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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는 사이, 함께 먹는 공간

도연정

포럼 개요

  • 제목: 우리를 지속하는 힘
  • 일시: 2025년 11월 6일 오후 7:30~9:30
  •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온/오프라인)
  • 발표: 김다은(예술 기획자), 도연정(건축학자)

인간은 공식(共食)하는 동물이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이 인간 집단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개인에게 있어 언제나 음식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는 바로 가족이다. (…) 동물의 경우, 식사를 함께하는 것을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집단을 형성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동물에게는 개체 단위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원칙이며, 어린 새가 둥지에 있는 동안 부모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은 있어도, 그것을 ‘공동 식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는 부모와 자식 관계 밖으로는 확장되지 않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으로, 새끼는 성장하면 개체 단위로 식사하게 된다. 물론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는 육식동물이 대형 먹잇감에 몰려들어 먹는 일이 있다. 그것은 언뜻 보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음식을 나눠 먹는 것과는 구분된다.

먹는 즐거움을 나눌 상대가 아무나 되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과 식사를 함께 하느니 차라리 혼자 먹는 편이 낫다. 유럽이나 미국의 레스토랑에서는 아무리 가게가 붐비더라도 모르는 사람끼리 합석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 각 사회나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가족, 친구, 직장이나 학교의 동료 등, 식사를 함께 해도 괜찮은 사람들의 범위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공동식사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일정 범위의 사회적 영역을 지니고 있다. (…) ‘한솥밥을 먹은 사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인간 집단은 식사를 함께 함으로써 연대감을 깊게 하고, 집단은 더욱 강화된다. 식사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기도 하다.

— 이시게 나오미치, 『식사 문명론』, 2016

식사와 공동체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먹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단결의 중요한 과정이 되곤 합니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 일단 같이 밥을 먹죠. 일을 하다가 잘 안되면 힘내라고 또 먹습니다. 일이 잘되면 잘된다고 먹고, 일이 끝나면 끝났다고 먹습니다. 음식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그 모임을 유지하게 합니다. 하지만 앞의 인용문에 나온 이시에 나오미치가 밝힌 공동 식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먹는다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누구와 먹을 것인가?’, ‘ 어디서 먹을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를 참고하여, 먼저 최근 논의되고 있는 부엌과 식사 공간의 미래에 관해 먼저 짚어보려고 합니다.

아파트 조식 서비스와 한계

미래 주거에 대한 논의는 시대를 불문하고 늘 있어왔지만, 특히 2020년경부터 주거분야에서는 ‘코로나 이후 시대의 주거’라는 질문이 크게 자리했습니다. 미래주거의 다른 표현이었죠. 그중 앞으로 부엌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부엌은 없어지거나 축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고 보여집니다. 근래는 배달 음식을 많이 먹고 가정간편식(HMR)이 발달하다 보니 ‘더 이상 집에서 밥을 안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증가한 것이죠. 2019년 경에는 매스컴에서 주방 폐쇄, 키친 클로징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홍콩이나 말레이시아처럼 간이 부엌(kitchenette) 정도만 두고 모두 밖에서 사서 먹게 될 것이다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배달음식에 대한 회의가 들었던 현상도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배달포장 쓰레기가 너무 많이 늘거나 배달음식이 질리기도 하여, 집에서 직접 밥을 해먹게 된 것이죠. 이에 따라 부엌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더 늘게 된 것도 코로나 시기의 흥미로운 현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엌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커보입니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일명 ‘밥 주는 아파트’, 즉 아파트 조식서비스를 말합니다. 서울에서 최초로 조식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내세우는 아파트는 트리마제라고 알려져있습니다만, 최근 강남이나 서초 등 재건축아파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파트 조식 서비스는 운영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케이터링이나 반조리 식품을 제공했기 때문에 메뉴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강남의 모 재건축 아파트에서는 레스토랑 수준의 주방을 갖춘 적도 있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케이터링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조리한 따뜻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죠. 하지만 입주가 시작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조식 서비스에 대한 지속 가능성 논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불만은 메뉴에 관한 것입니다. 메뉴의 단조로움을 불평하기도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먹는 이들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식당 공간에서 뛰어다니더라도 이곳은 일반 식당이 아니라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이기 때문에 직원이 제재하기 어렵습니다. 이용자 모두가 입주민이자 공간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또 다른 불만은 관리비 보조입니다. 아파트 조식 서비스는 커뮤니티 시설인 만큼 외부 식당에 비해 임대료 부담은 없지만, 가격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기에 일정 부분 관리비를 통해 운영비 보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입주민까지 해당 서비스 운영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이렇듯,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단순한 섭식 이상으로 공동체 형성과 유지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를 건축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엔드 주거, 고급 아파트 단지의 조식 서비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공간을 절약해 준다는 등의 경제적 논리만으로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러한 서비스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는데, 그 이유는 부엌을 연구하면서 역사 속에 등장했던 많은 공동 부엌이나 공동 식당 사례들이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종교 공동체의 공동 부엌과 공동 식당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종교 공동체 주거에서 등장한 공동 부엌과 공동 식당의 사례로 셰이커 공동체(Shaker community)와 오네이다 공동체(Oneida Community)가 있습니다. 두 공동체는 18세기 종교 대각성 운동의 흐름 속에 등장한 신흥 종교를 바탕으로 하며,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사적 재산 소유와 핵가족 체제를 거부하고 공동 가족제를 지향했습니다. 거대한 공동주거시설을 만들었고, 식사와 가사 노동을 모두 함께 하는 공동생활이었습니다.

