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의 사회적 현실 공동주택은 서울에서는 이미 80%가 넘는 주택 유형으로 공동주택에서 살지 않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주택에 대한 개념이나 이웃에 대한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한 건물에 살고 있지만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라는 생각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옆집이지만 전혀 대면이 없거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함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별 주택에서 원하는 프라이버시는 점점 강화되고, 함께 사는 공동주택에서의 공동체성은 우리 삶에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함께와 혼자 사이 사람은 원래 ‘혼자’다. 하지만, 사회 안에서 혼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할 누군가, 무언가, 어딘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결핍을 ‘가족’이라는 오래된 공동체 속에서 ‘함께’라는 방법으로 치유하며 살아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원하면 언제든 혼자 또는 함께가 될 수 있었다. 마치 공기처럼 우리의 삶 곳곳에서 따뜻한 만남과 헤어짐으로 존재했었다.
김종완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아라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홈그라운드’ 작업장을 운영한다. 출장요리, 메뉴 개발, 요리워크숍, 전시 참여 등 요리를 매개로 다양한 방면의 일에 관여하고 있다. homeground.kr 에서 하는 일들의 이미지를 소개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계정은 꽤 사랑받고 있다.
김유나 명지대학교 건축학과최경하 명지대학교 건축학과한정아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공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감이당>은 중구 필동에 있다. 몇 발자국만 나서면 남산을 오를 수 있어, 토요일 오후면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한다. 마침 인터뷰가 토요일 점심 즈음으로 잡혔다. 아니나다를까 인터뷰 장소는 식당이었다. 그날 메뉴는 짜장밥. 점심시간이 되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숙사 식당 같은 분위기. 빈자리는 채워지고 내 옆자리에도 누군가가 앉았다.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고, 깨끗하게 설거지한다”는 간단한 규칙을 숙지하고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날따라 조금 짠 짜장을 남기는 것을 걱정하는 대화가 주로 오갔다. 그 걱정 사이로 고미숙 씨는 옆 사람에게 원고 코멘트를 했고, 다른 누군가의 출판기념 잔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그날 함께 밥 먹고 공부하며 우정을 쌓는 공동체의 일상을 잠시 만났다. 설거지까지 직접 하고 다시 마음 다잡고 일상 전체를 던져 온몸으로 공부하는 ‘호모 쿵푸스’들에 둘러싸여 오늘날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Ⅰ. 가족 구조의 변화: 인구 감소와 저출산 및 고령화 ➊ 1인 가구의 지속적 증가 국내 1인 가구는 1980년대 총가구의 4.8% 정도였지만, 이후 빠르게 증가해 현재 403만 세대(총가구의 23.3%)로 주택시장 내 새로운 수요 계층으로 부상했다. 국내 총가구 수는 1975~2010년 동안 2.6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1인 가구는 14.4배나 늘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추세는 세대별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 결혼관에 대한 변화로 초혼 연령이 높아졌고, 더불어 혼인율은 하락했다. 또한, 이혼율 상승에 따른 싱글족의 증가도 무시 못 할 영향이며 혼자 사는 노인들도 계속 늘고 있다. 특히, 1인 가구의 63.9%가 여성이라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Ⅰ. 유토피아의 열망: 19세기 유럽과 북미 19세기에는 정치, 노동, 재산, 결혼, 종교 등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사회를 열망한 이들이 많은 유토피아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 공동체는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기도 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업혁명과 함께 평등사회(egalitarian)를 위한 움직임 중 하나로 공동사회 계획들이 일어났으며, 미국에서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앞서 유럽에서 시도했던 계획을 보완하는 형태로 새로운 개혁을 추진했다.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는 주거 유형의 변화뿐만 아니라, 구성원 안에서 사회적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나리오: 조재원 자는 것 외에는 집과 동네에서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 하숙 같은 방, TV를 켜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나누기 어색한 거실, 일주일에 몇 번 같이 식사하기 어려운 식탁과 주방, 가족이 한 공간에 모여 살지만, 대부분 시간은 가족 외의 사람들과 집 밖에서 보내는 상태를 ‘거주’라고 하고, 그 장소를 ‘집’이라고 부르는 현재. 더하여 1인 가구에게 아파트는 맞지 않는 옷과 같고, 원룸과 오피스텔은 여럿이 살지만, 더 혼자가 되는 공간이다. 대가족, 마을과 동네라는 규모 있는 공동체가 기초단위를 이룰 때는 공간, 지식, 자원의 공유가 자연스럽고 안배도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핵가족화를 지나 1인 가구가 전 가구의 1/4을 넘은 오늘날, 혼자 살아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살아야 하는, 그래서 더 협소하고, 부족한 공간과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중복하여 저마다 소유하는 것이 ‘거주’에서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거주의 구성원이 생산하고 문화의 씨앗을 만들고, 다음 세대에 지혜를 전수하는 베이스캠프가 돼주어야 할 ‘집’이 평생의 짐이 되고, 그 때문에 진짜 가치 있는 거주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시나리오: 김영옥 건물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다. 그곳에 시간의 기억이 더해지면 유체가 된다. 시간이 더해진 장소는 기억으로 채워져 다양한 관계를 만든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하늘, 식물, 길, 사람, 건물, 동물, 땅, 공기, 사물—모두는 여전히 세심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를 삶 자체의 유동성과 불안으로 인해 공동체가 해체된 불안정의 시대, 곧 ‘액체 근대’로 특징짓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꾼다.
