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의 곁에
오차연, 신성현
분량4,145자 / 8분 / 도판 10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오차연, 신성현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기다리던 방학, 평온한 일상을 깨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비보였다. 고요한 운동장에 울려 퍼지던 유가족의 처절한 통곡 소리는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온도를 증명하고 있었다. 타인의 슬픔을 통해 그를 기억하던 순간, “나의 삶도 누군가의 가슴에 이토록 깊은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화살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는 효율과 위생을 이유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공통된 경험인 ‘죽음’을 외곽으로 추방했다. 일상에서 죽음이 사라지자 우리는 타인의 상실과 삶의 유한함에 무감각해졌고, 이는 결국 구성원 간의 심리적 단절과 각자도생의 사회를 낳았다. <여전히, 나의 곁에>는 이처럼 도시 밖으로 밀려난 죽음을 다시 삶의 한복판으로 소환하여, 무너진 연대를 회복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수목장’이라는 추모 방식을 도심 공원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점조직처럼 펼쳐진 나무들로 이루어진 ‘죽음의 바탕(Field)’과 일상의 행위를 담아내는 ‘일상의 형상(Figure)’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 중첩된 풍경 속에서 건축물인 형상은 슬픔을 잠시 내려놓는 거점이 되고, 수목인 바탕은 삶의 유한함과 자연의 순환을 감각하게 하는 깊이 있는 조경이 되어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

프로젝트는 수목장이라는 추모 방식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묘지가 땅 위로 솟아오른 ‘기념비’라면, 나무는 그늘과 공간을 내어주는 ‘안식처’다. 대지를 완만하게 덜어내어 추모객이 자연스럽게 나무의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함으로써, 나무 한 그루를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내어주는 가장 작은 단위의 건축이자 다정한 피난처로 구축했다.
이곳의 나무는 지역 주민에게는 공공의 ‘풍경’이지만, 유족에게는 고인의 삶이 투영된 사적인 ‘인격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이 상반된 두 관점이 충돌 없이 하나의 숲에서 공존하도록 32종의 나무를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경관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의 풍경’, 그리고 수목의 제원(수관 반지름과 지하고)을 회귀 분석하여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유효 하부 공간을 위계화한 ‘공간의 깊이’다. 이 두 기준을 교차 배치하고 추모객이 선택한 고유한 나무 코드를 결합함으로써, 획일화된 묘역이 아닌 우연과 필연이 섞인 자연스러운 숲의 질서를 완성했다.




이러한 공간이 놓일 최적의 대상지로 동네 한복판에 위치한 ‘보육원’을 택했다. 물리적으로는 도심 중심에 있지만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도시의 흐름을 막는 고립된 섬과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폐쇄적인 담장 안의 건물들은 경사지의 등고에 맞춰 유기적으로 안착해 있었고, 이는 죽음의 바탕 위에 흩뿌려진 일상의 형상이라는 개념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었다.
이에 기존 보육원 건물군을 전면 철거하는 대신, 도시와의 소통을 가로막던 요소들만 과감히 덜어내는 감산의 방식을 취했다. 남겨진 건물의 물리적 골격은 유지한 채 추모객의 쉼터이자 주민의 커뮤니티 거점으로 치환하여, 사유화되었던 공간을 공공의 영역으로 환원했다. 예컨대 본관 건물은 1층 벽을 개방하여 숲의 흐름을 잇고 다층적인 접근을 유도했으며,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미끄럼틀 등의 오브제를 보존하여 장소의 기억을 잇는 매개체로 삼았다.
리모델링된 건물들과 새롭게 조성된 수목의 관계는 지형에 순응하여 건축물을 겸허히 앉히는 한국 전통 정원의 미학과 닮아있다. 숲속에 무심한 듯 놓인 이 장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며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새로운 풍경을 구축한다. 이곳에서 유가족에게 소중한 이는 나무가 되어 곁에 남고, 주민들은 일상 속에서 이웃의 기억이 깃든 수목을 마주하며 보이지 않는 정서적 연대를 맺는다.



