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집과 머무는 집 사람들은 인생에 한 번, 혹은 수십 번 사는 곳을 옮긴다. 이사하는 곳은 옆동네일 수도 있고, 농촌에서 도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처럼 자연환경이나 먹고 사는 방식이 전혀 다른 장소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언어나 의식주가 다른 나라로 이주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자’다. 우리는 떠난 집을 고향 또는 정든 곳, 또는 모국이라 부른다. 인생, 가족, 살림살이, 감정, 스토리 등이 담긴 어떤 장소를 떠나면 우리는 그곳을 그리워하거나 돌아갈 안식처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러나 떠나온 곳만큼 새롭게 정주하는 곳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기에 사람들은 집을 떠난다. 삶을 안착시키고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제1의 공간은 물리적 형태의 ‘집’이다. 어떤 집에 살 수 있고, 살 만한가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고 그들의 인간적 권리와 향유할 수 있는 혜택이 구체화된다. 당연히 부와 계급은 집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격이 있기에 모든 사회는 주거와 거주의 안정성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 그만큼 집은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인권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오는 이주자가 한국에 머무는 집은 어떠한가? 이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집과 한국에서 머무는 집 사이에서 어떤 장소성을 경험하고 있을까? 한국 사회는 외국인 이주자라는 법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을 집으로 제공하고 있을까?
국가가 난민의 장소성을 만드는 방법은 ‘난민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의 시간을 유예하고 계속 떠돌게 하는 것’이다. 난민신청자는 법적으로 국가의 영토가 아닌 공항의 송환대기실이나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영종도 난민지원센터 같은 비장소의 공간에서 길고 지난한 법적 절차를 밟다가,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고 난 후에야 정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연결망은 끊기고 개별적으로 정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