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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 소방 커먼즈

김한석, 박성욱, 안문석


김한석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박성욱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안문석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전통건축학전공


‘우리 어떡해’라는 말은 이미 어떤 사건·문제 안에 들어와 있을 때 튀어나오는 말에 가깝다. 이 말은 보통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책임이 명확하지 않을 때, 그리고 개인의 판단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을 때 등장한다. 즉 ‘우리 어떡해’는 공동체가 형성된 이후에 나오는 말이라기보다, 나와 네가 한순간에 우리로서 묶이는, ‘공동체가 강제로 호출되는 순간의 언어’다. 

이 말이 반복해서 등장하게 되는 삶의 구조에 주목한다. ‘우리 어떡해’라는 말이 자주 튀어나온다는 것은, 오늘날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범위가 자주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붕괴는 현재의 주거 환경과 도시 구조의 조건들에서 발화한다. 이 프로젝트는 그 불씨를 발견해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청년으로서의 우리’는 점점 더 축소된 주거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원룸은 의식주만을 담는 최소 공간이 되고, 생활의 상당 부분은 주거 바깥으로 밀려난다.  ‘우리’의 열악한 거주환경은 익숙한 나머지 드러나지 않는 잠재된 위협이며, 집 안에서의 공동감각을 가지는 생활은 실제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인, 일종의 현실적 판타지이다. 그럼에도, 서울로 향하는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거주환경의 많은 부분을 타협하며 전전한다.

청파동 일대는 서울의 중심부에 머무르기 위해 가파른 경사, 부족한 기반시설, 취약한 거주환경을 감내해야 하는 장소다. 청파동의 경사와 단차는 물리적 제약이자, 동네의 느슨한 질서를 형성하는 매개공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동네의 구옥들은 낡고 노후화되었지만, 다양한 형태와 양식이 공존하는 풍경을 자아내며, 구옥의 군집은 소방취약지역의 군집으로 이어진다. 청파동의 제약들은 이미 하나의 전제이자 조건이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공동의 판단이 요구되는 현실이 보편적이고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이를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를 하나의 전제로서 바라보고 일상과 비상이 이미 겹쳐진 상태로 살아가는 삶의 모양을 전제로 할 때, 건축은 이 조건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의 설계는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상지인 청파로 71길은 소방취약군집 내에 위치하며, 3.5m의 도로폭, 구불구불한 경사로의 쿨데삭이다. 청파동의 취약성을 모두 포함하는 조건을 가진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소방 커먼즈’를 제안한다. 소방차가 접근이 불가한 골목을 마주한 건물은 하나의 거대한 소방차처럼 작동하며, 골목의 형상에 맞게 삽입된 건축은 주변 구옥의 비상 상황을 대비하는 인프라가 된다.

계획안은 편복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되 복도 공간을 확장하여 선형의 동선을 면적 공간으로 전환하고, 이를 공동의 거실로 계획한다. 공용부의 요철은 외부의 소방 파이프와 조응하며, 일상과 비상이 중첩된 입면을 형성한다. 저층부에는 골목을 연결하는 샛길과 벤치, 창고, 공구함이 배치되어 일상의 활동과 비상 대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1층에는 자치회관이 위치하며, 경우에 따라 상업 임대 공간으로도 작동한다. 이 공간에는 ‘동네건축가’가 함께하며 운영을 조율한다.

공용부 입구에는 수전이 배치된다. 손을 씻는 행위는 서로를 마주하고 인지하는 반복적인 리추얼로 작동하며, 거주자들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장치가 된다. 공용공간에서는 신발을 벗어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책을 읽으며 머무는 행위가 소방 동선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이때 기존에는 가려져 있던 소방설비가 전면에 드러난다. 외부에는 드렌처 라인이 골목을 따라 흐르며 비상의 경계를 형성하고, 내부에는 스프링클러 파이프가 붉은 기둥의 형태로 공용부 중심에 서 있다. 이는 외부와 내부를 가로지르며 교차적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만든다. 일상과 비상이 번갈아 드러나는 ABAB 구조 속에서, 설비는 더 이상 숨겨지는 요소가 아니라 공간을 조직하는 기준이 된다. 구조체는 은폐되고, 안전을 위한 인프라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일상과 비상의 관계를 가시화한다. 이 붉은 파이프 기둥은 나아가 거실의 가구로 확장되어 기대고 머무르는 일상의 장면과 결합된다. 개인실은 앞뒤의 공용부와 발코니를 통해 채광과 환기를 확보하며 확장된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건물 사이에는 공용계단이자 방화벽으로 작동하는 코어가 배치되고, 그 사이의 테라스와 옥상은 외부에 열린 공용공간이 된다.

