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윤 작가는 도시 시스템의 경계를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물건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지형도를 만들어 공유한다. 그의 활동범위는 매우 넓고 한순간도 머리와 손과 몸을 놀리지 못해서, 끊임없이 읽고, 드로잉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태깅하고, 거리에서 몸으로 부딪친다. 작업의 범주와 분야가 매우 광범위해 이야기가 한눈에 잡히진 않지만, 공공예술의 전방에서 그를 어렵지 않게 곧잘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가 동시대 도시에서의 인간 삶에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어떻게 공동체에 가 닿는가 예술을 공동체에 연결시키는 가장 흔한 논리는 “예술은 고유의 재현적 규칙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표현한다”라는 진술에서 잘 나타난다. 이 진술에서 “재현적 규칙을 통한다”라는 말은 예술적 테크닉을 발휘하고, 관습을 적용하고,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예술은 ‘그럴듯함verisimilitude’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재현하는 동시에 이 재현을 통해 바람직한 공동체를 구현하고 공공선에 기여해야 한다. 이 같은 재현론의 발의자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Poetics』 에서 재현할 수 있는 대상과 재현할 수 없는 대상을 구별한 것은 시적 재현이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미치는 도덕적, 정서적 영향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인이 영웅이 아닌 악인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그의 작품은 시민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며,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
공공예술에 절대적인 가이드라인은 없다. 하지만 좀 더 많은 공공의 만족을 위해 시행착오를 겪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필요하다. 현재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예술감독 백지숙)에서 <공원도서관: 책과 상자apap.or.kr/parklibrary>를 통해 도서관과 건축 프로젝트 (SOA 이치훈 강예린 협업)를 진행 중인 기획자 길예경은 영국의 공공예술 커미셔닝 기관인 시추에이션스Situations1의 공공예술을 위한 몇 가지 규칙2을 소개한다.
전시장에 갈 땐 으레 다음의 경험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전에 느끼지 못한 더한 자극을 받거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탄과 함께 영감을 얻거나. 작가 구민자의 작업은 공교롭게도 위와 같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 평범해 보이는 상황이나 덤덤한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방관자였던 관람자는 어느새 작업 속 작가의 자리에 앉아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상 안에서 문답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즉각적인 자극에 수없이 노출되어 무감한 이들에게 필요한 예술가는 서두름 없이 나와 내 주변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질문과 대답하기를 유도하는 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