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itecture-newspaper.com/bk-wswd-cover/
문단구분
  1. 여
  2. 들
글자크기
  1. -
  2. 가
  3. +
배경
  1. 흰
  2. 검
  3. 종이
글꼴스타일
  1. 들
  2. 여
출력
  1. 출력
목차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변현


변현 원광대학교 건축학과


도시의 기척

서울이라는 과포화된 도시에서 동물들은 어디에 서식하며 어떻게 이동하고 있을까? 더 나아가 인간은 자연에게 어디까지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며, 반대로 어디까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해도 되는 것일까? 저는 이 공존의 해결책을 애니메이션 <원령 공주>에서 발견했습니다.

움벨트(Umwelt)

<원령 공주> 속 인간과 동물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자연’을 전장 삼아 전쟁을 치릅니다. 그 중심 갈등 속에서도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갈등 속에서도 공존의 길을 찾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에는 생물학자 야콥 폰 웩스쿨의 ‘움벨트’ 개념이 있습니다. 움벨트는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주관적 감각으로 구성한 독자적인 세계, 즉 ‘감각의 비눗방울’을 의미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이 서로 다른 비눗방울들이 처절하게 충돌할 때 발생하는 비극에 대한 거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줍니다.

현대의 전장 – 기만적인 생태통로

애니메이션 속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장은 숲속에서 현대의 도로 위, ‘생태통로’라는 경계로 옮겨왔을 뿐입니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생태통로의 95%가 부실 판정을 받았고, 서울의 경우 전량 부실로 드러나며 도시 생태축의 연결이 허상이었음을 증명했습니다. 동물의 움벨트가 고려되지 않은 설계는 생명의 다리를 로드킬로 유도하는 ‘죽음의 깔대기’로 전락시켰습니다.

버티고개의 미시적 단절

대상지는 일제강점기 도로 개발로 남산과 매봉산이 분리된 이래, 현재는 호텔과 고밀도 주거단지 사이에 끼인 ‘모래시계형 병목 구간’이 되었습니다. 2012년 조성된 연결 통로는 동물의 움벨트를 배제한 채 인간과 동물의 동선이 교차하며 과도한 간섭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기능 없는 루버와 철조망은 물리적 연결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며 생태적 흐름을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이 실패한 인프라를 치유하기 위한 거시적 리모델링 원칙을 제안합니다.

공유된 움벨트

기존의 리모델링 방식은 물리적 영역을 평면적으로 분리하는 데 그쳐, ‘움벨트’를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공존이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되, 생존의 핵심 고리를 통해 유연하게 교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봉산의 생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활동과 번식이 절정에 달하는 2월부터 7월 사이에 동물의 생존을 결정짓는 가장 절실한 기제는 바로 ‘수분 보충’입니다.

평균 4시간마다 물을 찾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이 생존 리듬은, 생태통로가 단순히 ‘길’이 아닌 ‘생명 유지의 거점’이 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생존의 갈증이 가리키는 곳에 과거 인간과 동물이 함께 목을 축이던 ‘버티약수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완전히 메말라 ‘결핍의 현장’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단절된 생명의 고리를 다시 잇기 위해, 빗물을 생존의 에너지로 환하는 ‘7단계 빗물 순환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양서류 통로와 계획한 수공간에 모인 빗물은 우수집수조로 이동해 UV 살균 등 정화 과정을 거칩니다. 정화된 물은 우수처리수조에 저장되었다가, 수량이 부족할 때마다 즉시 급수되어 많은 물을 유지합니다.

감각의 중재 – A 영역

A 영역의 수공간은 동물의 갈증 해소를 넘어,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생명을 느끼는 명상 공간이 됩니다. 동물이 물을 마실 때와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작은 파동이 홈통을 통해 아래로 떨어지고, 하부 동 공간에서 인간은 이 낙수 소리를 들으며 청각적으로 동물의 기척을 경험합니다.

구조

이때 구조적으로는 낙엽이나 기타 이물질이 물과 함께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 2차 격자 프레임을 설치하여 오직 많은 물방울만 하부로 떨어질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또한 원형 매스의 중심부에는 유리를 배치하여 자연의 빛이 내부 동 공간을 밝히도록 함으로써, 청각적인 낙수 체험과 시각적인 개방감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명상 환경을 완성했습니다.

