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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실천

강림, 겜돌이, 곰, 냥꾼, 닥터페퍼, 쪠, 채운, 천하장사

잡담회는 세 번째 읽을거리로 40호 『등장하는 건축가들 6』을 골랐다. 이 책은 2024년 7월 진행된 포럼 시리즈 ‘등장하는 건축가들: 구분되기와 구분짓기’의 기록으로, 이듬해 2월 발행되었다. 포럼의 내용은 발표를 원고로 정리한 강연록, 에세이, 영상 등 각 건축가에게 맞는 방식으로 담겼다. 잡담회는 (예비) 건축가의 관점에서 여섯 번째 시즌 건축가들의 생각을 유심히 살폈다. 멤버들은 건축가의 조건과 역할, 말과 글, 과정과 용기에 관해 잡담했다.

등장하는 건축가들 6

  • 일시: 2026년 5월 25일 월요일 오후 2:30 – 오후 5:00
  •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
  • 참석: 강림, 닥터페퍼, 겜돌이, 곰, 쪠, 냥꾼, 천하장사, 채운

차례

  1. 누가 건축가인가? 나는 건축가인가?
  2. 두려움과 실재
  3. 자연과 실천
  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허성범의 자연-인공-자연

강림: 허성범의 ‘우리는 결코 자연적이었던 적이 없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이 글은 잡담회 구성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던 글이었던 것 같은데요. (웃음) 저는 굉장히 흥미로운 글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들어서 기후 위기나 인류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기도 하고요. 이윤석과 허성범의 글을 묶어서 보면, 이들에게 건축은 건축보다 더 넓은 어떤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정의되는 것, 혹은 동시에 여러 가지와 복잡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 정의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건축과 세계의 관계라고 할까요? 이윤석에게 건축은 다양한 업역들과 관계 맺고 협업하는 일이기에 의미가 있고, 허성범에게 건축은 자연을 다루는 일이에요. 동시에 허성범의 글에 따르면, 그와 같은 다룸, 배치를 통한 인공 환경의 조성이 오늘날에는 행성적인 규모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연과 인공 환경의 대립 자체가 무화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애초에 저희가 떠올리는 ‘순수한 자연’이라는 것조차 인공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지적하죠.

이 글에서는 저희가 보기에는 ‘순수한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원주민 부족을 예로 들어 대단히 레비스트로스적인 이야기를 해요. 그들의 관념 속에는 순수한 자연이 없다는 것이죠. 그들이 보기에 그들 자신은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구성된 인공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순수한 자연이라는 관념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이죠. 도시화 과정에서 순수한 자연을 떠올리게 된 거예요. 그린벨트를 지정한다거나 공원을 만드는 식으로 자연을 보존하거나 통제하려는데, 사실 그린벨트 보존과 같이 순수한 자연을 보존하는 행위도 공원을 만드는 것과 동일한 일종의 통제라고 설명해요. 이 생각이 더 나아가, 순수한 인공 환경 속에서 드러나는 자연성 혹은 인공 환경이 부여하는 자연성에 관한 작업까지 이어져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허성범이 생각하는 자연과는 다를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고 나서, 혹은 평소에,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모두: (긴 침묵)

강림: …오늘 너무 힘드네요!

곰: 자연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통념적인 자연이라 정의해 보면, 건축이 자연에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이 글이 말하듯 자연을 지키려는 인간의 행위조차 인공적인 것이고 근대에 발명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반대로 ‘그럼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인공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는 자연적인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요, 그 정도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아요. 그럼 무엇을 여기서 더 고민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살던 대로 살면 되겠다’ 싶죠.

허성범의 글은, 뭐라고 할까요,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하긴 하는데, 그래서 결과적으로 독자가 자신의 어떤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모르게 하는 글처럼 느껴져요. 저희가 생각하는 통념적인 자연은 아마 식물이겠죠? 식물을 지켜야 할까요? 지켜야 하겠죠. 분명히 저희와 상호작용하고 공존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린벨트는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공적인 것이다? 그것도 동의해요. 그럼 어떻게 해요? 그린벨트를 없애야 하나요? 제 입장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의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글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에요.

닥터페퍼: 그린벨트 또한 인공 자연이고, 그렇게 보존하기 위해 보존한 자연은 힘을 잃을 것이다. 오히려 인공 자연이나 인공 환경 속 자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 글을 읽으면서 박물관이 생각났어요. 혹은 보존되고 있는 건축물들. 보존되고 있는 건축물도 굳이 따지자면 역사적 테마파크와 문화재로 나눌 수 있어요. 둘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해요. 문화재는 보존해야 하는 역사적 가치가 분명하겠죠. 그린벨트도 문화재처럼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봐요. 반면 인공 자연 등은 역사적 테마파크처럼 저희가 자연의 가치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체험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보고요. 이 두 가지를 구분해서 각각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천하장사: 저는 헷갈리는 것이,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자연’이 실재하는 숲처럼 생물학적인,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 없이 발생한 것을 지칭하는 것인가요?

