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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림, 겜돌이, 곰, 냥꾼, 닥터페퍼, 쪠, 채운, 천하장사

잡담회는 세 번째 읽을거리로 40호 『등장하는 건축가들 6』을 골랐다. 이 책은 2024년 7월 진행된 포럼 시리즈 ‘등장하는 건축가들: 구분되기와 구분짓기’의 기록으로, 이듬해 2월 발행되었다. 포럼의 내용은 발표를 원고로 정리한 강연록, 에세이, 영상 등 각 건축가에게 맞는 방식으로 담겼다. 잡담회는 (예비) 건축가의 관점에서 여섯 번째 시즌 건축가들의 생각을 유심히 살폈다. 멤버들은 건축가의 조건과 역할, 말과 글, 과정과 용기에 관해 잡담했다.

등장하는 건축가들 6

  • 일시: 2026년 5월 25일 월요일 오후 2:30 – 오후 5:00
  •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
  • 참석: 강림, 닥터페퍼, 겜돌이, 곰, 쪠, 냥꾼, 천하장사, 채운

차례

  1. 누가 건축가인가? 나는 건축가인가?
  2. 두려움과 실재
  3. 자연과 실천
  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용기

겜돌이: 마지막에 있는 하이퍼스팬드럴의 발표 보셨나요? 여기 있는 강연록들은 모두 녹취를 기반으로 원고화한 것인데, 전재우 편만 영상인 거예요? ‘이건 왜 텍스트화가 되어 있지 않지?’ 하고 영상을 눌렀는데, 한 5분 보니까, 아~ 이래서!

닥터페퍼: 텍스트화할 수가 없어서!

겜돌이: 글 말고 영상을 남기는 것도 엄청 재밌었어요. 아무튼 저는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흑역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모두 다 진심을 다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이야기하시는 것으로 느꼈어요. 그런 여러분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개인적인 감동이 있어요.

강림: 겜돌이가 말한 것이 ‘용기’라는 단어에 대한 올바른 정의 아닐까요. 자신이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틀린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채로, 그 순간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판단해 일단 행동하는 것. 모르지만 일단 해보는 용기가 없다면 쓸 수 없고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려요. 외로워질 수도 있고요.

사실 『등장하는 건축가들 6』의 필자들도, 건축에 대해 뭔가를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글들을 쓴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몇 년 뒤에 생각이 뒤집힐 수도 있어요. 『미로』 5호에 실린 정해욱의 글 말미를 보면, 그동안의 글에서는 보인 적 없는 마무리를 해서, 어떤 일말의 여지가 열린 것인지 궁금했어요. 아주 깊은 여운을 남겼어요. 자신의 흔들리는 생각조차, 달라지는 말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건축에 관한 말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 여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항상 느껴요. 글을 쓰는 사람이 간신히 내었을 용기를 우선 존중하면서, 그 후에 글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해요.

냥꾼: 용기를 낸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잡담회에서의 제 모습이 제 흑역사가 될 거라고 장담해요. 요즘도 떠오르는 말들은 많은데 용기가 없어서 말을 못 할 때가 많아요. 용기를 내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번 책은 크게 감동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읽으면서 계속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곰: 자유롭게 말하라고 했지 무례하게 말하라고 한 것은 아닌데…!

강림: 지금 냥꾼이 흑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냥꾼: 아니, 그게 아니라…! (웃음) 물론 다들 결국에는 저보다 많이 아는 분들이겠죠! 아무튼 하고픈 말은, 이분들은 모두 용기를 내서 등장한 것이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었다는 거예요. 그게 공감이 되든 안 되든. 그래서 말의 볼륨(volume)이 커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모두가 각자의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늘도 용기를 많이 못 내었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잘 갖추어지면 더 좋겠어요.

곰: 어떻게 보면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게 그렇게 용기 내야 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긴 해요. 왜 그럴까. 안타까워요. 건축계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사회의 문제이지 않을까. 조금 슬픈 것 같습니다.

