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에 미술연구센터를 개소한 이래 꾸준히 작가와 이론가 등의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있다. 아카이브에는 정기용, 이타미 준, 김종성 등의 건축가 컬렉션과 박길룡, 윤일주 등의 건축 이론가 컬렉션, 건미준과 같은 건축 단체 컬렉션도 포함되어 있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건축 전시가 역사적으로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축이 미술의 관점에서 예술의 한 부문으로 규정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잠재적으로 미술을 재규정할 수 있는 이질적인 힘으로 언뜻언뜻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것은 건축이 미술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그런 분과 간 경계가 느슨하게 유동하면서 미술과 건축의 여러 행위자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를 인식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어난 변화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건축 전시가 보여주려고 했던 내용보다 그것이 의도치 않게 노출하는 전시의 맥락이 좀더 흥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에서 건축 전시가 이토록 빈번한 때가 언제 있었을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건축 전시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2014년 겨울에는 서울에서만 크고 작은 건축 전시가 15개나 열리기도 했다. 2014년은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해다. 2017년에는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개막하고 UIA서울세계건축대회가 열렸고, 그해 가을 한국을 대표하는 국공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대형 건축 전시를 열었다. 2018년에는 서울도시건축센터가 문을 열었고, 올해에는 구 국세청 별관 부지에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개관했다. 이러한 행사에 대한 피로도가 쌓일 때쯤 건축 전시에 대한 비평적 검토가 제기되었다. 이제 전시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결과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 건물을 가지고 올 수 없는 건축 전시는 왜 하는가? 무엇 때문에 건축 전시는 이토록 설명적인가? 건축 전시는 아카이브 전시 이상을 넘어설 수 없을까? 모형과 도면, 사진 외에 보여줄 수 있는 전시 매체는 무엇일까? 등 여러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의 출발점을 생각하고, 대답하기 위해 들어가는 여러 입구에 대한 이야기다.
미술관에서 건축전시를 보는 일이 이제는 생경한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건축 전문 학예사를 통해 꾸준히 건축전시를 선보이고 있고, 꼭 건축전시가 아니어도 이미 건축 혹은 어반 이슈를 다루는 전시들을 최근 3,4년 동안 급증했다. 이번 좌담에서는 근간의 건축·도시 리뷰를 통해, 전시로서의 건축이 문화예술계와 일반 관객에게 소비되는 양상을 살핀다. 또한 담론을 일으키는 새로운 매체로서 그 가능성을 이야기 나눴다.
신제현 작가는 사회적 장소 내 사각지대를 찾아 그곳에 예술의 둥지를 트고, 새로운 빈틈을 노린다. 최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했던 철거용역을 관객으로 한 공연처럼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김남시와는 《리얼 디엠지DMZ 프로젝트》에서 작가와 기획자로 만나고 있는데, 이들은 철원보다도 밀양, 4대강, 강정, 광화문이 ‘디엠지적 공간’이라는 데 공감하며,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사회적 작업이 갖는 고민과 입장을 나눴다.
2015년 젊은 작가에게 필요한 것 작가들에게 필요한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공공미술관의 한 모퉁이일까? 아니면 자유롭고 자립적인 공간일까? 특히 자신만의 작업실마저 갖지 못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습작과 실패작이 널려 있는 시행착오의 공간조차 없는 그들에게 필요한 전시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면 되는 것일까? 고독과 화해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한국 사회 속에서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활동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커먼센터 디렉터인 함영준과 시각문화 연구자 윤원화를 통해 들어본다.
건축가 김종성은 간결하고 정갈한 인상을 가졌다. 서린동 <SK 사옥>,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국립 역도경기장> 등 그의 작업도 그 인상을 닮았는데, 이는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완벽함을 추구한 결과다. 출발은 미스의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였지만, 다시 보니 그의 고유 건축언어가 곳곳에 드러난다. 2014년 보관문화훈장과 제1회 건축가협회 골드메달을 수상한 그는 가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다.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천장환 교수가 그를 만났다.
※ 본글의 일부는 필자가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서 발행하는 미술웹진, 아트뮤지엄(artmuseums.kr)에 연재한 2013년 칼럼인 <영국 문화예술 아카이브>의 내용을 수정, 재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타미 준 선생과 장충동 근처에서 지인 몇 분과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한정식집으로 기억한다. 선생은 조용히 식사하는 편이었고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 자리는 아니었기에, 선생의 과묵함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땅에서 얻은 거친 재료로 추상의 세계 -그것도 세련된 모더니스트로서- 를 추구하는 선생다웠다. 선생은 지역과 전통의 문맥에서 자신의 감각을 총동원해 설계하는 건축가이기에 더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진 말들을 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오랜 시간 거센 바람을 헤치고 온 건축가와 잠시의 ‘언어적 소통’은 언제나 미적지근하니까. 또 한 번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사당동에 있던 <각인의 탑>에서의 저녁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강한, 원시적이면서도 미래적인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내게 오롯이 각인되어 있다. 선생의 후기 작업인 <제주 프로젝트>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선을 건드리는 강렬함과 원숙함을 느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으니,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오랜 희망은 이루어진 셈이다. 전시는 ‘소재의 탐색’, ‘원시성의 추구’, ‘매개의 건축’, ‘바람의 조형’과 같은 키워드를 통해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되짚어보며 여러 겹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아쉽게도 선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남겨진 자료와 기억을 되짚어 이 지면을 구성했다.
어느덧 한국 건축계도 ‘아카이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이어온 지 10여 년이 흘렀다. 학자들을 중심으로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지금은 담론보다는 실질적인 사업을 토대로 건축 아카이브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단계이다. 단번에 그 성과를 낼 수 없는 아카이브 사업의 속성상 현재 주요 추진 기관은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목천김정식문화재단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각자의 성격과 정책 방향 아래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아카이브 사업을 맡은 실무자의 일원이자, 최근 기획한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2.28~9.22)1 전의 학예연구사로서 미술관이라는 제도권의 건축 아카이브가 갖는 성격과 의미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글에서는 건축 아카이브의 구축 과정을 간략히 언급한 뒤, 특히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한 방법인 전시 기획 안에서 아카이브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주목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건축 아카이브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미술관의 건축 아카이브를 촉발시킨 ‘고故 정기용 콜렉션’과 전시를 중심으로 아카이브라는 거대한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은 실마리를 공유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MC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은 우리 관공서의 변모를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모뉴멘트와 랜드마크의 소란은 사라지고 ‘차분한’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 꽈리를 틀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세계의 그리움은 상이한 것들이 중첩된 무형의 건축에 닿고자 노력한다. 건축가 민현준을 인터뷰 하면서도 ‘뜨거운 열망’의 단어보다 ‘멜랑콜리한 속삭임’이 더 잦았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