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본다 걸어보는 일과 ‘걷고’ 또 ‘보는’ 일. ‘난다’라는 이름의 작디작은 출판사를 꾸려나가는 내게 어느 날 이 두 말이 우연한 산책 중에 몸에 들렸다. 그래 들렸다, 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시가 내게 실리듯 아무런 통증 없이 몸을 꿰뚫고 들어앉은 어떤 세상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놀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어쨌거나 반질반질한 파주의 도토리처럼 말간 얼굴로 길 위에 떨어져 있던 말, 내가 안 주우면 누군가의 발에 밟혀 짓이겨져 버리고 말 것 같은 말, 그래서 허리 굽혀 줍고는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만지작거렸던 말, 그러나 손에 넣고 손에 길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너무나 사소해서 그만큼 나 혼자만의 것 같아서 당신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말, 그게 뭐 별거냐 하겠지만 눈앞에 그림으로 그려내기까지 몇 날 며칠 하얗게 밤을 지새우게 했던 말.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운동’으로서 보는 것, 다른 하나는 ‘이벤트’로 보는 것이다. 운동으로서의 점거는 2011년 여름과 가을에 시작하여 2012년 노동절 집단 운집 이후 끝이 났다. 그러나 이벤트로서의 점거는 광범위한 투쟁에 영향을 미치는 변형적 힘을 지닌 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점거는 최초로 미국, 아랍계, 유럽 등지에서 나타난 국제적 반란과 함께 반향을 일으키며 곳곳에서 실존한다. 이벤트를 만들어 낸 원동력은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점거 구역에서 조직된 위원회와 실무단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사람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거기에는 지도자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도, 정치노선도 존재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온갖 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탐색하는 곳에서는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벤트였다. 물리적으로 점거한 공공장소가 있었고, 어떤 이상적 운동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덕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에 언급하는 것들로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를 대변할 수도 없고 할 의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