천하장사: 저는 용기도 용기인데, 동기가 더 신기한 것 같아요. 글을 쓰려면 하루 종일 붙잡고 있어도 모자라서 몇 날 며칠을 붙잡아서 써내야 하는데, 그 동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요. 이번 모임 전 소감문도 강제성이 없었다면 써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다가도 머리 아프고 힘드니 결국 피하게 되거든요. 저는 대형 설계사무소에 다녀서 그런지 회사에서도 이런 건축 이론적 이야기는 평소 잘 하지도 않고요.

곰: 소형도 안 해요. (웃음)

채운: 저는 동료들에게 계속 물어보게 돼요. 그들도 제가 잡담회 하는 것을 다 알아요. ‘제가 잡담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다들 말을 잘해요. 누군가가 자극을 주고 찔러 주어야 말하는 것이죠. 다들 생각은 있는데 말로 하지 않은 것뿐인 것 같아요.

통념과 마주하기

채운: 예민한 주제일 수도 있는데, 예전에 비해서 소셜 미디어가 발달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도 이루어지고, 누구나 인스타그램을 갖고 있잖아요? 그리고 오늘날 현실에서는 건물을 짓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젊은 건축가들이 더 다양한 활로를 찾으려는 것이 아닐까요?

강림: 건물 대신 글을 짓는 것이죠.

곰: 굉장히 동의해요.

채운: 그렇게 보면 슬프기도 해요. 저는 지난번 『건축, 전시, 큐레이팅』을 읽었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오늘날의 건축은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요. 그런데 이번 글들을 다 읽어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한 건물을 누가 지었고 왜 지었는지 알 때 그 건물이 갖게 되는 인상 자체가 달라져요. 기성 건축가들도 준공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는 데에도 그 건물에 대한 책을 내거나 말을 덧붙이기도 해요. 저는 그렇게 이미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건물에 서사가 부여되었을 때 건축적으로 말할 것도 많아지고 논의할 것도 많아진다고 봐요. 그래서 『등장하는 건축가들 6』 속 건축가들의 말을 너무 보수적으로만 받아들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망했다, 좋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말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 말과 주장을 해낼 수 있어야 건축가라 불리는 것 같아요.

겜돌이: 저는 어쩌면 채운과 비슷한 쪽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건물을 실제로 지어보기 너무 어려운 시기니까, 처음에는 이들이 이렇게 말로써 미리 입지를 다지고 유명세를 얻어 활동하려는 것은 아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어요. 이 글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깨부수어졌어요.

첫 번째로는 건물을 짓기 전에 미리 이야기하면서 입지를 다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건물 이전에 이론이나 선언이 선행된 경우는 많잖아요? 두 번째로는 이들은 새로운 지점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것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워요. 제가 보지 못하는 쪽을 이들은 보고 있어요. 어쩌면 제가 평생을 일해도 보지 못할 것 같은 부분들이죠. 그 자체로도 이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여요.

그리고 저는 기존에 건축가들이 쓰는 건축적 설명의 틀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미 해놓은 일에 사후적으로 덧붙이는 글 말이에요. A 때문에 B를 했다는 식으로 당위성을 부여하는 문장들이 많아요. 거기에서 오는 지루함이, 고리타분함이 있어요. 그런 설명들과 비교했을 때, 이들이 글을 쓰게 된 동력은 오히려 개인적인 흥미와 일에 대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굉장히 놀라워요. 이렇게 흥미를 느끼고 즐겁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누군가에게 소환당했을 때 이런 식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요.