셰이커 공동체는 1776년 뉴욕주에 정착하여 공동체 주거를 건설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산의 공동 소유를 지향했으며, 철저한 금욕주의를 실천했습니다. 성생활을 인간의 탐욕과 타락의 근원으로 보았기에 독신주의를 유지했고, 평등과 근면, 평화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공동체 주거는 한 동에 30명에서 1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며, 기숙사처럼 성별을 분리하여 거주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셰이커 공동체는 음식만들기, 식사와 치우기, 청소와 세탁 등의 가사노동을 모두 공동으로 수행했습니다. 이는 특정 개인에게 가사 노동이 집중되는 핵가족과 반대되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가사 노동의 성별 역할 분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생산 노동은 남성이 담당하고, 빨래나 요리, 청소와 같은 가사 노동은 여성이 담당하는 방식을 지향했습니다.

[그림 1] Dinner Time At Mount Lebanon Shaker Village 1870s / Public Domain
[그림 2] Shaker communities, New York Tribune August 20, 1905 / 출처: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https://www.loc.gov/resource/sn83030214/1905-08-20/ed-1/?sp=13.)

이러한 가사노동의 공동수행 방식은 오네이다 공동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상낙원’을 추구했던 오네이다 공동체는 그들의 대규모 주거 시설을 가리켜 맨션 하우스라고 불렀습니다. 다만 이들의 가족개념은 셰이커와 달랐는데요, 셰이커 공동체가 금욕을 주장했다면 오네이다는 복합 결혼과 자유연애를 주장했습니다. 그들 나름의 종교 안에서의 가정을 확대하고 개선을 이륙하겠다는 목표로 커다란 집을 짓고 공동의 가사를 수행하며 살았습니다.
이러한 종교 공동체의 공동 주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공동 부엌과 공동 식당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은 종교 공동체가 유지되는 동안 함께 지속되었습니다. 즉 종교공동체의 와해와 함께 시설도 문을 닫게 된 것이지요. 공동부엌과 공동식사 등 공동의 가사노동은 공동체가 존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림 3] Visitors Eating Strawberry Shortcake in Quadrangle, c.1870 / 출처: The Syracuse University Library
[그림 4] 오네이다 커뮤니티의 공동식사 / 출처: The Syracuse University Library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공동체 주거

유토피아 사회주의 공동체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초기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이상적이고 평등한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가사 노동에 반대하고 여성의 인권 향상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또한 주거 개혁을 통해서 이를 실현하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공동 부엌과 공동 식당의 사례가 등장합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가 만들어냈던 주거 공동체 중에 개념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샤를 푸리에(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의 팔랑스테르(Phalanstère)입니다.

