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디자인으로서의 건축 전연재(마니) 나는 건축이 건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폰트부터 시작해 그래픽, 가구, 인테리어, 건축, 도시, 조경까지 쭉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브랜딩, 공간·전시·문화기획, 연출 또한 건축가가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이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는데, 건축가 또한 전문 분야를 넘어 전방위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고, 공간과 디자인이라는 구축의 기술을 갖췄고, 사람들과 넓은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과 시각물의 결합은 단순히 3D와 2D의 표현법이나 구축되는 형태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행위 안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이러한 공감각적 경험은 형태와 기능 사이의 관계에서 얻는다. 그로부터 시작된 고민을 풀어내듯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Form follows function.”과 시각디자이너 폴 랜드의 “Design is a relationship between form and content.”란 두 문장에서부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그 결과물로 폼앤펑션이란 사명을 풀어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외로운 사람의 직업인 걸까? ‘비미술 전시를 고안하는 법’ 이라는 주제로 청탁받은 글을 쓰기 위해서 책장에서 몇 권의 책을 골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예전에 스크랩해두었던 온라인 문서들에도 오랜만에 접속했다. 글쓰기도 글쓰기지만 지금 동료들과 준비하고 있는 전시 기획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그래픽 디자인 전시와 그 언저리에서 생산된 글들을 연이어 읽고 났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디자인 전시의 경향이라든가 기획에 단서가 될 법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바로 저 질문이었다. 전시 도록 서문, 기획자 인터뷰, 잡지 기사 등 글 성격에 따라 ‘논의’, ‘논쟁’, ‘담론’, ‘비평’ 등 쓰이는 단어는 여럿이었지만, 그 말들 너머로 일관되게 엿보이는 것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활발한 논의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같은 말은 어디에든 쓰일 수 있는 무난한 맺음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 속의 사람들이 다 함께 아직 오지 않은 대화의 순간을 기약하며 글을 맺고 있는 것을 연속해서 보자니 저건 혹시 일종의 암구호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글들이 발행된 연도(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후반)를 의식하고 다시 보면 여기에 조금은 서글픈 기분까지 더해지는데, 마치 1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타인과 만족스러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누군가가 띄워 보낸 유리병 편지들을 꺼내 읽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2014년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그래픽디자이너 슬기와 민의 작업 〈테크니컬 드로잉〉을 마주하고는 의문이 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것은 드로잉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한 지시 대상을 또렷하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그래픽디자인의 관습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흑백의 기하학적 패턴들은 더러 숫자가 포함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어쨌거나 모든 이미지는 지독한 근시안이 아침에 눈을 뜨고 보게 되는 최초의 장면처럼 불명확함 그 자체였다. 슬기와 민은 인터뷰에서 어떤 기술적 도안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해 흐릿한 장면을 포착했으며, 이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명확하고 투명한 시대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더불어 자신들이 창안한 인프라 플랫(infra-flat)이라는 개념을 첨언했다. 마르셀 뒤샹의 인프라 씬(infra-thin)을 응용한 인프라 플랫은 과잉 정보나 스마트 폰을 매개로 한 소통 강박이 지나치다 못해 깊이가 없게 만드는 상황, 즉 세상을 납작하고 평평하게 압축하는 힘이 도를 넘어 오히려 역전된 깊이감이 창출되는 아이러니를 가리킨다고 한다. ‘역전된 깊이감’이라는 표현으로 짐작하듯 포토샵으로 블러 처리된 이미지들은 거리를 멀리할수록 그나마 약간 선명해진다. 끝으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주로 평면에 족적을 남겨야 하는 그래픽디자이너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무차원 세계의 원근법 회화를 상상할 수 있나? 우리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근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