이러한 건축이 여러 지점에 분산 배치되면 마을 단위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기존 소방시스템이 닿지 못했던 골목은 새로운 건축을 매개로 작은 공동체 단위에서 작동하게 되고, 점 단위의 개인이 시스템의 핵심이 된다. 건축가는 그 사이에서 수평적인 소통과 조율을 담당하며, 비상의 대비는 점차 일상을 묶어주는 연대의 기반으로 전환된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이해든 거실이 지금 다이아몬드 형태로 되어 있고 나름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그 형태가 소방이나 방화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을까요?

청파동 공용부가 마름모 형상으로 잡힌 주된 이유는 소방의 관점도 있지만, 일단 복도가 아닌 넓은 면으로서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변주였습니다. 두 번째는 골목이 좁다 보니 맞은편의 낡은 구옥들에 드렌처(drencher) 파이프가 작동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파이프는 최대한 맞은편 건물을 향해 나아가야 하므로, 그런 맥락에서 요철 구조가 소방과 공공 공간의 측면 모두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해든 파이프는 어디에 있나요? 그게 우리 건물에도 쓰이고 맞은 편 건물에도 쓰이는 개념인가요?

청파동 파이프는 입면에 붙어 있습니다. 모형에서 보실 수 있듯이 건물의 가장 바깥쪽, 그리고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쪽으로 파이프가 붙어 있습니다. 거기서 파생된 수평적인 드렌처가 맞은편 골목의 건물에까지 작동할 수 있도록 입면이 튀어나와 있는 상황입니다. 평면에서 보시면 안쪽의 점선은 내부에서 작동하는 파이프와 드렌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앞뒤의 파이프와 테라스 부분의 드렌처는 전면과 배면, 실내와 건물 외부 모두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입니다.

홍보라 저는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소방 파이프라인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이해했습니다. 청파동은 커뮤니티 성격상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골목이나 작은 공간, 계단실이 많으니, 이를 외부로 노출해 긴급 상황 시 누구든 대응할 수 있게 한 것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부 노출 방식은 장점도 크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동파 등의 위험이 있어 노출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 텐데, 위험에 대응하는 방식을 가리지 않고 노출하는 방식을 제안한 것이 누구든 대응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인지, 혹은 실제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청파동 저희는 공용부에 대한 인상을 ‘현실적 판타지’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대한 실제로 작동하도록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면 공용부 안에서 파이프가 45도를 기준으로 돌아간 형상은 수직으로 뽑아낸 물이 분개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며, 물이 꺾여 나갈 때 수압에 저해되지 않는 각도입니다. 단면도를 보시면 안쪽에 있는 펌프의 규모와 크기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동파 문제의 경우, 입면과 배면에 있는 드렌처 안에는 물이 항상 차 있지 않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에서 끌어올려 작동하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리서치를 해보니 대부분의 드렌처는 항상 물이 차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종합하자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최재필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설비가 소방의 관점에서 도시적으로 가시화되고, 그것이 공동성의 형태와 연결되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결국 이 공동체 장소는 단순히 모이는 공간을 넘어 재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인데, 보통의 자치 회관이나 모임 장소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청파동 공간을 비워두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쓴다거나, 목구조라 따뜻해서 모인다는 추상적인 말보다는 ‘소방 커먼즈’라는, 비상시의 인프라이자 삶의 공간을 유지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 주목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마을 단위의 배수로 정비, 드렌처 상태 점검, 파견 소방관 교육 등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이러한 행위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것이 일상에서 항상 보인다는 근거가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모이게 되고, 그 후에 개별적인 유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재난에 대한 대비 자체가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 가장 큰 무기라고 보았습니다.

최재필 방금 설명한 것은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인데, 하드웨어적인 차이도 있을까요?

청파동 하드웨어적인 차이를 크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제안은 청파동의 도시 조직 자체를 재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다세대·다가구 주택처럼 대부분의 공간을 필로티로 사용하고 일부를 실내 공간으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레이아웃을 가져왔습니다. 작동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따로 만들기보다,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이 특별해진다는 점이 저희 안의 장점입니다.

임태병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제목이 ‘커먼즈’인데, 이에 대한 팀원들 나름의 정의나 의미가 있나요?

청파동 ‘커먼즈’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계획할 때 무척 쉽게 사용합니다만, 정작 그 영역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카페 같은 공간은 한시적으로는 내 공간이지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제약이 있습니다. 반면 저희 제안에서는 공용부에 상시 연결 가능하며, 내 땅이나 집이 아니고 옆집에 살더라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좁게 보면 거실 전체가 내 것 같기도 하고, 주방이 딸린 작은 공간만 내 집인가 싶기도 한 모호한 관계 속에서, 그럼에도 이곳이 ‘내 집’이라는 감각을 공유하는 것을 커먼즈라고 정의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청파동 소방 커먼즈

분량4,863자 / 10분 / 도판 14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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