강림: 저는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전재우와 김명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답글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 답글을 요약하자면, ‘건축이나 잘해!’예요. 프로젝트는 없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냐는 거예요. (웃음) 웃긴 했는데, 웃을 일이 아니죠. 깊은 생각에 빠졌던 것 같아요. 저런 답글을 쓰게끔 하는 동력은 그럼 뭘까요? 그들이 따내지 못한 프로젝트가 제게 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제로섬 게임처럼 건축 판에 놓인 100이라는 파이를 나눠 먹는 것이 아니에요. 적어도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러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업역의 파이가 커지게 되고, 그 와중에 저의 입장도 정해져요. 그런데 건물 이전에 이야기를 내놓는 것 자체를 굉장히 공격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건물 없이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건축가가 할 일이 아니라 여기는 통념이 있는 것 같아요. 반대로 말하자면 건축가는 건물을 짓는 사람이라는 통념 또한 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건축 자체가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에요. 그 통념이 위기에 처해 있는 거예요.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작아지고 줄어든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반대로 생각해서, 드디어 더 실천적인 업역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통념을 가지게 되면 통념에 짓눌린다고 봐요. 통념을 흔들려 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화를 내게 된다고 봐요. 원래부터 통념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냥꾼: 저는 건축이 무엇인지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건 건축이고 이건 건축이 아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건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건축이나 잘해라!’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말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어떻게 더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까도 가상이 실재와 동등한가, 교환 가능한가, 위계가 있는가,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잖아요. 저는 그런 가상 공간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실재와 가상이 다르다는 것에 실망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더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상은 사기다, 실재를 이길 수 없다, 이미지는 실재를 넘어설 수 없다, 이런 이야기보다는 각자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천하장사: 그 말을 듣고 생각난 것을 이야기해보면, 예를 들어 건축물 사진과 실제로 있는 건물은 연관성이 있는 대상이 아니라 전혀 다른 대상인 것 같아요. 건축물 사진이 특정한 내러티브를 충실히 잘 담고 있으면 사진만으로도 좋은 것이고, 건물도 마찬가지예요. 건축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견도 이해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 냥꾼의 말대로라면 저희가 대화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요. 어느 정도는 건축적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경계를 만들고 합의를 해놔야 대화가 되는 것 아닐까요? 허성범의 글에 대해서 제가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도 ‘자연’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이해가 잘 안됐기 때문이에요.

강림: 영희와 철수가 지우개 쌓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지우개가 무엇인지, 쌓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된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 같아요.

냥꾼: 그런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은 각자의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각자의 이야기가 있어야 거기서부터 맞추어 나갈 수 있고요. 결국 너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맞춰보면서, 조율하면서, 더 정밀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내놓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건축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을.

강림: 누구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꼭 모든 이야기나 글이 좋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좋고 나쁨은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야기하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용기 내서 꺼낸 이야기가 나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3년 전인가, 제가 송종열 건축비평가에게 글을 평가받을 일이 있었어요. 요약하자면 ‘평가할 가치가 없는 글이고, 기본이 안 되어 있고, 글을 쓸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는 말이었어요.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저에게는 없었고, 지금도 없어요. 사회적 관계를 해치지 않고 싶기 때문에 다들 서로의 글이 나쁘더라도 못 본 척 넘길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고마워해야 하는 말씀을 해 주셨던 것이죠. 저는 존경하는 분에게 칭찬받기보다는, 오히려 혼나면서 성장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성장한다는 말도 이상하네요. 그냥 혼이 좀 나야 하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용기 내어 솔직하게 쓴 글이 다른 누군가가 봤을 때는 쓸데없는 이야기, 나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럼에도 솔직하게, 최선을 다해서, 다시 써볼 수 있는 면역력 혹은 방어기제가 스스로에게 있는지를 판단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 면역력이 없다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많아질 뿐 정밀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곰: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제가 만든 어떤 것이 좋지 않은 이유까지 들어가며 비판하는 사람 자체가 귀해요.

잡담 후기: 우리의 서가들

강림: 오늘은 건축신문 잡담회의 마지막 시간이니, 3회 전체의 경험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박세미의 ‘Re: 등장하는 건축가들의 서가들’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후기와 함께 여러분들의 서가에는 어떤 책이 있는지 소개하며 마치면 어떨까요?

