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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할래요?

최형석, 김두겸, 이규현


최형석, 김두겸, 이규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나와 판타지: 일상의 잔여물에서 피어난 상상

가장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모습이야말로 나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상태이다. 쓰레기통에 무심히 쌓인 플라스틱 컵들을 보며, 그 잔여물들이 정직하게 우리의 삶을 나타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커피가 있다. 버려진 컵 속에 나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듯, 커피는 어느새 나의 삶을 구조화하는 일상의 축이 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커피는 나와 동떨어진 장소에서 생산과 가공의 과정을 거쳐 오직 ‘소비’의 순간만이 우리에게 도달한다. 하루의 여러 순간에 커피를 마시지만, 그 커피가 자라는 환경과 내가 살아가는 공간은 철저히 분리된 채 유지된다.

여기서 작은 판타지가 시작된다. ‘만약 커피가 내가 생활하는 공간 안에서 자란다면 어떨까?’. 흥미롭게도 커피나무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요구하는 18-24°C의 온도와 50-70%의 습도는 인간의 쾌적한 생활 환경과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교차한다. 열매가 맺히고 익어가고 가공되는 과정이 일상의 풍경이 된다면,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생산의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계 맺는 생생한 삶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나에서 우리로: 취향이 모여 엮어내는 마을의 공정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열매를 수확한 시점부터 발효, 세척, 건조, 로스팅 등 복잡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로 온다. 만약 나의 공간에서 커피를 직접 기르고자 하는 개인들이 모인다면 어떻게 될까? 대규모 산업 시설에서 조직되던 이 거대한 커피 공정을 거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집의 크기’로 축소해 다시 배치해 볼 수 있다.

각 단계가 분리된 채 운영되던 공정들은 이제 생활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의 집 확장된 모듈에서는 커피나무가 자라고 ,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수확한 체리를 이웃과 함께 세척하고 발효시키며, 공유하는 옥상 썬룸은 커피를 말리는 훌륭한 건조장이 된다.

이러한 공정의 분산과 공유는 단순한 건축적 기능 배치를 넘어, 사람들의 관계 및 소통과 맞물리며 작동한다. 내가 기른 원두의 가공 과정을 이웃과 나누는 행위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흐름 중 하나로 경험되며,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취향과 삶의 태도가 겹쳐지며 새로운 일상적 장면을 형성한다.

마을과 도시: 잃어버린 공동체성의 회복

이러한 ‘커피 공정의 마을화’가 이루어지는 무대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저층 주거지를 상상해 보았다. 이곳은 다가구 주택과 도시형 한옥들이 온전히 공존하며 골목을 중심으로 생활의 흐름이 이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현대 도시의 많은 주거지가 그렇듯, 집집마다 쳐진 ‘담장’은 이웃 간의 교류를 줄여 마을을 정적으로 만들고 사잇공간을 버려지게 한다.

커피가 스며든 마을은 이 닫힌 구조를 다시 열어젖힌다. 주거 사이의 담장을 제거하여 충분한 사잇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공공 공간으로 환원한다. 기존 골목과 건물이 형성해 온 유기적인 공간 질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위에 커피라는 일상의 행위를 새로운 층위로 덧입히는 방식이다. 담장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이웃과 커피를 나누는 소규모 공유의 장이 열리고,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는 교류의 공간이 점진적으로 마을 전반으로 확장된다.

결국 이 제안은 커피에서 출발했지만, 도시 속 단절된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다시 잇는 이야기다. 다양한 원두가 ‘블렌딩(Blending)’되어 커피의 맛이 풍부하고 깊어지듯, 파편화되었던 개인의 일상들이 ‘마을’이라는 공간 안에서 촘촘하게 엮일 때 , 비로소 우리는 잃어버린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임태병 한국에서도 커피 재배 실험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환경 조절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커피가 실제 수확보다는 사람들을 잇는 매개체나 판타지적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실제로 재배가 가능하다고 해도, 리서치에 비해 건축화 과정에서 커피 이야기가 부수적인 액세서리처럼 빠진 느낌이 듭니다. 전체를 온실처럼 씌우거나 지층을 파내 반지하를 없애고 선큰을 만드는 등 소모적인 공사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오직 커피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제안서는 흥미로웠지만, 발표 내용은 일반적인 동네 커뮤니티 계획안에 그친 느낌이라 커피가 이 계획안에 어떻게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쉽게 말해, 커피가 아닌 다른 작물이라면 이 계획안이 지금과 어떻게 달라지는 건가요?

커피 한 잔 커피 재배가 실현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매개체로 커피를 활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모든 가정이 커피를 기를 수는 없기에, 재배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메리트를 주고자 했습니다. 클러스터 내에 공동 공간을 만들고, 반지하 거주민들에게는 지층을 파내는 공사를 통해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는 리노베이션 단계로 발전시켰습니다. 즉, 커피를 매개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거 환경의 전반적인 개선을 지향합니다.

홍보라 생산, 소비, 주거라는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 한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만 회기동이라는 대상지에서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이 궁금합니다. 회기동을 선택한 이유와, 현재 그곳의 주거지가 비어 있어서 이런 제안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운영 주체는 누구라고 상상했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커피 한 잔 회기동을 선정한 이유는 사이트보다 ‘나무를 주거 안으로 들이자’는 설계 개념이 먼저 확립되었고, 팀원들 모두 회기동 같은 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에서 자취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 이곳을 택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은 재개발로 인해 올해 2월부터 비워진 상태인데,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 보면 주민들이 거리로 의자를 내놓는 등 점유했던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다 보니, 건축적인 제스처로 정돈해 주고 싶었습니다. 현재는 물리적으로 비어 있지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설계를 진행했습니다. 

운영에 관해서는, 커피 애호가들이 이주해 오면서 기존 거주민들을 설득하고,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함께 비용을 지불하며 상생하는 구조입니다. 운영 주체는 각 주거의 대표들이 모여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다시 각 클러스터의 장들이 모여 마을 커뮤니티를 이끌어가는 자치적인 구조를 상상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커피… 한 잔 할래요?

분량3,188자 / 6분 / 도판 13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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