강림: 인공 환경과 대비되는 개념이 아닐까요? 그러면 둘 다 해당되는 것 같아요.

채운: 저도 읽으면서 천하장사가 지적했던 것이 조금 헷갈렸는데, 처음에는 자연이 ‘녹지’를 지칭한다고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자율’이라는 단어도 쓰셨길래, 자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자연을 쓰셨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자연을 녹지라고 생각하고 글을 읽어보아도, 자연 = 녹지가 인공적 환경 속에서 자율적으로 발생한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그것도 자연일 수 있고, 공감이 가는 구분이에요.

예를 들어 건축물 인허가를 넣을 때도 ‘자연 조경’과 ‘인공 조경’을 구분하는데, 사실 둘은 건물 입장에서는 같은 역할을 하는 녹지예요. 원래 있었던 것이냐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따라서 그린벨트가 인공적으로 보존되는, 지정된 장소다, 이런 사실에 강박적인 죄의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인공적인 기술을 더 활용해서 인공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더 깊게 개입하는 것이 크게 보았을 때는 건물과 자연의 좋은 관계를 만들 수도 있어요.

강림: 행성적 도시화란 지구 위 일부 지역에 불과한 도시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구 전체가 식민화된다는 개념이에요. 도시를 유지하는 전 지구적인 인프라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죠. ‘도시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이 어디서 오느냐’까지를 따지고 보면 지금은 지구 전체에 도시가 아닌 곳이 없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행성적 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을 강조하는 거죠.

따라서 이 글은 자연의 탈식민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하는 글로 볼 수도 있어요. 저희는 자연을 보존하고 지키고 개입을 자제하면 순수한 자연이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행성적 도시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희는 자연을 그대로 둠으로써 뭔가를 착취하고 갈취하고 있는 거예요. 혹은 윤리적 면죄부로서, 도시 생활에 필요한 어떤 이미지로서 자연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죠. 이 무력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인공성 속에서 발현되는, 인공 환경 속에 내재하는 자연을, 자연성을 이용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한 것으로 저는 글을 이해했어요.

겜돌이: 처음 읽었을 때는 이 글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지금 생각을 계속 다시 하고 있어요. ‘우리는 결코 자연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글의 제목처럼, 이 글을 다 읽고 나면은 결국에는 우리 주변에 자연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인공 환경과 자연이라고는 하지만, 이 글에 따르면 그 도식은 결국 ‘개발된 인공 환경’과 ‘개발 가치가 있지만 아직 개발하지 않은 인공 환경’ 두 가지로 환원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지금껏 당연시했던 자연성, 그러니까 누군가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순환하고 뻗어나가고 만들어지는 자연성이 정작 저희가 지키고 보존하는 자연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속성이라는 거예요. 저희는 이미 보았잖아요, 서울에서. 주거 공간이 없어지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거기에 아파트를 올리자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잖아요. 그렇다면 그린벨트라는 것도 사실은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것이죠.

저는 그 의견에까지는 동의하는데, 마지막쯤에 나오는 발코니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공모전 제출안을 보았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실망스러운 마음이었어요. 글의 앞쪽에 이렇게나 거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결과물은 너무 작고, ‘이 작은 것만으로 앞선 거대한 이야기들을 지탱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궁극적으로 허성범이 주장하는 바가 자연과 인공 환경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결국에는 자연이라는 것이 없다면, 자연을 우리가 의도적으로 조성하거나 보존할 수 없다면, 인공 환경을 구축할 때 자연성이 어떻게 섞여 들어갈지를, 그리고 인공 환경에 자연성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라고 이해했어요. 그렇다면 발코니는 모르겠지만 허성범의 공모전 계획안에는 설득력이 깃든다고 최종적으로 생각해요.

사실 저는 자연과 인공 환경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허성범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림: 반대로 저는 무시무시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작은 프로젝트 하나에도 이 글 정도의, 사상적 배경이라고 할까요? 그런 무거운 생각이 있다는 것이. 큰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 중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오늘날은 커다란 생각이 있다고 커다란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적인 자본이 제약되어 있기도 하지만, 커다란 생각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느껴요. 그래서 요즘에는 커다란 생각을 담은 미소한 프로젝트가 재미있어요. 간단해서 더 직관적이고, 실천적이기도 하고요.

일단 쓰기

강림: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게 이야기해볼까요? 

모두: (조용)

강림: 다들… 자유롭게….