기본적으로 푸리에는 핵가족을 기반으로 한 결혼 제도와 사적 주거를 부정했습니다. 전통적인 가족 제도가 남성에게는 가장의 책임을, 여성에게는 가사 노동의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정의 책임과 가사 노동의 부담으로부터 모두 벗어날 수 있는 공동체 시설을 꿈꾸었고 그 개념으로 팔랑스테르를 제안했습니다. 팔랑스테르는 고대 그리스의 군대 진형인 팔랑크스와 수도원을 뜻하는 모나스테르의 합성어로, 이상적인 집단 생활을 꿈꾸었던 공동체주거 개념이었습니다. 거대한 궁전 같은 공동 주거 안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고 여성 권리를 신장하며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이 개념은 사를 푸리에를 추종했던 많은 집단에 의해서 실현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앙드레 고댕이 프랑스 기즈(Guise)에 건설한 파밀리스테르(Familistère)를 들 수 있습니다. 파밀리스테르는 푸리에의 이념을 실현한 공동체 주거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앙드레 고댕은 푸리에의 신봉자로,1853년 텍사스에서 팔랑스테르를 실현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후 기즈에 적절한 부지를 확보하고, 같은 푸리에 주의자였던 빅토르 칼랑과 함께 다시 사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초기 계획은 노동자 가족과 중산층 가족을 포함한 84세대 규모의 단지를 짓는 것이었는데, 고댕에 의해 3개의 주거 동과 나머지 부속 시설군으로 구분해 훨씬 더 큰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파밀리스테르의 부엌은 완전한 요리를 제공하는 작업장이라는 이상적 목표에 따라 건설되었습니다. 각 주호에는 개인 부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공동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고댕이 사망한 후, 파밀리스테르는 점점 위축됩니다. 결국 1968년에 협회가 해체되었습니다. 그 후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광지로 개발되었고, 민간에 개방되었습니다. 기즈의 파밀리스테르는 비록 영속하지는 못했지만, 푸리에의 개념에 가장 가깝게 실현되었던 사례라는 점에서, 이후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이나 공동주택을 꿈꾸었던 건축가들에게 개념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림 5] Plans and elevations of the Familistère of Guise. Printed, Thierry & Cie , 1884. / 출처: Familistère of Guise Collection

멜루시나 페이 퍼스의 협동 가사 관리

종교적인 신념이나 사회주의 공동체 경우가 아닌, 핵가족제 안에서 공동 부엌을 만들었던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멜루시나 페이 퍼스의 활동 및 이론입니다. 그는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빨래, 청소, 요리 등 가사 노동을 전문가에게 위임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조합원이 낸 조합비로 충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경에는 19세기 서구 사회에 팽배했던 성별 영역 분리주의가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남성은 바깥일이라는 개념이 공고했고, 퍼스는 그 개념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결정적인 부분은 반대했습니다. 중산층 여성이 가사에 집중하는 일이 가정을 안정시킨다는 점에 동의했지만, 주부가 직접 육체적인 가사노동을 감당해야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 것이죠.

여기에는 19세기 후반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가사노동 담당자가 바뀌게 되었던 배경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하녀가 있었기 때문에 가사 노동의 부담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오며 과거 하녀 일을 하던 여성 노동자는 가사 노동 대신 공장 일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중산층의 경우 주부가 직접 부엌일을 맡고, 청소까지 혼자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에 대해 퍼스는 직접적이고 육체적인 가사노동과 진정한 가정 관리를 분리하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즉, 주부들은 조합을 통해 가사노동을 ‘관리’하고 직원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청소, 음식조리, 빨래 등을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주장이었죠. 이는 당시 함께 제기되었던 ‘가사 노동의 전문성’이라는 주장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한편, 퍼스는 조합에서 식료품점도 운영하고, 이익이 나면 함께 나누고, 손실이 나면 같이 부담하는 방식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일의 목적이 단순히 자신들 개개인의 삶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데에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중산층 주부가 조합을 구성해 가사 노동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면 교양을 쌓을 여유가 생기고, 이는 자녀 교육과 가정의 안정,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며, 여성이 훌륭한 시민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멜루시나 페이 퍼스의 협동 가사 관리는 기본적으로 조합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구상은 영국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방식을 참고한 것이었고, 부분적으로는 푸리에가 제시한 공산주의적 성격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로버트 오언이 주장한 가사 노동의 공동 수행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고, 캐서린 피처가 주장한 가사 노동의 전문성이라는 개념도 포함됐습니다. 이렇듯 그의 주장은 다양한 사상을 수용해 체계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퍼스는 1869년 조직위원회를 결성하고, 본부 건물 임대, 이사회 설립과 정기총회를 개최하며 협동 가사 관리 조합을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조합은 입회비와 출자금, 연 4회의 회계 정산, 이익과 손실의 공동 분담 등 체계적인 회칙을 갖추고 운영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산층 주부를 중심으로 한 회원제 조합이었지만, 남편의 동의와 지원(조합비)을 전제로 했습니다.

