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도시, 누적하는 건축
이장환
분량10,324자 / 20분 / 도판 16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강연록
포럼 개요
- 제목: 우리가 읽은 도시
- 일시 및 장소: 2025년 11월 11일 오후 7:30~9:30,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온/오프라인)
- 발표: 백진(서울대학교), 이장환(어반오퍼레이션즈, 중소도시포럼)
인구 감소의 역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은 1955년부터 계속 인구가 증가하여 1992년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37년 사이에 10배 가까이 늘었고, 그 이후로도 수도권에서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그 시기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고, 개발 압력이 있는 상태가 정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새로 짓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데도 수도권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수도권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 밖의 지역에서 인구가 그만큼 크게 감소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지역에서는 개발 압력이 생기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개발 압력과 반대되는 소멸 압력이 생겨나는 것이죠. 이 조건은 건축이 딛고 선 게임의 룰을 뒤흔듭니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건축가라면 이러한 변화를 읽어야 합니다.

중소도시와 한국성
1990년대 초부터 약 10년간 ‘서울건축학교'(sa)에서는 매년 여름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조성룡, 정기용, 민현식, 김인철, 승효상, 이종호, 김영준, 최욱, 최문규, 서혜림 건축가를 비롯해 약 20명의 건축가와 전국에서 모인 100여 명의 학생이 중소도시에 모여 진행하는 워크숍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7박 8일간 단체 숙식을 하며 해당 도시를 현장에서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발표하고 토론했습니다. 이 당시 주제를 살펴보면 ‘탐험’, ‘발견’, ‘한국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저는 sa 학생 자격으로 워크숍에 4년 연속 참여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워크숍을 이끌던 건축가들은 1980년대에 출간된 케네스 프램턴(Kenneth Frampton)의 저서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프램턴은 지역의 특수한 건축 언어와 근대의 보편적 건축 언어를 결합해 자신만의 언어로 만든 건축가들을 세계 무대 전면에 등장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알바로 시자의 건축을 논할 때 그는 시자 개인의 언어를 이야기하기 전에 포르투갈이라는 지역의 특수한 성격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스위스 티치노 지방의 건축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이 건축가의 언어를 떠받치는 토대로 놓인 것입니다.
당시 한국의 건축가들이 ‘한국성’이라는 주제와 개별 중소도시에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봅니다. 서울처럼 자본이 집적된 곳에서는 개발 압력에 건축이 잠식당할 수밖에 없지만, 중소도시에서는 지역의 고유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갈망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소도시에서 인구 감소가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따라서 워크숍에서 인구 감소나 지방 소멸과 같은 주제를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중소도시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만드는 변화
그렇다면 지금의 중소도시는 어떨까요? 김제는 2012년 인구가 9만 명대 중반이었습니다. 그것이 약 9년 만에 8만 명대로 줄었습니다. 도시 전체 인구의 약 10퍼센트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김제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남원은 1965년 18만 명이던 인구가 2025년 약 7만 4천 명으로 줄었습니다. 60년 사이에 인구의 약 60퍼센트가 빠져나간 것입니다. 남원의 인구 변화 그래프를 살펴보면, 2000년대 이전까지 감소세가 가파르다가 그 이후 다소 완만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소 속도는 늦춰졌지만, 이 시기에 인구 구성이 바뀝니다. 그전까지는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도시에 남아 있는 인구 가운데 젊은 층 비율이 높았고 70세 이상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20년에 이르면 70세 이상 비율이 크게 높아집니다. 반대로 0~20세 인구는 대폭 감소합니다. 앞으로 인구 유입과 출생자 수가 더 늘지 않는다면, 15~20년 뒤 지금의 고령층이 세상을 떠날 무렵 남원의 인구는 현재보다 한 단계 더 급격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고령화된 중소도시에서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도심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반 국도에서도 전동 휠체어로 질주합니다. 이런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이유는 인구 감소로 지역 대중교통 체계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버스 배차 간격이 한두 시간에 이르고, 하루에 두 번만 운행하는 노선도 적지 않습니다. 고령자에게 전동 휠체어는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입니다. 뒷부분에 적재 공간을 덧붙여 물건을 싣고 이동하기도 하고, 탄 채로 들어갈 수 없는 식당 앞에서 그대로 앉아 식사하기도 합니다. 이동 수단이 생활의 용도로 전용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형된 생활 방식이 중소도시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시가 아무리 고령화되더라도, 도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젊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젊은 층이 사라진 중소도시에서 이 역할을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맡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외국인 비자 발급 건수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비자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발급 건수도 급증했습니다. 