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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기 위한 기계

김성원, 감대언, 김민경


김성원, 감대언, 김민경 부산대학교 건축학과


‘잘’ 살기 위한 기계는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주거는 살기 위한 기계’라는 명제를 오늘의 도시에서 다시 질문하는 데서 출발한다. 근대 주거는 효율과 표준화를 통해 개인의 쾌적성을 극대화했지만, 그 과정에서 내부 가로·옥상 정원처럼 ‘우리’를 가능하게 했던 공동의 층위는 점차 사라졌다. 개인의 삶은 다층화되고 다채로워졌는데, 도시 공간은 여전히 기능과 효율에 의해 단층화되어 개인과 개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구조가 부족해졌다. 우리는 이 결핍을 ‘새로 짓기’로 해결하기보다, 도시 규칙이 필연적으로 남긴 잉여 공간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핵심 대상은 건축법상의 이격과 경사지 주거의 물리 조건이 만들어낸 주택 사이 ‘틈’이다. 본 제안에서 틈은 사람이 머무는 방이 아니라, 우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시설(infrastructure)로 재정의된다. 반대로 옥상은 틈에서 준비된 생산과 보존의 과정이 합류해 ‘우리’의 장면이 드러나는 공유 평면이 된다. 즉 공간 전략은 단순하다. “틈은 기반시설, 옥상은 공동체적 장소.”

프로그램은 억지 이벤트가 아니라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개인마다 가장 다채롭게 변주되는 행위인 ‘식사’를 매개로 삼는다. 식사는 경작–보존–조리–식사의 연쇄를 포함하며, 이 연쇄를 틈-옥상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상부에서는 우수를 집수해 경작용수로 사용하고, 채광이 좋은 틈과 옥상에서는 잎 채소를 재배한다. 음지의 틈 하부에서는 균류 재배와 밀폐형 EM 발효를 통해 음식 부산물을 위생적으로 비료·발효액으로 전환해 다시 경작으로 환원한다. 이 과정은 개인의 선택으로 작동하지만, 결과는 옥상에서 가시화되어 자연스러운 겹침과 교환을 만든다. 공동체는 계획된 모임이 아니라, 같은 회로를 공유하며 생기는 생활의 결과로 형성된다.

대상지는 부산 산복마을이다. 산복마을은 개발 논리에서 비켜난 휴먼 스케일의 집합 주거이며, 경사·옹벽·계단·옥상이 반복되어 틈이 유형적으로 생성된다. 또한 산복도로를 따라 4–6채 단위의 블록이 연속되어 프로토타입의 점적 확산이 가능하다. 구축은 기존 건물에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계 시스템을 기본 구조로 사용한다. 비계는 조립·변형·해체가 가능한 가역적 재료로, 장치가 주민의 참여와 필요에 따라 동네 안에서 순환·확장되는 유연한 인프라가 된다.

결론적으로 본 프로젝트는 철거·재개발이 아닌, 도시가 남긴 ‘틈’을 생활 인프라로 전환해 산복마을의 일상 리듬을 재조직하고, 4–6채 블록을 하나의 순환 단위로 설정해 점적으로 증식하는 도시적 확장 방식을 제안한다. 하나의 블록에서 성립한 순환과 공유는 인접 블록으로 연쇄적으로 연결되며, 산복도로 전반을 따라 작은 생산과 보존의 기반시설이 촘촘히 분포한 느슨한 네트워크 도시로 확장된다. 이는 ‘짓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가 이미 갖고 있던 여백을 통해 돌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재생의 전략이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윤주선 여기에서 기대하는 경작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잘 살기 위한 기계 저희 프로젝트는 아주 특별하고 거대한 인프라를 설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도시 주택, 특히 산복마을 같은 산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밭 가꾸기 같은 행위를 조금 더 증폭시키고 효율화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수확량을 계산하지는 못했지만, 기존 방식보다는 훨씬 높은 사용성과 생산성을 가진 정도로 가정했습니다.

윤주선 설계상에 집수 장치가 있던데, 물을 모은 뒤에는 사람이 일일이 직접 물을 주는 방식인가요?

잘 살기 위한 기계 네, 맞습니다. 지붕의 우수 파이프를 통해 내려온 물을 지하 정화조나 옥상 탱크에 모으고, 주민들이 직접 물을 길어 경작 장치에 주는 수작업 중심의 행위가 반복되도록 계획했습니다.

윤주선 장치의 생애주기를 그린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초기 세팅만 해주고 빠지는 것인가요? 이후 주민들이 스스로 합의해서 장치를 재구성하거나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시나리오인 건지 궁금합니다.

잘 살기 위한 기계 네, 맞습니다.

임태병 식사가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사실 개인이 고추나 상추 몇 개 키워 혼자 먹는 자급자족은 큰 의미가 없잖아요. 이 행위가 어떻게 공동의 공동체적 행위로 연결되는지 건축 계획이나 시나리오, 프로그램상의 설명이 부족해 보입니다.

잘 살기 위한 기계 저희는 단순히 모이는 장소를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실제로 모이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공간을 억지로 만드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개인이 잘 살고 취향을 드러나면서도 우리를 만들 수 있는 최소 단위의 개입부터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장치를 설치한다고 해서 주민들이 곧바로 옥상에 모여 식사를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마주침이 반복되고 연속성이 이어지다 보면, 옥상을 점유하던 주민이 이웃을 부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여섯 채 가구 사이에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임태병 주민들 간의 친밀도가 쌓여 옥상에 모인다고 할 때, 현재 계획안에 그 옥상을 활용할 만한 공간적 가능성이나 장치가 마련되어 있나요?

잘 살기 위한 기계 상부 옥상에는 비나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구조체와 함께 테이블 등의 장치가 이미 배치되어 있습니다. 차후 주민들의 관계가 밀접해졌을 때 이 시스템들이 실질적으로 활용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홍보라 경작과 식사 중 특히 식사라는 주제가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경작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관심과 책임이 필요한 일인데, 장치만 있고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으면 방치될 우려가 있습니다. 관리 책임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요?

잘 살기 위한 기계 책임 소재를 정하기보다 공동체 협의를 기본 전제로 했습니다. 또한 협의가 깨져 공간이 방치될 가능성도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해체 조립이 유연한 비계 시스템을 선택했습니다. 수작업으로 만든 시스템이기에 관리가 안 된다면 전문가와 함께 가볍게 해체하여 다른 필요한 곳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기적으로 도시에 뿌리내리는 인프라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해든 도시 리서치 과정에서 비계 시스템을 덧붙이는 방식은 사실 새로운 제안은 아닙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이런 장치가 덧붙여졌을 때 내부 거주 공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느냐는 점입니다. 가령 창문을 막게 될 텐데, 그럼에도 내부 공간이 얻는 이점은 무엇인가요? 장치가 없는 집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잘 살기 위한 기계 우선 창을 완전히 막는 방식은 최대한 피했습니다. 벽이 있는 부분에 설치하거나, 내부와 연결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존 창 부분을 철거해 문처럼 활용함으로써 틈새 공간으로의 이동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특히 1층의 경우 비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옹벽을 허물고 커뮤니티 공간과 연결하는 등, 내부와 외부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잇는 시나리오를 구상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잘’ 살기 위한 기계

분량3,372자 / 7분 / 도판 10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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