형상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주목한다는 것 등이 내가 세운 나름의 명함 디자인 방법론이다. 이런 과정에서 건축가로서의 기질이나 스타일이 은연중에 배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늘 의식하는 것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닌 건축가로서 명함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다. 이런 물음에 기대하는 답변이 나올 때도 가끔은 있다. “이유를 콕 짚어 말하기 힘들지만, 왠지 건축가가 디자인한 명함답다”라는 식의 반응으로 말이다.
디자이너 정진열은 디자이너라는 기질을 활용하여 도시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도시에 대한 관찰은 결과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정체성, 개인과 집단, 상호관계성’은 도시라는 장소에 대한 이해에 진입하는 매개체이다.
미래의 무늬, 그리고 기록의 언어충실한 기록과 리서치로 구성된 작품은 비밀의 장소에서 보내는 미래의 신호처럼 다가온다. 디자인에서 사람과 도시를 마주하게 하는 디자이너 김영나와 컴퍼니COMPANY를 인터뷰했다. 그들의 디자인은 기억과 기록을 망각의 공간으로 옮기는 대신,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으로 기능하며,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주어진 조건이나 문제해결 모색이 곧 프로젝트의 시작이며, 논리적이고 감각적인 사유는 디자인의 기반이 된다. 디자인의 의미와 경계가 모호해지는 가운데 동시대 디자인의 정의를 생각해보기 위해 디자이너 김황과 건축가 안지용을 페이스북의 비공개그룹에 초대했다. 본질적 대화가 오갈수록, 디자인과 건축이 갖는 미학적·사회적 과제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점점 더 그 깊이를 더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