냥꾼: 저희가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생각하고 있는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만한 용기를 내고 싶은데, 정작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도 많았어요.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조금만 찾아보아도 『건축신문』 같은 웹진도 있고, 여러 모임이나 지면이 많은데 이런 것을 몰랐다는 것은 게을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정리하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지금 저는 할 이야기가 없어서 등장할 수가 없는데, 언젠가는 저도 저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건축가로서 스스로 당당하게 등장해보고 싶어요.

채운: ‘프리츠커상’, 『건축, 전시, 큐레이팅』, 그리고 『등장하는 건축가들 6』…. 강림이 의도하고 이 순서대로 읽자고 한 것 같진 않아요. 그럼에도 가장 크고 추상적인 이야기부터 몇 년 전의, 최근의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어떤 시퀀스가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제 생각을 점점 디테일하게 조정하기 좋았어요. 웹진이라는 매체의 특성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확실히 처음에는 글을 읽는 것이 너무 어려웠는데, 뭐라도 읽고 입력을 해야 나도 출력을 할 수 있구나를 느꼈어요. 특히 마지막에는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건축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현실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마무리되었던 것 같아요.

겜돌이: 『건축신문』은 그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열심히 읽어본 적이 없어요. 스스로 대견하다고 박수 쳐주고 싶고요. 동의를 안 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앞으로는 계속 후기 글을 미리 쓰고 모임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게 했을 때 장점이 너무 많아요. 단점은 하나밖에 없어요. 힘들다는 것이죠. 글을 쓰려면 우선 책을 다 읽어야 하니까. 그런 글들이 있으면 모임이 더 풍요로워질 것 같아요.

그리고 『건축신문』 글의 구성을 보면, 필자 소개가 마지막에 있잖아요? 그런데 『등장하는 건축가들 6』에는, 의도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스타그램 계정만 올라가 있더라고요? 보통은 인스타그램 계정과 사무소 웹사이트가 같이 있는 식인데. 물론 사무소가 없으신 분들도 있겠지만요. 이런 디테일이  『등장하는 건축가들 6』만의 어떤 속성을 강화시켜주는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이런 글들을 읽은 다음 『미로』 5호 마지막 글을 읽었을 때 오는 감동이 있는 것 같아요. 강림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힘겹게 써낸 글을 누가 봐줄지 모르는 것에 대한 고독함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저희가 잡담회에 조금 더 열심히 참여하면서 ‘이렇게 읽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에게도 조금 더 힘이 되지 않을까요?

강림: 저는 필자 소개에 웹사이트가 없는 것이 좀 아쉬웠는데, 하이퍼스팬드럴 웹사이트가 진짜 재밌거든요! 여러분도 나중에 시간 되시면 꼭 한번 가보세요!

곰: 저는 조금 전에 찾아봤는데 ‘이게 제대로 들어간 게 맞나?’ 싶었어요.

닥터페퍼: 저도 세 번의 모임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그동안 우리도 고여 있었구나’였어요. 그동안 같은 포맷으로 여러 차례 진행하다 보니 비슷한 이야기들만 많이 나왔잖아요? 이번에는 다른 환경에서 후기 글도 회차마다 써보는 식으로 변화를 주었는데, 그 변화가 저희 모임에 있어 활로를 틔워준 느낌이에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찾아보니 『미로』 연계 포럼도 있더라고요. 저도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번 참여해보려 해요.