2024년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265만 명에 달합니다. 거주 분포를 보면 이 가운데 상당수가 중소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중소도시에서 인구 감소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인구 변화는 수도권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도권 가까이 있는 아산, 천안, 진천, 음성, 서산 등은 인구가 증가하지만,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감소 폭이 커집니다. 수도권과 가까운 중소도시에서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수도권이 각종 규제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규제를 받지 않는 수도권 밖 지역 가운데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중소도시에서 산업단지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생기면서 인구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반면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중소도시일수록 인구는 계속 줄어듭니다. 전남 보성이 그런 예입니다. 이곳은 인구가 큰 폭으로 줄고, 고령층 비율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외국인 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취업 비자로 들어온 20~30대입니다. 평일 낮에 거리를 걷다 보면 마주치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활동량이 많은 젊은 외국인들입니다. 최근 입국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MZ세대는 돈을 쓰는 방식도 다릅니다. 과거에는 소득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소비하는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점이 늘고, 중소도시의 길거리에서 외국어 간판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 가운데 하나가 경남 김해입니다. 김해는 가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간직한 역사도시입니다. 김해 원도심 지도를 살펴보면 고려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길을 따라 1945년에 조성된 동상시장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길에 면한 건물의 간판을 전수조사하고 2011년과 2024년의 입면을 비교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 오래된 길 주변에 러시아,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중국, 파키스탄의 언어로 된 간판이 크게 늘어난 것을 확인했습니다. 2011년에는 외국어 간판이 한두 개에 불과했는데, 2024년에는 거의 모든 간판이 외국어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가 보면 한국인은 읽을 수 없는 간판이 즐비합니다. 동상시장에서는 외국인 종업원이 외국인 손님과 낯선 이국의 과일을 그들만의 언어로 흥정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광경이 도시 외곽이나 주변부가 아닌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 중심부에서 나타납니다. 지금 중소도시가 과거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전통적이고 정체성이 강한 곳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러한 조건 아래서 중소도시를 ‘한국성’과 ‘지역성’이라는 한정된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지금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김해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의 특이 사례가 아닙니다. 통계를 보면 앞으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 비율은 더 늘어날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가깝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구 감소가 불러온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판을 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드릴 이야기는 그 판 위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사안들입니다.
빈집, 천공, 소멸 압력
도시 내 인구 밀도는 계속 옅어지고 있습니다. 밀도가 옅어진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충북 제천과 충남 논산의 인구 변화를 보면, 두 도시 모두 1980년대에 비해 인구가 크게 줄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시가화 지역의 면적은 크게 늘었습니다. 1980년대 면적의 서너 배에 이릅니다. 인구 밀도는 인구를 면적으로 나눈 값입니다. 인구가 늘어도 도시 면적이 함께 늘면 밀도는 오르지 않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면적까지 늘면 도시 전반의 밀도는 크게 떨어집니다. 저희는 이를 인구 밀도의 옅어짐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현상은 중소도시에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일 낮 시내에 나가도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기 어렵습니다.
인구 밀도의 옅어짐 현상은 대중교통 체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인구가 줄어 승객은 감소하는데 운행해야 할 거리는 늘어나기 때문에, 버스 회사는 과거만큼 수익을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배차 간격을 늘려 비용을 줄이려 합니다. 지방 중소도시에 가면 버스 배차 간격이 한두 시간인 곳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뜸해진 배차는 이용객 감소로 이어지고, 이용객이 줄면 수익성이 나빠져 배차는 다시 뜸해지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소도시에서 대중교통 이용률은 줄고 자가용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북 남원은 1990년대 이후 시가화 지역의 규모가 네 배로 커졌습니다. 1990년대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톨게이트가 생기고, 그 주변으로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졌죠. 택지개발과 함께 원도심에 있던 법원과 시청 등 관공서가 옮겨 갔고, 이와 연계된 사업체들이 뒤따르면서 새 택지에 상권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이곳에 주차가 쉬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자가용을 주된 이동 수단으로 삼는 젊은 층이 이주했습니다. 그 결과 도시는 오래된 구조를 간직한 원도심과 새로 개발된 택지, 두 개의 중심을 갖는 구조로 바뀝니다.