마을의 풍경 – B 영역

B 영역은 지역 주민과 관람객을 위한 성찰의 공간입니다. 이전에 제거했던 철재프레임 위에 등산객 동선을 2.1m 폭으로 계획하고 중심에는 휴게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원기둥 형태의 관람실은 외부 셔팅 처리를 통해 시각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내부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낮에는 실외 조도가 실내보다 밝은 광학적 특성을 이용해 외부 시선을 차단하며, 자칫 어두울 수 있는 내부는 인공조명 대신 자연 채광으로 해결합니다. 반사판으로 빛을 응집시킨 뒤 폴리카보네이트를 통해 상부와 내부를 은은하게 밝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인간의 욕심으로 동물의 서식 영역은 축소되었고, 재개발로 그들의 옹달샘마저 매말랐습니다.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았던 두 세계를 ‘갈증’이라는 공통의 움벨트로 엮어내어, 단절을 넘어선 새로운 공생의 지평을 제안합니다. 또한 현재 생태통로에 대한 예산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시점에, 생태통로는 자생적으로 운영 자금을 보충해야만 지속 가능한 풍경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매스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생태 필터 교체 비용이나 생태통로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비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이로써 실패했던 생태통로는 인간과 동물 모두가 각자의 영역을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진정한 만남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곳은 무심했던 야생동물의 존재를 깊이 성찰하게 하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변화하는 치유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홍보라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고, 그 안에서도 행동 양식이 다른 여러 동물을 세분화해 동선을 배치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실제 작동 방식은 잘 상상이 안 가는데요. 맨 위 수공간에서 사슴 같은 동물들이 물을 마시고, 그 물이 밑으로 떨어져 맑은 물이 내려온다면 이 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8km 구간은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상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살아라 그대 먼저 수공간에 대해 말씀드리면, 순환의 시작은 빗물입니다. 빗물이 파충류 통로나 계획된 이면의 수간에 일차적으로 쌓여 집수 공간을 이룹니다. 여기서 오염 물질을 걸러낸 뒤 펌프를 이용해 정수 과정을 거칩니다. 정수된 맑은 물은 우수 처리조에 저장되었다가, 여름철 수량이 부족할 때 다시 보충되어 깨끗한 물을 공급합니다. 동물이 물을 섭취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낙수는 하부에 쌓이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청각적인 효과를 통해 공간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8.4km 구간은 1차 제출 때보다 확대하며 생략된 부분이 있는데, 남산에서 서울숲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영역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해든 인간과 동물의 위계를 다시 생각한다는 관점은 이해했습니다. 사람의 공간을 제안하되 동물의 공간을 더 자유롭게 한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 17페이지를 보면 이 콘크리트 배관이 양서류와 파충류의 통로가 된다는 뜻인가요?

살아라 그대 네, 기존 도로 양쪽에 계획되고 있는 양서류 통로 방식을 차용해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하부 통로 외에도 고사목을 배치한 상부 통로까지 총 두 가지 이동 경로가 있습니다.

이해든 제 의문은 인간이 사용한 물을 처리하기 위한 콘크리트 관을 동물의 서식 통로로 쓴다는 점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통로라면 자연 재료나 친화적인 재료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비가 많이 오면 통행도 어렵고, 오염된 물이 흐를 텐데 동물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최재필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드리자면, 기존 생태 통로가 인간의 방식으로 자연을 흉내 낸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이 자연 영역으로 들어가는 형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가능했을 텐데, 왜 리모델링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나요? 여전히 인간의 구조물 안에 자연물을 배치하는 방식이라 기존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느낌입니다.

살아라 그대 조사를 통해서 전국의 생태 통로들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부터 시작해 발전해 온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표준화된 형태에서 개선안을 찾아 나가는 방식이 리모델링이어야만, 기존의 표준 모델들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임태병 리모델링 방식은 이해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생태 통로에 인간의 개입이 왜 필요한지 묻고 싶습니다. 천창이나 휴게실, 생태 도서관 같은 인간을 위한 시설이 여기에 왜 있어야 할까요? 덜 인간적인 것이 더 좋은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살아라 그대 인간을 위한 공간을 계획한 이유는 이곳을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와 외국인 비중이 40%나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지만, 정작 쉴 곳이 없어 바닥에 앉아 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산에서 서울숲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서울만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생태 통로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매스 안에서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유의미한 개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분량4,441자 / 9분 / 도판 12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태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