채운: ‘흑역사를 쓸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자신이 건축가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한 멤버들이 몇 명 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말을 못 하겠어요. 저희의 대화를 근거로 생각해 보았을 때,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자신이 건축가라는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확신이 없기에 저는 자발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의 역할과 입장을 아는 것은 객관적으로 봐도 쉽지 않은 일이고, 제가 어렵게 꺼내놓은 말이나 단어 하나하나에 제가 모르는 커다란 배경이 이미 있기 때문에 건축에 대해서 말을 꺼내기가 무서워요.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결국 제 말이 누군가 욕할 수 있는 어리석은 발언이 될지라도 일단 뱉어내고, 제 말을 공유해야, 서로에 대한 자극을 계속해야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입을 열게 되는 것 같아요. 잡담회도 그렇고 『미로』도 그렇고 『건축신문』도 그렇고, 이런 플랫폼들이 결국 누군가가 흑역사를 쓰게끔 하는 촉매제라고 생각해요.

한편, 저의 작은 소망으로는, 아까 겜돌이가 강림의 말을 인용하기를, “일부러 쉽게 쓰는 것은 대중 기만이다”라고 했다는데, 저는 좀 쉽게 써줬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저는 저희가 이렇게 토론할 때도, 전문적이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가끔 누군가 하는 농담에 웃음이 터질 때가 너무 좋아요. 긴장감도 조금 가시고요. 그렇게 힘을 빼야 제가 갖고 있는 조그마한 생각들을 모두 편하게 풀어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제 생각이 없더라도, 이미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국 건축계가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닥터페퍼: 채운이 흑역사를 쓸 용기가 어느 정도 생긴 김에 이 책과 엮어서 질문을 하나 해보자면, 채운이 생각하는 건축이란 무엇이죠?

채운: 네? 건축이 무엇인가? 건축이란 무엇이냐고요? …너무 어려운데요?

강림: 그건 질문이 너무 어렵죠! (웃음) 채운의 말 중에서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이, ‘과연 내가 말을 했을 때 누가 듣고 대답할 것인가?’ 그러니까 반응을 상상할 수 있어야 어떤 말을 하는 의미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아마 소수를 제외하고는, 학교를 졸업하고 실무 수련을 하면서 건축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성실한 사람이더라도, 일종의 외로움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 외로움은 이 계(field)에, 한국 건축계에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한국 건축계의 구성원일까요? 저는 한국 건축계의 멤버일까요? 대부분의 건축학도 혹은 실무 수련자로서는, 여기에 곧바로 대답할 정도로 계에 강한 결속력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 거예요. 항상 팔로우업 하는 입장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기만 하는 입장인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그런 외로움이 오래되다 보니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함으로써 담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겜돌이: 흑역사를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강림: 그러니까요! 다들 역사를 쓴다고 생각했을걸요?

겜돌이: 저는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많이 쓰지도 못하는데, 제가 갑자기 저도 모르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어요. 토해내듯이 쓰는 것들이 저는 대부분이에요. 도저히 뭔가를 적지 않고서는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을 때, 그때 토해내듯 써요. 흑역사를 쓴다는 생각은 없어요. 나중에 가서야 ‘괜히 썼나?’ 싶은 생각이죠.

흑역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중에 발견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연예인들의 흑역사도 그 순간에는 최선의 노력이고 솔직한 진심일 수도 있어요. 나중에야 놀리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마찬가지로 글을 생산할 때 ‘이건 흑역사야’라고 생각하며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럴수록, 그 순간에 무언가를 남기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글을 쓸 때에 최대한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강림: 이윤석의 글에도 그런 문장이 나오잖아요. 일이 없을 때는 블로그 엄청 열심히 하다가, 어느 정도 건축가로서 궤도에 오르면 블로그 글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자기 역사를, 흑역사를 그렇게 삭제하다니.

겜돌이: 자기 블로그를 스스로 손절하다니.

곰: 맞아요. 조금 재밌고, 정말 안타까워요.

강림: 삭제하지 말고 비공개로 돌리지….

닥터페퍼: 비공개로 돌린 것일 수도….

강림: 비공개로 돌리지 말고 공개하지….

곰: 싫겠죠. 저도 무슨 심정인지는 이해가 가요.

-계속-


잡담회

잡담회는 건축의 이름 아래에서 생산되는 텍스트들을 성의 있게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텍스트로 재생산하는 독서모임이다. 아홉 명의 정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권의 건축책을 읽고 와서 두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비건축적인 의미로) 늘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있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손님을 환대한다. 잡담회 아카이브: 블로그 / 인스타그램

자연과 실천

분량7,447자 / 15분

발행일2026년 10월 26일

유형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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