건축적으로 이는 무색무취한 공공의 숲에 개인의 서사를 입히는 ‘약한 사유화’의 시도다. 사적 공간을 공공에 개방하는 기존의 방식과 반대로, 익명의 공공 공간에 개인의 애착을 결합함으로써 도시 구성원들은 이웃과의 유대감과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비로소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 땅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다. 개인의 기억이 깃든 나무와 공공의 일상이 담긴 건축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곳. <여전히, 나의 곁에>는 가장 개인적인 추모가 가장 공적인 도시 풍경이 되는 새로운 유형의 도심형 수목장 공원이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홍보라 ‘우리 어떡해’라는 주제는 ‘나’에서 시작해 ‘우리’로 넘어가고, 거기서 도시의 문제를 발견하며 나만의 제안으로 이어집니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동기가 있지만, 나와 우리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발전 과정에서 몇 단계가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연결 고리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나의 곁에 주제를 처음 접했을 때 심사위원분들 말씀처럼 매우 열려 있는 주제라고 해석했습니다. 프로젝트의 동기는 개인의 경험이나 관찰 등 다양한 접근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의 죽음과 제 주변의 대상지들이 조합되어 나온 결과물이며, 그 사이의 과정은 건축적인 고찰에 더 집중했습니다.
윤주선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 드립니다. 대상지가 인천에 있는 해성보육원이죠? 기존 건물을 활용하는 것 같은데, 그럼 아이들은 어디서 뛰어놀게 되나요?
나의 곁에 발표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저희는 보육원이라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육원 시설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남겨진 기존 건물군을 활용해 새로운 지역 커뮤니티 시설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임태병 저도 그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저는 보육원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수목장 시설을 합치는 파격적인 시나리오가 이 제안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익명의 공공 공간이 심리적으로 사유화되는 지점이 인상 깊었는데, 보육원을 이전시키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의 곁에 저희도 정말 많이 고민했던 지점입니다. 하지만 보육원이라는 시설 본연의 목적인 아이들의 보호와 안전은 보존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곳을 ‘일상의 형상’이라 이름 붙인 지역 커뮤니티로 전환하면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특정하기보다, 지역 공동체를 위한 부대 시설이라는 성격만 부여하고 나머지는 도시에 맡기는 유연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보육원이라는 프로그램 자체는 ‘우리’라는 관점에 부합하지만, 굳이 이 폐쇄적인 게이트 커뮤니티 안에 머물러 도시와의 소통을 저해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재필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타자를 ‘우리’라는 존재로 인정했을 때 도시가 어떻게 바뀌느냐는 지점입니다. 단순히 보육원 공공화나 수목장 이전 제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봐요. 아까 나무를 ‘작은 건축’으로 정의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무의 구조와 건축의 구조가 단순히 병치되는 것을 넘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켜야 건축적 가치가 생깁니다.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의 곁에 저희는 건축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상호 작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축가가 세운 질서는 미래 세대로 전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에게는 나무가 ‘도시 숲’이라는 자연 요소로 인식되지만, 추모객에게는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됩니다. 이 상반된 두 관점을 결합하려는 시도 자체가 저희가 의도한 화학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든 새로운 사이트를 잡지 않고 리모델링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수목장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에 리노베이션 방식을 선택한 건가요?
나의 곁에 대상지 선정의 가장 큰 이유는 저희 집 바로 옆에 있어 일상적으로 관찰해온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상지를 관찰하다 보니 보육원 건물이 가진 장소성들이 보였고, 이를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기 위해 리모델링을 선택했습니다. 등고선에 맞춰 안착한 한국식 정원의 정자와 유사한 느낌이 있어, 기존 건물의 형상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최재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조경가가 나무를 심는 것과, 여러분이 나무를 ‘작은 건축’으로 정의하고 배치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나의 곁에 인위적인 숲이 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며 시민들에게 공급되려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흙이 내려앉고 길에 잡초가 자라겠지만, 수목이 단순히 한 그루의 나무를 넘어 추모객과 시민들에게 공간으로서 작용하게 만드는 장치들을 고민했습니다. 경관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나무가 공간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별 짓는 지점이 일반적인 조경과는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여전히, 나의 곁에
분량4,145자 / 8분 / 도판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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