택지개발 지역과 달리 원도심에는 4미터 이상 도로와 면하지 않는 필지, 즉 건물 신축이 어려운 맹지가 많습니다. 원도심의 골격이 현대 건축법이 생기기 전에 이미 짜였기 때문입니다. 조선 혹은 그보다 이른 신라 시대에 형성된 원도심은 블록 규모가 큽니다. 4미터 이상 되는 도로는 블록 바깥쪽에만 있어, 안쪽에는 도로와 면하지 않는 필지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큰 블록은 남원을 비롯해 김제, 논산, 문경 등 많은 중소도시 원도심에서 발견됩니다. 남원의 블록은 그 기원이 통일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방리 구획(坊里區畫)에 따라 계획된 남원 원도심은 가로세로 160미터의 블록이 반복되는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블록 하나가 160미터에 달하니, 안쪽에 위치한 필지는 도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어 차량 진입이 어렵습니다. 남원도 대중교통 체계가 무력화되어 주민 대부분이 자가용을 소유하는데, 블록 안쪽 건물에는 주차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블록 바깥 도로변에 차를 세웁니다. 그 결과 도로변에는 주차난이 생깁니다. 인구가 줄고 소멸을 걱정하는 도시에서 주차난이 생긴다는 것,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주차난이 생기는 도로변에는 3~4층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여러 프로그램이 들어차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인구 감소와 무관한 도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도로변 건물 바로 뒤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블록 안쪽은 도로와 면하지 않아 신축과 증축이 어렵기 때문에 예전부터 있던 단독주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블록 안쪽에 단독주택이 많다는 것입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소유 관계가 단순합니다. 집 한 채에 소유주가 한 사람이니, 그가 사망하면 그 집은 빈집으로 방치되다가 철거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은 중소도시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현상입니다. 중소도시에서 단독주택 비율이 대단히 높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전체 주택 가운데 단독주택이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군 단위 지역에서는 70퍼센트를 넘습니다.
블록 안쪽 단독주택이 빈집으로 방치되다가 철거되면 도시 형태(urban form)에 구멍이 뚫립니다. 저희는 이를 도시 천공(穿孔)이라고 부릅니다. 남원, 상주, 영주 등 여러 지역에서 천공이 나타나는데, 그 대부분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원도심에는 주차 수요가 크니,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빈집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블록 안쪽 단독주택 소유주의 연령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블록 하나의 전체 건물을 전수조사했고, 그 결과 대다수 소유자의 연령대가 60대에서 80대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앞으로도 인구의 유출이 유입보다 많고 사망이 출생보다 많다면, 이들이 떠난 자리를 채울 사람이 없게 됩니다. 그럴 경우 15~20년 사이에 블록 안쪽 건물 대부분이 빈집이 되고 천공이 생길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남원의 인구 통계를 살펴보면 1995년부터 유출 인구가 유입 인구를 웃돌고, 2005년부터는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웃돕니다. 이 흐름이 15~20년 안에 뒤집히지 않는다면, 블록은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비워질 것입니다.
블록 내 건물 대부분이 단독주택이라면, 소유주의 나이를 기준으로 앞으로 10~30년 뒤 블록이 어떤 형태가 될지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남녀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15년 뒤부터 블록 내 상당수 건물이 빈집이 되고 철거되면서 블록의 형태가 서서히 와해됩니다. 이러한 와해는 우리에게 상당히 낯선 사태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 반대, 즉 건물이 계속해서 채워져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채워지는 것은 개발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개발 압력이 작용하는 조건에서 건물 소유자는 최대치의 용적을 차지하고자 합니다. 이때 공공은 도시계획이라는 통제 수단으로 이러한 힘을 규제하고 깎고 다듬어 하나의 도시 형태로 만들어 나갑니다. 개발 압력이 힘이듯, 무언가 사라지는 것도 하나의 힘입니다. 가만히 두면 계속해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개발 압력이라는 힘을 통제하면서 도시 형태를 만들어 나가듯, 그와 반대되는 방향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소멸 압력이라는 힘을 이용해 새로운 도시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 말입니다.