조합의 의회 구성에는 남성을 포함할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부엌, 세탁, 의복 관리와 같은 핵심 가사 노동은 조합원을 각각 책임자로 두어 기본적인 관리 책임을 표명했습니다. 본부로 쓸 건물을 대여하였고, 1층에는 계산대와 판매실, 상담실, 피팅 룸이 있고 2층에는 공동 부엌과 베이커리, 세탁실, 작업실 등이 있는 구조였습니다. 공동 식당은 3층에 배치되었는데, 2층의 공동부엌에서 음식 배선이 수월할 수 있도록 덤웨이터를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멜루시나 페이 퍼스의 계획은 파격적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시도는 채 1년을 가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조합비 확보의 어려움, 운영 경험 부족, 회원 남편들의 개입 등으로 조합은 와해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한 반대와 가정 경영자로서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가정과 조합 업무를 병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 남편들은 자기 부인이 다른 가정의 가사 관리에도 관여한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자연스럽지도 않고, 내용도 없고, 야망만 가득 차고, 여성적이지 못한 행위’라는 비난 속에서 조합은 문을 닫게 됩니다. 심지어 공동부엌은 채 열어보지도 못하고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퍼스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자신의 주장에 관한 이론 활동을 전개했고,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1884년 자신의 이론을 『협동가사관리』(Co-operative Housekeeping)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됩니다. 이 책의 부제는 ‘How Not To Do It and How To Do It’(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으로, 선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퍼스는 ‘가정은 남자들에게 안락과 휴식과 행복의 장소이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좀처럼 그렇지 않다. 가정이 여자에게도 행복과 행복의 장소일 수 있지만, 동시에 노동의 장소, 보살펴 줘야 하는 장소, 실망의 장소, 그리고 피로의 장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가정을 바라보는 당시의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인식을 이야기하면서, 협동가사관리를 피력했습니다.

[그림 6] CO-OPERATIVE HOUSEKEEPING (Melusina Fay Peirce, 1884)

부엌 없는 집

퍼스의 주장은 비록 실현되지 못했지만, 건축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부엌 없는 집’이라는 개념을 선보인 것입니다. 퍼스는 가사노동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상황에서는 집집마다 부엌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개별적인 부엌을 두지 않고 공동의 부엌을 두자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4개의 ‘부엌 없는 집’을 한 블록으로 삼고, 그 10개의 블록이 하나의 주거 클러스터를 이루되 가운데 블록은 공동부엌과 세탁실 등 공동가사시설로 삼는 방식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퍼스는 이런 주장을 하면서, 이는 반드시 여성건축가가 앞장서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여성건축가야말로 부엌과 가사노동의 부담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부엌없는 집 개념을 주장한 또 하나의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샬럿 퍼킨스 길먼입니다. 퍼스가 ‘키친리스 하우스(Kitchenless house)’라는 용어를 내세운 반면, 길먼은 ‘키친리스 홈(Kitchenless home)’을 주장합니다. 길먼이 페이퍼스의 영향을 받은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완전히 똑같았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길먼은 부엌을 가사노동의 핵심이라고 여겨, 부엌이 곧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적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길먼은 집에서 우선 부엌을 분리하자고 주장했고, 부엌을 비워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간적 여유를 또다른 의미있는 것으로 채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집에서 부엌을 없애는 대신, 그 공간을 어떤 형태로든 바꿀 수 있도록 남겨두라. 그곳을 꼭 살림살이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 Perkins Gilman, Women and Economics: A Study of the Economic Relation Between Men and Women as a Factor in Social Evolution (1908), p.299.

