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마을에서 온 편지
김동신
7,483자 / 15분
에세이
그래픽 디자이너는 외로운 사람의 직업인 걸까? ‘비미술 전시를 고안하는 법’ 이라는 주제로 청탁받은 글을 쓰기 위해서 책장에서 몇 권의 책을 골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예전에 스크랩해두었던 온라인 문서들에도 오랜만에 접속했다. 글쓰기도 글쓰기지만 지금 동료들과 준비하고 있는 전시 기획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그래픽 디자인 전시와 그 언저리에서 생산된 글들을 연이어 읽고 났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디자인 전시의 경향이라든가 기획에 단서가 될 법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바로 저 질문이었다. 전시 도록 서문, 기획자 인터뷰, 잡지 기사 등 글 성격에 따라 ‘논의’, ‘논쟁’, ‘담론’, ‘비평’ 등 쓰이는 단어는 여럿이었지만, 그 말들 너머로 일관되게 엿보이는 것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활발한 논의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같은 말은 어디에든 쓰일 수 있는 무난한 맺음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 속의 사람들이 다 함께 아직 오지 않은 대화의 순간을 기약하며 글을 맺고 있는 것을 연속해서 보자니 저건 혹시 일종의 암구호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글들이 발행된 연도(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후반)를 의식하고 다시 보면 여기에 조금은 서글픈 기분까지 더해지는데, 마치 1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타인과 만족스러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누군가가 띄워 보낸 유리병 편지들을 꺼내 읽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