쪠: 저는 오늘 어쩌다 보니 한 마디도 못했네요.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생각이 쌓여서 입을 여는 것이 더 어려웠어요. 『건축신문』은 저희가 읽어 왔던 책들과는 다르게 개념적인 접근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글들이 있었어요. 강림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선택했던 것도 있겠지만요. 어떻게 건축에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그리고 평소에는 열심히 글을 읽었더라도 글을 써본 적이 없으니 이 세 번의 모임이 좀 신선했어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글을 읽다 보니 글 속에 담긴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또 오히려 저의 부족한 점들이 더 느껴졌어요. 건축사 면허를 따서 건물 지을 일에만 너무 몰두했던 것 같아요. 건축이라는 분야 아래서 다양한, 여러 방면의 일이 있는데 말이죠. 저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가졌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태까지는 없었어요. 그런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번의 회차가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천하장사: 『건축신문』 웹진이 처음 생겼을 때 ‘UI가 너무 예쁘다, 이렇게 힙한 게 건축계에 생기는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게을러서 거의 읽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번 기회에 읽게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닥터페퍼의 말에 공감을 많이 했는데, 저희가 잡담회에서 건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잖아요? 하지만 꽤 오래 모이다 보니 했던 말을 계속 또 하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정림건축문화재단과 프로젝트를 하게 됐는데, 저희가 의미 있는 말들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고요. 그런데 막상 『건축신문』의 주제들이 저희가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던 것들이었고, 여러 주제를 배경으로 한 생동감 있는 글들이 많았어요. 읽다 보니까 저희도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서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히 『등장하는 건축가들 6』이 좋았는데, 저는 건축에 관하여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건축 자체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상태였어요. 그러다보니 중요한 부분에서 다소 대충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 다양한 이야기들 들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저만의 정의가 맞는지 확인하고, 조정하고, 넓혀 보고, 좁혀 보고 했어요. 이런 과정을 스스로 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늘 잡담회에 오기 전에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를 보고 왔는데, 이번 회차와 잘 어울리는 문구가 있어서 인용해보고 싶습니다. “때로는 선을 넘어봐야 경계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등장하는 건축가들 6’의 건축가들이 저 대신 건축의 선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넘나들어준 것 같아 저 스스로도 건축의 경계가 무엇인지, 어디인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곰: 저는 세 번 중 한 번을 못 나와서 이야기할 거리가 다른 분들보다 부족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우선 읽기가 좀 더 편해서 좋았어요. 책은 호흡이 훨씬 길고,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반면에 웹진은 글 한 편 읽는 데에 웬만하면 30분을 넘기지 않았어요. 이동하면서 읽기도 편했고, 전체를 이해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희가 기존에 나누었던 이야기들보다 좀 더 동시대적인 이야기들인 것 같아서,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건축신문』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원하는지가 궁금하기는 해요. 저는 『건축신문』의 웹사이트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글을 읽게 만드는 디자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각각의 글이 가진 가독성은 좋은데, 글에도 이미지 등이 더 섞여 있거나 동영상이 있거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현대 매체에 너무 절여진 저로서는 시선을 끄는 것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굳이 찾아 들어가야만 뭔가를 찾을 수 있는 형태라고 할까요? 웹진이라고는 하지만 아카이빙의 성격이 더 강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요.

겜돌이: 강림은요?

강림: 저요? 저는 재미있었어요. 저희가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각자 발언하는 것일 텐데요. 그러다 보니까 말투라고 할까요, 평소에 쓰던 문체와는 다르게 발언해야 해서 이야기가 자주 멈추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듣고 읽는다는 전제하에 검열된 문장으로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방법도 함께 연습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한국 건축계가 굉장히 좁아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주처럼 넓다고 느꼈어요.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이삭은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시상식에서 ‘한국 건축계가 너무 재밌어서 건축가가 안 되었다면 이렇게 재미있게 못 살았을 것 같다, 한국 건축계 동료분들께 감사하다’라는 인삿말을 했었는데, 저도 『건축신문』을 읽으면서 비슷한 감상이 들었어요. 아주 멀리서 온 번역서들을 읽으면서 ‘건축이 재밌다’고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죠. 저희와 정말 동등한 시공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실천을 매일 하고 계시는 분들이 이렇게 쓴 글들을 읽어보니 ‘건축은 정말 재미있구나, 한국 건축계는 정말 재밌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저 재미있는 판에 껴서 뭐라도 하려면 아직은 무엇인가를 조금 더, 꾸준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욕심을 더 심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겜돌이가 말했던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이 쓴 글을 읽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기도 하고, 조금 더 강력하기도 했어요. 서로의 의견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대화에 임하는 것도 굉장히 즐거웠어요.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책 한 권! 각자 추천하고 마무리해볼게요.