덧대기 건축
전국 어느 중소도시에 가도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넘긴 증축 시설물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건축가의 눈에는 이러한 시설물이 조화롭지 않고,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것은 시청에 신고해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접어 두고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왜 생겨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곳에 소멸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건물은 최초의 소유자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고 계속 소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소유자와 건물이 함께 나이 들어 갑니다. 건물이 낡을수록 가장 먼저 균열이 생기는 곳이 바로 지붕 방수층입니다. 방수층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깔아야 하는 소비재라, 꾸준한 유지보수가 필요합니다. 몇 해마다 돌아오는 이 비용을 고령의 소유자가 계속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설치로 오랫동안 빗물을 막을 방법을 찾게 됩니다. 기존 지붕 위에 새 지붕을 덧대는 것입니다. 이때 덧붙여진 지붕은 원래 목적인 누수를 막는 것 이상의 것을 해냅니다. 뜨거운 복사열을 가로막아 여름철 실내를 시원하게 하고, 반외부 공간까지 덤으로 만들어 냅니다. 낡은 건물에 무언가를 덧붙여 성능을 보완하면서 새로운 공간까지 덤으로 얻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물이 중소도시 전반에 대단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시 안에 몇 개밖에 없다면 단속의 대상이 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원도심 전반을 뒤덮는 수준이라면 사정이 전혀 달라집니다. 확산의 규모가 임계점을 넘어섰다면, 이제는 이것들이 만들어지는 동력을 이해하고 그 틀의 연장선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소멸 압력을 받는 중소도시에는 자본도, 재정도, 인력도, 자원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새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 자체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무언가가 자발적으로 생겨나 도시의 풍경을 바꿀 정도라면, 그 힘을 도시를 재편하는 수단으로 삼는 편이 생산적이지 않을까요? 덧붙여진 시설물을 생산적 수단으로 삼으려면, 그것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건축적 분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분석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공간』에 「소멸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습니다. 그 글을 보면 덧붙여진 시설물이 어떤 잠재성을 갖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소멸 압력을 받는 중소도시에서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라지는 쪽입니다. 인구가 줄면서 빈집이 생기고, 그것이 철거되면서 천공이 발생합니다. 다른 하나는 덧붙여지는 쪽입니다. 한쪽에서 무언가가 사라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무언가가 계속 쌓여 갑니다. 인구 감소가 중소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이 두 방향으로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웃 나라 일본도 인구 감소를 겪고 있지만 이런 덧대기 현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진 등 재해가 잦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도시 유형(Type)으로서의 덧대기 건축
저희는 추가로 덧붙여지는 것들을 ‘덧대기 건축’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덧대기 건축’은 덧붙는 건물의 용도를 가리지 않습니다.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근린생활시설, 은행 등 중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건물에 나타납니다. 지금 보는 사진은 경북 김천의 도시 풍경입니다. 거의 모든 건물에 덧대기 지붕이 얹혀 있습니다. 이만한 물량을 도시계획의 마스터플랜으로 계획했다면 가능했을까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면 아마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 속 지붕은 외부의 지원 없이 모두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 지붕들의 색만 바꿔 보면 어떨까요? 지금 사진은 덧대기 지붕의 색을 하나로 통일한 것입니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바뀝니다. 도시 디자인 차원에서도 새로운 질서가 생겨납니다. 소멸 압력을 받는 도시에서 마스터플랜으로 도시 전체를 바꾸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멸 압력이 만들어 낸, 반복해서 나타나는 요소를 변형하는 방식이라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도시 전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생겨나는 덧대기 건축을 하나의 유형(Type)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유형은 ‘반복’에 기초하므로 공통의 질서를 내재합니다. 하지만 유형이 하나의 형태를 지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유형에서 다양한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형에 기초한 모델은 반복성과 특이성을 동시에 갖습니다. 따라서 유형의 관점에서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면 소수의 유형만으로 도시 전체의 질서를 만들면서 동시에 다양한 변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덧대기 건축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로부터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는 일입니다.




왜 유형 개념까지 끌어들이면서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일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중소도시에는 자본이 없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자본은 축적되지 않고, 개발 압력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파격적인 건축을 내놓거나 대규모 개발을 계획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얼마나 소모적인지는 지금까지의 숱한 시행착오로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조건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가 수행하는 연구는 그 안에서 작용하는 힘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 힘을 파악하고 활용해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마치 태극권이 상대의 힘을 자기 힘으로 바꾸듯 말입니다. 그래야 소멸 압력을 받는 도시에서 실행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원고화 김주현 / 편집 심미선
이장환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이자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입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건축학교(sa)를 졸업했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교(TU Delft) 건축대학원을 우수 졸업했습니다. 로테르담 소재 OMA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며 카타르 국립중앙도서관 설계를 비롯해 아시아, 유럽, 중동의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습니다. 귀국 후 기반시설의 대안적 가능성을 다룬 《또, 하나의 서울》(2019)과 《또 하나의 서울, 강과 산》(2022)을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전시했으며,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중소도시의 소멸에 관한 글을 『공간』에 연재했습니다. 2027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사라지는 도시, 누적하는 건축
분량10,324자 / 20분 / 도판 16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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