길먼에게 부엌이 없는 집은 가사 노동이 사라진 집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가사노동 문제를 해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이에 길먼은 여성이 가사노동을 직접하기보다, 오히려 사회경제활동을 통해 경제력을 만들고 자신이 번 돈으로 가사 노동을 전문서비스로 구입하는 형태가 옳다고 보았습니다. 길먼의 아이디어는 앞서 언급한 멜루시나 페이 퍼스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는 조합방식 대신 사업화나 산업화를 주장했습니다. 가사노동을 서비스로 구입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지요. 오늘날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거나 식품 배달, 세탁소나 청소서비스 이용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부엌없는 집’의 아이디어는 동시대 페미니스트 건축가에게 큰 영감을 주어, 실제로 이상도시 계획안에 반영되기도 하였습니다. 마리 스티븐 하울랜드의 멕시코 토폴로밤포 계획안(Topolobampo colony, 1880-90)이나 앨리스 오스틴의 라노 델 리오 계획안(Llano del Rio Colony, 1916)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실현되지 못했고 계획안으로만 남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 시행착오와 교훈

우리는 집에서 부엌이 사라질 것이라는 상상을 쉽게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본성, 본능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와 밥을 먹을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문제도 복잡하게 결부돼 있습니다.

종교 공동체와 유토피안 사회주의 공동체의 공동 부엌은 공동체가 지속되는 한 제 기능을 한 것에 반해, 퍼스와 길먼이 주장한 ‘부엌 없는 집’은 종교적 이념에 바탕을 둔 계획이 아니었고, 얼마 못 가 그들의 계획이 실패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공동으로 밥을 먹는 일과 공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규칙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개별적인 사람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동의 부엌을 운영하기는 어렵습니다.

퍼스나 길먼의 아이디어가 번뜩였음에도 왜 실패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길먼이 쓴 문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애와 가족의 결속, 나아가 가족의 존재 자체가 함께 밥을 먹는 것에 달려 있다는 말이 굉장히 감상적이다.” “식탁보 하나로 겨우 묶여 있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것이라면 그 가치를 의심해 볼 만하다.” 이는 먹는 것과 공동체 사이의 관련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부정했다고 볼 수 있죠. 이시게 나오미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것을 통해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고 그 집단 안에서 정체성을 추구하게 된다. 식사를 나누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훈훈한 메시지를 담은 말 같지만, 바꿔 말하면 마음을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는 얘기일 수도 있어요. 그만큼 미묘한 문제입니다.

한편,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부엌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식당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식공간은 만들어서 먹는 공간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두 공간이 항상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동선상 연결돼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두 공간의 연결 관계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먹는 공간이 굉장히 예민하고 보수적이기 때문에 소멸을 함부로 논할 수 없고, 마음대로 확장하거나, 어떤 형태로 정형화되리라는 것을 쉽게 논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민감한 영역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이유는 급변하는 가족 유형 때문일 것입니다. 가족은 과거 혈연관계로 규정되었으나 그 의미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가족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축에 있어서 식공간을 논하는 것은 건축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다학제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회학, 여성학은 물론이고, 이번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역사 속 여러 시행착오 사례를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발표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원고화 김주현 / 편집 심미선


도연정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한국 근대주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제11회 심원건축학술상, 2022년 한국주거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습니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2018년 건축연구소 후암연재를 설립, ‘한국건축의 전통성과 근대성’에 관해 연구해 왔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BK21 교육연구단에 재직 중이며, 저서로 『근대부엌의 탄생과 이면』(2020, 시공문화사), 『서울시민의 주생활』(2021, 서울생활사박물관, 공저), 『일제시기 건축도면 해제 5, 7』(2011, 2014, 국가기록원, 공저) 등이 있습니다.

함께 먹는 사이, 함께 먹는 공간

분량11,785자 / 23분 / 도판 6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강연록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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