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투하는 집
박진영, 구서진
분량3,854자 / 8분 / 도판 11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박진영, 구서진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침투하는 집’은 오늘날 서울의 주거가 안정된 정주의 기반이 아니라, 불안정한 삶을 임시로 지탱하는 구조가 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프로젝트는 그러한 현실을 사회적 진술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주거의 공간 조직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건축적으로 읽어낸다. 특히 혼자 살아가지만 완전히 고립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며, 세대 내부와 도시 사이에 놓인 현관 앞, 복도, 계단참, 건물 사이의 틈과 같은 중간 영역에서 새로운 주거의 가능성을 찾는다.
대상지인 가리봉동은 다양한 인구층이 공존하지만, 각자의 생활반경과 시간대가 분절되어 느슨한 병존 상태를 이루는 장소이다. 프로젝트는 이러한 분절을 부정하기보다, 그 안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미세한 접촉의 조건을 발견하고자 했다. 특히 가리봉동의 이른바 벌집형 주거는 좁은 대지 안에서 세대 수를 확보하기 위해 외부와 맞닿는 면을 늘리고, 공용 화장실과 복도, 계단 등 사이 공간을 독특하게 조직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태 그 자체보다, 그 배치가 만들어내는 생활의 틈이다.

현장 조사에서는 덧대어진 구조물, 굴곡진 복도, 대문 앞 여백, 후면의 자투리 공간, 외벽을 따라 연결된 흔적 등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는 두 건물 사이의 틈이 단순한 잉여공간이 아니라, 이미 삶이 번져 나와 있는 장소임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볕이 드는 면과 비어 있는 후면 사이에 빨랫줄이 연결된 장면은, 계획된 관계는 아니지만 생활의 필요가 이미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각 세대 앞에 놓인 생활 흔적, 바깥으로 밀려 나온 사소한 물건들, 머무름이 발생하는 계단참과 복도 모서리를 기록하며, 거주자들이 집 바깥에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확장하고 있는지도 추적했다. 이러한 흔적은 무질서한 적치가 아니라, 각자의 리듬과 애착, 필요가 외부로 번져 나온 결과로 읽힌다.

이러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제안된 것이 ‘침투하는 집’이다. 이는 두 건물 사이에 새로운 덩어리를 삽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틈과 경계, 진입부와 공용동선을 다시 조직하여 집의 성질이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제안이다. 침투는 단순한 물리적 개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가 직접 결합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인기척과 생활의 온도를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축적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사적 공간을 해체하는 데 있지 않고, 사적 영역 바깥에 있으나 여전히 집의 일부로 작동하는 중간 영역을 두텁게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침투하는 집’은 공동체를 강요하는 제안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삶의 흔적과 비공식적 사용을 세심하게 읽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건물 사이의 틈을 채우기보다, 그 틈 속에 이미 존재하던 삶의 가능성을 건축의 언어로 드러내고 재조직한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이해든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프라이버시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침투하는 집 저희가 기본적으로 그리드 접합 방식을 보시면 가변 개구 적합형이라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건물에 면한 앞부분에 그리드를 설치할 경우, 이 접합 방식을 통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가릴 수 있습니다. 렌더링에서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이 쉽게 설치할 수 있는 커튼을 두어 어느 정도 스크리닝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생각했습니다.
이해든 그렇다면 틈에 위치하는 새로운 개입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되나요? 각자의 영역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떤 합의하는 시스템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침투하는 집 확정된 공간은 파란색으로 표현된 부분입니다. 그 앞쪽으로 공용 공간을 만들어 두었는데, 아무래도 이 부분은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렌더링상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이 부분에 대나무 같은 목재나 가벼운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폴딩 도어를 두는 방안을 고려했습니다. 공용부로 내 공간을 더 확장하고 싶을 때는 폴딩 도어를 열어 집과 앞부분까지 함께 활용하고,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경우에는 폴딩 도어를 닫아 개인만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이해든 프레임 사이에 차단할 수 있는 무언가가 설치된다는 말씀이군요. 그 구조는 혹시 비계인가요?
침투하는 집 네,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빨간색으로 칠해진 부분들은 구조적 강성을 보강하기 위한 H빔이고, 그 빔에 시스템 비계를 접합해서 확장할 수 있는 부분들을 넓혀 나갔습니다.
이해든 비계라는 요소를 가변성 때문에 선택한 건가요?
침투하는 집 네. 아무래도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스스로 외부 공간 방향으로 침투해 나가는 것을 고려했기 때문에, 사용자가 직접 제작(fabrication)할 수 있는 시스템 비계를 설정했습니다.
홍보라 반복적으로 그리드의 ‘할당’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할당이라는 것은 주체가 있는 행위입니다. 그리드를 할당해 주는 주체는 누구인가요?
침투하는 집 두 집이 합쳐진 미래를 생각했을 때, 건축가가 그것을 분배하는 역할을 맡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재필 리서치 단계에서 튀어나온 것과 덧대진 것을 나름의 기준으로 분해하고 도시 구조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좋았습니다. 다만 이것이 ‘침투하는 집’으로 치환될 때, 구조물이라는 그리드에 한정되다 보니 행위가 드라마틱하게 증폭되기보다는 기존 행위가 조금 더 시스템화되는 정도에 머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차 제출물 중 알록달록한 콜라주에서는 사적 공간들이 서로 이어지며 새로운 도시 모델을 목표로 한 것 같았는데, 결과물은 가설적이고 건축가가 할당하는 수준에서 끝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 콜라주 이미지와의 간극을 줄이려 했던 것인지, 결과물의 방향성이 바뀐 과정이 궁금합니다.

침투하는 집 우선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었지만, 저희는 가리봉동에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며 서로 연결되고 싶어 하지 않는 갈등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리드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서로의 물건들이 충돌하는 상태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점유 가능한 범위와 공용부의 밀도를 정량화하여 갈등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중재자로서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판타지 이미지의 경우, 건축을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모일 수 있을지에 대해 러프하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실제 설계를 진행하며 접합부 등을 구체화하다 보니, 초기 스케치보다 사람들이 아주 세밀하게 모여들 수 있는 공간들을 더 섬세하게 다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기의 러프한 스케치와는 방향이 달라졌다고 판단하여 해당 콜라주 이미지는 제외하게 되었습니다.
임태병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구조체를 끼워 넣고 그리드 시스템으로 관계를 만들려 노력했는데, 이것이 거주자들만의 이너서클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 작업이 더 확장되어 가리봉이라는 동네와 광역적으로 어떻게 만날 것인지 고민해 보셨나요? 더불어 입면을 그대로 유지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내부의 변화에 비해 입면의 변화가 너무 적어 선처럼 느껴지는데, 문 하나를 내는 정도의 소극적인 제스처를 취한 이유를 함께 설명해 주세요.
침투하는 집 처음에는 큰 모델이 아니라 집과 거리 사이에 하나의 켜를 더 만들자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원래는 서너 필지까지 연결하는 안도 고려했지만, 그보다는 사이 공간 자체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하나의 연결을 제대로 시작하고 보행자 입장에서 거리를 지나가는 깊이를 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더 도시적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문의 경우, 집마다 하나씩 대문이 있는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다소 나이브해 보일 수 있지만, 두 집이 하나의 집이 되었을 때도 대문을 통해 ‘여기서부터 나의 집’이라는 영역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유지하며 진행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침투하는 집
분량3,854자 / 8분 / 도판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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