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7일 비공개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김종성과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인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이 한자리에 모여 이 상의 의의에 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김종성건축상을 매개로 모인 이들은 ‘건축을 언어로 수사(修辭)하지 않는 건축가’이며, 건축을 유려하게 풀어내기 위한 어휘로서 테크놀로지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대화 속에서 건축가에게 테크놀로지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우리 건축가에 대한 구술채록은 일찍이 2003년부터 국립문화예술자료관에서 진행한 박춘명, 송민구, 엄덕문, 이광노, 장기인의 구술채록이 있었고, 2010년부터는 목천건축아카이브의 건축가 구술사업이 진행되어 오고 있다. 김정식, 안영배, 윤승중, 4.3그룹, 원정수+지순, 김태수 구술집에 이어 일곱 번째로 김종성 구술집이 발간되었고, 이후 서상우, 유걸 구술집도 출간되었다. 4.3그룹을 제외한다면 구술의 목표는 우리의 전후 현대사에서 현대건축의 기반을 형성한 1세대 건축가들, 즉 1930년대에 태어나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 성장기에 활동한 건축인들의 다양한 증언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에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건축잡지가 확산되고 각종 출간을 통해 건축관과 설계과정의 기록을 남기는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1세대에게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기회가 적었다는 측면에서 구술채록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에 미술연구센터를 개소한 이래 꾸준히 작가와 이론가 등의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있다. 아카이브에는 정기용, 이타미 준, 김종성 등의 건축가 컬렉션과 박길룡, 윤일주 등의 건축 이론가 컬렉션, 건미준과 같은 건축 단체 컬렉션도 포함되어 있다.
건축가로서, 교육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유·무형의 건축적 자산을 축적해온 김종성은 현역 은퇴 이후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김종성 컬렉션, 목천김정식문화재단 구술채록, 한국건축가협회 김종성건축상 등을 그 연결고리 삼아 국내 건축계와 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건축’은 김종성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 기록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건축가는 건축으로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당시의 조건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건물의 계획부터 준공에 이르는 순간까지 책임진다. 여기에는 정해진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며, 그 과정은 건물 규모와 상관없이 늘 밀도가 높다. 그렇게 땅 위에 선 결과물은 관계자 모두의 한 시절을 담아낸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건축사 속 건축물처럼 자신의 작업에 불멸의 생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 우세종인 아파트만 해도 완공 후 30년이면 사망 선고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그래서인지 건물 수명에 대한 우리 인식은 30년을 기준으로 형성되어 있다.
지난 11월 17일 비공개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김종성과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인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이 한자리에 모였다. 토론 말미에 최근 건축계 이슈가 되고 있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하 힐튼호텔) 매각과 철거에 대해 설계자의 입장을 직접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우리는 앞서 공간사옥의 매각(2013)이나 삼일빌딩의 리모델링(2020) 등을 통해 한국 건축사의 중요한 건축물이 생을 이어가는 양상을 지켜봤다. 힐튼호텔 철거는 예견된 미래일지라도 아직은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그래서 최근 이어지는 논의들이 힐튼호텔을 비롯해 곧 매각과 철거를 맞닥뜨릴 다른 건축물들을 사회에 알리고, 보존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마중물이 될지 모른다.
건축가 김종성은 간결하고 정갈한 인상을 가졌다. 서린동 <SK 사옥>,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국립 역도경기장> 등 그의 작업도 그 인상을 닮았는데, 이는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완벽함을 추구한 결과다. 출발은 미스의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였지만, 다시 보니 그의 고유 건축언어가 곳곳에 드러난다. 2014년 보관문화훈장과 제1회 건축가협회 골드메달을 수상한 그는 가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다.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천장환 교수가 그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