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주는 기쁨
백민서, 염선웅
분량3,544자 / 7분 / 도판 12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백민서, 염선웅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지붕이 주는 기쁨_ 일상의 접점
우리에게 지붕은 어떤 의미인가? 마을의 고목, 캠핑 천막, 여름날의 파라솔과 시장의 어닝, 그리고 한옥의 툇마루까지. 지붕은 담담하게 일상에 스며들어 ‘기쁨’을 주는 존재다. 우리는 지붕을 단순히 건물을 덮는 덮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점을 만드는 공간으로 재정의했다. 시점에 따라 처마가 되기도, 천장이 되기도 하는 이 감각적인 공간은 도심의 밀도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지붕 아래에서 서로 노출되고, 눈치 보지 않으며, 목적 없는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는 세상을 꿈꾼다.

서계동 이야기
서울역 뒷편 서계동은 과거 남대문과 소통하던 봉제 산업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서울역과 서울로의 등장으로 교통 흐름이 바뀌며 기존의 맥락이 끊겼고, 현재는 노후 주택과 빌라가 밀집된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봉제 공장과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거리에 사람들의 삶이 짙게 묻어난다. 주민들은 화분, 배수구, 우편함 위에 조각난 지붕들을 덧대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조각난 지붕들에서 동네의 공동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보았다.


지붕이 만든 새로운 공간
1. 막다른 골목길: 골목을 덮는 지붕
서계동의 골목 사이, 5개의 집만이 공유하는 나대지와 골목길을 발견했다. 우리는 이 막다른 길에 목재와 철제 프레임, 투명 지붕이 중첩된 새로운 구조물을 제안한다. 기존의 나무를 품으며 골목을 덮는 이 지붕은 결구 방식으로 엮여 있으며, 그 아래 평상에서는 두 지붕이 만드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2. 슈퍼 플랫폼: 동네 거점의 재구성
동네의 터줏대감인 ‘개미슈퍼’는 주민들의 주요 거점이다. 봉제 배달과 택배가 빈번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슈퍼와 택배 보관소, 휴게 공간이 결합된 ‘슈퍼 플랫폼’을 제안한다. 틀어진 프레임의 새로운 지붕 틀은 기존 공간에 유연하게 덧붙여지며, 향후 다양한 장치들이 추가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진다.


3. 필로티의 재발견: 주차장에서 테라스로
경사로 인해 주거 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필로티 주차장은 전망과 개방감을 동시에 갖춘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에 건물과 분리된 목구조 프레임을 삽입한다. 이 프레임은 스스로 구조체 역할을 하며 어두운 주차장에 간접등을 형성하고, 주민들을 위한 테라스 공간을 더해 공간의 가치를 높인다.


4. 만리시장 뒷골목: 봉제 브릿지의 확장
만리시장 뒷골목, 주차장과 봉제공장의 프로그램이 혼재된 골목에 주목했다. 그레이팅 소재의 브릿지를 설치해 골목의 채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봉제공장 간의 연결성을 확보한다. 이 브릿지는 상부의 생활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지붕’이 되어, 삭막했던 주차장 골목을 정겨운 길로 변화시킨다.


우리 어떡해_ 우리 삶의 모양, 그리고 서계동
서계동 같은 옛 동네는 너와 나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 모호한 경계에 들어서는 크고 작은 지붕들은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정자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 슈퍼 앞의 휴식, 필로티 아래의 바자회, 그리고 브릿지 위에서 안부를 묻는 봉제사들까지. 주민들의 손길을 거치며 고쳐지고 덧붙여질 이 지붕 아래 공간들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 풍성한 다수의 일상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윤주선 잘 들었습니다. 중간에 언급한 ‘주민들이 직접 덧붙이기 쉬운 재료와 공법’이라는 지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만약 주민들이 사용하다가 불편함을 느껴 직접 수정하고자 할 때, 현재 설계에서 주민들을 위해 배려한 장치는 무엇인가요?
지붕 기쁨 서계동의 조각난 지붕들을 조사하며 건물이라기보다 부품을 고치듯 지붕을 덧붙인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이 너무 제각각이다 보니 거리의 풍경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주민들에게 일종의 틀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 플랫폼의 경우, 캐노피나 차양처럼 서계동에서 흔히 쓰이던 재료들이 이 틀을 기반으로 덧붙여질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지붕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제공한 배려점입니다.
윤주선 마지막 페이지에 1년 뒤의 모습을 그렸는데, 5년 뒤쯤에는 이곳이 따개비처럼 더 복잡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한 건가요? 지금 그림에는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여서 기대치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주차장 필로티에 프레임을 많이 설치한 것은 단순히 조명을 달기 위한 용도인가요?
지붕 기쁨 그 목구조 프레임은 조명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역할입니다. 프레임 자체가 필로티 바깥으로 더 확장될 수 있는 구조체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습니다.
윤주선 구조체 실험이라기엔 안을 너무 빽빽하게 채운 느낌이 있습니다.
임태병 전체적인 방향성을 보면 필로티 주차장은 이미 그 자체로 주민들이 활용할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 무언가를 더 붙이는 것이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계동 리서치가 매우 흥미롭긴 하지만, 그곳의 지붕들은 주로 CCTV 보호나 방수 같은 기능적,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입니다. 반면 두 분이 하려는 작업은 관계와 공동성의 회복에 가깝잖아요? 그렇다면 리서치 역시 ‘현재 사람들이 주차장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와 같은 공동성 회복의 단서를 찾는 방향으로 더 보완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붕 기쁨 지붕들을 조사하다 보니, 몇몇 장소에서는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의자를 가지고 나와 하나의 지붕 아래 모여 있는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서계동 특성상 유동 인구가 많지는 않지만, 그런 흔적들을 보며 작은 지붕이 사람들의 조합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저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는 지붕을 방수나 차양 같은 단순한 기능적 요소에 국한하지 않고 하나의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주민들이 무언가를 덧붙이는 이유가 비록 기능적인 필요 때문일지라도, 그 지붕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자체는 여러 명이 모이고 화합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검토를 진행했습니다.
최재필 리서치된 지붕의 개념이 사물과 사람이 결합하는 플랫폼 형태로 발전된 점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앞서 지적했듯 지붕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논리가 더 명확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붕들의 연대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마을 곳곳에 퍼져 있는 이 지붕들이 전체 안에서 어떻게 조율되거나 연대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본인들이 상상한 연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지붕 기쁨 네 개의 지점을 인위적으로 강하게 엮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계동에 이런 작은 요소가 생겼을 때, 그 안에서 형성되는 대여섯 명 규모의 작은 공동성에 집중했습니다. 이런 공간들이 하나씩 늘어나다 보면 주민 개개인의 취향이 더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고요. 내가 이 지붕 아래 공간이 좋아서 왔는데, 다른 사람도 비슷한 취향으로 그곳에 머물게 된다면 그 접점에서 새로운 공동성이 생긴다고 봅니다. 서계동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창한 디자인을 하기보다, 마을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설계하고자 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지붕이 주는 기쁨
분량3,544자 / 7분 / 도판 12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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