시나리오: QJK 우리는 ‘주거 공간=사적 공간’이라는 절대적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부부와 자녀가 동거하는 4인 가족 기준의 해체와 1인 가구의 증가, 동호인 주택과 셰어하우스와 같은 다양한 주거 형식에 대한 관심은 사적 공간을 절대화하는 관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시나리오: PaTI·장영철 2014.06.14 날씨: 맑음, 아직 약간 쌀쌀함.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을 쓴 아동 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교회에 딸린 5평짜리 흙집에서 수십 년 넘게 혼자 살다가 7, 8년 전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 흙집은 무욕, 절제, 가난 등 선생의 삶과 동일한 의미로 읽히며 여전히 그 뜻을 기리는 방문자를 맞이한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이나, 퇴계의 도산서당 내 완락재(玩樂齋)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떤 집을 짓고 산다는 말 속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그 사람의 가장 솔직한 답이 숨겨져 있다.
공유재의 비극? ‘공유재의 비극’이란 개념은 ‘공유’나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아킬레스의 건’ 같은 사례로 즐겨 언급된다. 특히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개인의 이기적 본성의 가정 위에서 사유재산과 시장에 의한 조정이 무슨 자연법칙이라도 되는 양 생각한다. 그러나 그 개념은 1968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던 개릿 하딘의 논문 <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1968)에서 연유한 것으로, 하딘은 열렬한 생태학자로서 공유재인 생태계를 지키고 되살리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정부의 강력한 명령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유물의 자유로운 이용은 모두에게 파멸을 안겨”주는데, “혼잡한 세상에서 파멸을 피하려면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 밖에 있는 강압적 힘, 다시 말해 토마스 홉스의 표현을 빌자면 ‘리바이어던Leviathan’에 호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사적인 재산에 대한 사용권마저 제한했던 박정희 정권의 그린벨트 정책을 알았다면 필경 강하게 지지하지 않았을까?
실패한 것은 민주주의의 미래 우리는 이제 굳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경합주의’ 정치이론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공동체란 언제나 분열적이며 ‘공동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혹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름에 걸맞게 둘, 혹은 그 이상으로 쪼개진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는 단순히 제도화된 정치의 장 안에서 경쟁하는 둘 혹은 그 이상의 정파 내지는 정당들 중에서 누가 더 상대적으로 많은 득표를 했는가의 문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선거의 결과는 공동체 전체의 분할 비율이 반영된 것이라는 인상을 승리한 측과 반대 측 모두에게 각인시켜주는 듯했다. 따라서 여전히 선거란 그 결과가 박빙의 불확정성에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기적 자유경쟁 선거를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았던 절차적이고 이른바 ‘최소주의’적 관점 이론가들의 예측과 달리, 패자가 다음 기회에서의 승리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기적”(아담 셰보르스키)을 더 이상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선거의 결과란 더 이상 공동체를 분할하는 본원적인 갈등과 적대의 차원 (‘정치적인 것’ 혹은 친구와 적의 구별)을 다원주의적이고 제도적인 ‘정치’의 차원을 통해 완화한 상대적 결과라기보다는 바로 ‘정치적인 것’ 자체의 절대적 표현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정당의 쇠퇴와 함께 (하버마스의 말을 따르면) “거리의 압력”, 혹은 날 것의 사회적 갈등이 어떤 매개도 거치지 않고 완화되지 않은 형태로 제도 정치 안으로 유입되면서 정치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심지어 패자만큼이나 승자 또한 선거의 결과에 승복하거나 그 정당성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게 된다. ‘독재자의 딸’ 대통령 당선과 끝나지 않는 부정선거에 관한 논란은 분명 표면적으로 민주주의 실패와 유신 독재시대로의 회귀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유사성과 달리 본질적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선거가 약속했던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한 ‘탈주술화’와 실망이다. 실패한 것은 민주주의 자체라기보다는 주기적 자유경쟁 선거가 약속했던 민주주의의 미래였다. 이러한 실망은 보다 능동적인 증오로 발전하는데, 자크 랑시에르의 적절한 표현에 따라 이중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증오”, 즉 민주주의에 ‘의한’ 증오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바로 그것이다.
결핍되어 더 간절한 우리 건축의 공통체 공통체……. 참 아름답고, 늘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진정한 ‘살이/존재’의 틀이기 때문이고,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우리 건축 현실에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통체’라는 말은 내게 몇 가지를 즉각 떠올리게 한다. ‘공통 지반Common Ground’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우리 건축 내부의 비난이 가장 드셌던, 김병윤이 한국관 전시 지휘를 맡았던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 전시회(2012),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이 조직한 국제 심포지엄1의 이름이자 그로써 유럽 지식인들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코뮤니즘’ 문화현상(2009), 마지막으로 얼마 전 우리말 번역본으로 출간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공통체』(2014) 등이 그것이다.
“친구들이 ‘굿 보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활동사진을 상영하고 있었다.” – 화가 천경자, 1930년대
예술은 어떻게 공동체에 가 닿는가 예술을 공동체에 연결시키는 가장 흔한 논리는 “예술은 고유의 재현적 규칙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표현한다”라는 진술에서 잘 나타난다. 이 진술에서 “재현적 규칙을 통한다”라는 말은 예술적 테크닉을 발휘하고, 관습을 적용하고,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예술은 ‘그럴듯함verisimilitude’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재현하는 동시에 이 재현을 통해 바람직한 공동체를 구현하고 공공선에 기여해야 한다. 이 같은 재현론의 발의자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Poetics』 에서 재현할 수 있는 대상과 재현할 수 없는 대상을 구별한 것은 시적 재현이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미치는 도덕적, 정서적 영향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인이 영웅이 아닌 악인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그의 작품은 시민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며,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