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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 경청, 환대

심미선

내게 독서모임은 신기루 같은 현상이었다. 한때 일개 독자로서 시도했었으나 흐지부지되기 일쑤였고, 분명 내 가까이엔 없는데, 저 멀리서 텍스트 힙, 북 레이브, 독서 파티, (유료) 북클럽 등등이 어룽어룽하더니 사그라들고 또다시 번져나간다. 그 광경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다가 작은 소망을 품었다. ‘건축책으로 사람을 모으고 싶다.’ 그렇게 건축잡지 『미로』 독자 모임을 시작했고, 첫 자리에 20~30대 독자들이 찾아왔다. 유독 입에서 책이 쏟아지는 것처럼 정확하게 읽고 말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강림이었다.

블로그만 훑어도 느껴졌다. 그는 독서광에 기록광이었으며 (여기까지는 다른 이들도 비슷했는데) 독서모임 ‘잡담회’를 이끌고 있었다. 그 모임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고정 멤버가 여럿 있었고 읽는 책에 따라 사람이 들락날락했다. 읽은 책 목록에는 국내 건축계 저자의 역사서, 에세이, 번역서 등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구성원이 해외 유명 건축가의 원서만이 아닌 ‘이런 책들’도 골라 읽는다니? 독서모임이 실재했구나, 이 불모지에도. 말을 걸고 싶어졌다.

비슷한 시기, 『건축신문』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건축신문은 기록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최근 몇 년간은 재단에서 기획한 포럼 시리즈와 학생건축상을 중심으로 현장의 말을 쌓는 아카이브의 성격이 강화됐다. 그런데, 2024년 『미로』 창간 이후 재단의 사업 구조가 점차 바뀌면서 연간 소화하는 기획 포럼의 종이 줄었고, 기록할 콘텐츠도 줄었다. 그러자 자연히 쌓아놓은 것에 눈길이 갔다. 열심히 기록은 했는데 공유가 되고 있나? 나름대로 발신했는데 수신이 잘 되고 있나? 점검하고 싶었다. 그리고 건축신문 콘텐츠로 일종의 정보-지식 순환 모델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무한히 발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구조를 상상했다. 그렇게 잡담회와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게 되었다. 건축신문을 읽고 마음껏 떠들어주길 바랐다. 이 책은 그 순환의 첫 바퀴인 셈이다.

내가 한 일은 강림에게 연락하고, 잡담회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무엇을 읽을지, 어떻게 구성할지 등등 모든 내용은 잡담회의 생각으로 채워졌다. 이렇게 맡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쌓아놓은 기록을 읽으며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의껏 읽고 충분히 이해한 뒤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생각이 달라지면 자기 말도 홱 바꾸고, 그 변덕에 당당할 것이다. 뜻이 엇갈리고 언성이 높아지다가도 서로 생각을 재차 확인하고는 어떤 결론으로 흘러나갈 것이다. 그러다 문득 특정 의견을 고수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 그저 하던 대로 대화해주길 바랐다. 그래야 독자들도 그 속으로 뛰어들 테니.

이들은 건축신문의 키워드 중 ‘프리츠커상’, 23호 『건축, 전시, 큐레이팅』, 40호 『등장하는 건축가들 6』을 읽을거리로 선정했고, 올해 상반기 중 세 번의 잡담회를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포럼 기록 원고를 정리할 때는 중요한 내용 중심으로 압축하여 한 줄기로 엮어내는 식으로 적극 편집하지만, 이번 원고는 시간순으로 흐르게 두었다. 말이 오락가락하고 앞의 이야기가 한참 뒤에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의 티키타카를 잘 따라가길 바란다. 

난 어떤 대목에서는 쪠, 닥터페퍼와 뜻을 같이한다. 겜돌이의 통찰에 무릎을 치고, 곰과 강림의 문답에 끼어들고 싶다. 천하장사의 말에는 찔릴 때가 있으며, 채운과 냥꾼에게는 좀 더 묻고 싶다. 이들은 같은 대학을 2010년대에 다녔고, 남녀 비율이 5:3이다. 지금은 대부분이 설계 실무를 하고 있는데, 아틀리에부터 대형설계사까지 소속된 조직의 규모와 환경이 다양하다. 이에 따르는 시차(時差, 視差)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각 모집단의 대표자는 아니다. 건축책을 읽고 이야기하기 위해, 그로부터 서로를 발견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합류를 고대한다. 이들과의 만남을 위해 준비할 것은 정해진 책을 탐독하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며, 다음 사람을 환대할 마음가짐이다.

이번 일은 내게 올해의 사건 중 하나다. 덕분에 늦게나마 이 매체의 속성과 활용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축신문 × 잡담회에서 반복되는 말들이 갖는 힘과 이리 휘고 저리 휘는 유연한 사고의 힘을 동시에 관찰하며 즐거웠다.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이 어딘가에서 발생하고 지속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 작은 계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싶다는, 또 다른 소망을 품었다는 뜻이다. 건축신문은 이 순환의 다음 바퀴를 그려줄 독서모임을 기다린다. 

심미선 건축신문 편집자

탐독, 경청, 환대

분량2,278자 / 4분

발행일2026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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