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art)과 이야기(story), 삶것에는 두 개의 스레드가 상시 작동한다. 삶것의 기술은 건축술(technology)이 아니라, 건축술을 구현하는 기술을 고안해내는 기술이다. 건축을 구상하는 방식으로서의 기술에 대한 원리적인 접근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화시켜 말하면 ‘다이어그램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에서 어떤 결과(결론)를 만들어내는 다이어그램(기계)을 고안해 프로젝트(를 생각하는 머리) 안에 집어넣고 가동시키는 것이다. 직관과 통찰에서 나오는 이 다이어그램은 분석적인 기계가 아니라 생성적인 기계다. 일단 스위치가 켜지면 기계는 자율적(기계적)으로 돌아가고, 그것의 고안자는 기계가 움직이며 그려내는 경로를 추적, 관찰한다.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한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기술은 삶것의 특기로 잘 알려진 컴퓨테이션이나 알고리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손에 잡히는) 조작 가능한 레고 블록식 모형, (더 통념적인) 그래픽 다이어그램, (더 직설적인) 프로젝트의 조건이 투사된 윤곽선, (더 개인적인) 영감을 받은 일상 속 이미지나 장면 등등 어디에든 들어 있다. 나열한 예시들이 뒤로 갈수록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겠지만, 그것은 생각을 밖으로 꺼내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볼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는 연상물로 표현하고,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저마다 보이지 않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2014년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그래픽디자이너 슬기와 민의 작업 〈테크니컬 드로잉〉을 마주하고는 의문이 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것은 드로잉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한 지시 대상을 또렷하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그래픽디자인의 관습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흑백의 기하학적 패턴들은 더러 숫자가 포함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어쨌거나 모든 이미지는 지독한 근시안이 아침에 눈을 뜨고 보게 되는 최초의 장면처럼 불명확함 그 자체였다. 슬기와 민은 인터뷰에서 어떤 기술적 도안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해 흐릿한 장면을 포착했으며, 이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명확하고 투명한 시대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더불어 자신들이 창안한 인프라 플랫(infra-flat)이라는 개념을 첨언했다. 마르셀 뒤샹의 인프라 씬(infra-thin)을 응용한 인프라 플랫은 과잉 정보나 스마트 폰을 매개로 한 소통 강박이 지나치다 못해 깊이가 없게 만드는 상황, 즉 세상을 납작하고 평평하게 압축하는 힘이 도를 넘어 오히려 역전된 깊이감이 창출되는 아이러니를 가리킨다고 한다. ‘역전된 깊이감’이라는 표현으로 짐작하듯 포토샵으로 블러 처리된 이미지들은 거리를 멀리할수록 그나마 약간 선명해진다. 끝으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주로 평면에 족적을 남겨야 하는 그래픽디자이너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무차원 세계의 원근법 회화를 상상할 수 있나? 우리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근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