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건축은 황수용과 한지영이 2016년 서울 부암동에서 시작한 작은 건축가 그룹이다. 우리는 라이프를 시작하기 이전에도 다수의 공모전을 함께 작업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 신뢰라는 것이 두 사람이 같은 방법론과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다르다. 쉽게 설명하자면, 황수용은 도시나 사이트의 경관, 주변과의 관계에서 건축 설계를 시작하고, 한지영은 내부의 프로그램이나 동선, 사람이 건축 공간에서 경험하는 감각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한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지 다양한 지점에 대해 서로를 설득하고 인정하며 결국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간다.
다양한 경험의 조합 김나운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했고, 워싱턴 DC에서 대사관이나 공립학교 위주로 설계하는 사무실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다. 이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소하고 나서야 실무를 허겁지겁 배우기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고민도, 시행착오도 많았다.
2014년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그래픽디자이너 슬기와 민의 작업 〈테크니컬 드로잉〉을 마주하고는 의문이 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것은 드로잉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한 지시 대상을 또렷하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그래픽디자인의 관습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흑백의 기하학적 패턴들은 더러 숫자가 포함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어쨌거나 모든 이미지는 지독한 근시안이 아침에 눈을 뜨고 보게 되는 최초의 장면처럼 불명확함 그 자체였다. 슬기와 민은 인터뷰에서 어떤 기술적 도안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해 흐릿한 장면을 포착했으며, 이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명확하고 투명한 시대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더불어 자신들이 창안한 인프라 플랫(infra-flat)이라는 개념을 첨언했다. 마르셀 뒤샹의 인프라 씬(infra-thin)을 응용한 인프라 플랫은 과잉 정보나 스마트 폰을 매개로 한 소통 강박이 지나치다 못해 깊이가 없게 만드는 상황, 즉 세상을 납작하고 평평하게 압축하는 힘이 도를 넘어 오히려 역전된 깊이감이 창출되는 아이러니를 가리킨다고 한다. ‘역전된 깊이감’이라는 표현으로 짐작하듯 포토샵으로 블러 처리된 이미지들은 거리를 멀리할수록 그나마 약간 선명해진다. 끝으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주로 평면에 족적을 남겨야 하는 그래픽디자이너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무차원 세계의 원근법 회화를 상상할 수 있나? 우리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근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