겜돌이: 건축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나요?

강림: 이희준도 C. S. 루이스의 책을 추천했잖아요?

냥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어린 왕자』예요.

강림: 저자가 누구죠?

냥꾼: 엮은이는 아는데요. (웃음)

겜돌이: 『어린 왕자』를 어떤 면에서 감명 깊게 보셨나요?

냥꾼: 그냥 재밌어요. 그리고 『어린 왕자』에서 찾을 수 있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장미꽃밭이 있더라도 내 장미는 내가 돌보기에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외에 전반적인 다른 내용들도 다 좋고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천하장사: 저는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라는 책이에요. 니체 입문서인데 이번 회차를 통해서 언어 철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언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이 스스로 많이 들었었어요. 니체 철학을 처음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책이라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채운: 저는 『건축 너머 비평 너머』라는, 배형민의 책이요. 작년 12월에 나왔어요. 저희가 다 알고 있는 유명한 건축가들에 대한 비평과 사랑이 듬뿍 들어간 책이에요. 누구나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건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좋을 것 같고요. 아는데 뭘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자기 생각의 방향성을 바꿔볼 수 있는 책인 것 같고요.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재밌었어요.

겜돌이: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재밌게 읽었어요. 『노르웨이의 숲』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책이기는 하지만요. 책을 거의 안 읽을 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에요. 책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죠. 그래서 계속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반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면, 완전 변태 할아버지 같은 책을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실제 살아가는 모습은 굉장히 규칙적이고 초인적일 정도로 정돈된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요. 읽다 보면 인간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도 느껴져요. 한번 추천하고 싶습니다.

닥터페퍼: 저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구토』 정도가 생각나요. 『구토』는 ‘흑역사를 쓸 용기’와 비슷하게 느껴져요. 모든 게 허무하고 덧없고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각자 있을 텐데 그 허무를 글이나 음악 등 자기의 삶을 녹여낸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를 통해서 해소하는 것이 하나의 희망이라고 느껴요.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멍청하지만 계속 부딪히는,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 멍청함이나 비합리성이야말로 그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요. 저희는 늘 정답을 말하고 싶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고,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 그냥 일단 부딪혀 보자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에요.

곰: 저도 책을 많이 안 읽어요.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는 재밌게 읽었어요. 그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막연하게 짐작했던 것들을 활자로 읽게 되면서 제게 여러 번의 타격을 줬던 책이었어요. 추천합니다.

쪠: 저는 지금 생각나는 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밖에 없네요. 제가 고등학생 때 시험을 치고 그 두꺼운 책을 하루 만에 읽었어요.

강림: 저는 박정현의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 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을 꼽을게요. 잡담회의 첫 번째 책이기도 했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생각 했어요. 우리가 모국어를 잘 모르는구나. 우리는 한국어를 알고 있다고, 한국어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한국어 능력 시험을 친다면 높은 점수가 나오지는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맨날 한국은 어떻다~ 저떻다~ 쉽게 말하는데, 사실 저희는 한국어조차도 거의 모르는 거예요. 한국어가 어떤 때에는 외국어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저희가 이야기해야 마땅한, 무시할 수 없는, 이미 우리의 토대가 된 여러 사람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첫 번째 책이었어요. 이 책을 꼽고 마치겠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잡담회

잡담회는 건축의 이름 아래에서 생산되는 텍스트들을 성의 있게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텍스트로 재생산하는 독서모임이다. 아홉 명의 정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권의 건축책을 읽고 와서 두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비건축적인 의미로) 늘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있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손님을 환대한다. 잡담회 아카이브: 블로그 / 인스타그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량12,922자 / 26분

발행일2026년 10월 26일

유형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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