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의 읽기와 쓰기
정희진
5,102자 / 10분
오피니언
억지로 읽기
말과 글은 오해를 피할 수 없지만 오해받으면 누구나 억울한 법이다. ‘오해’의 역사는 깊다. 분서갱유나 중세시대 파문破門은 오독이란 결국 권력 행위이며 당사자에게는 생사의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북한이나 이데올로기 관련 사안처럼 보이지만, 앎에 대한 사법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통제라는 점에서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이슈다. 책과 관련된 의도된 오독과 정치적 사건들을 상기하면, ‘읽기’가 호모 사피엔스임을 뽐내는 인간의 대표적 행위 같지만, 실상 인간은 그다지 ‘사피엔스’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독서가 언제나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