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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유지후, 전정우, 장인경


유지후, 전정우, 장인경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건축설계전공


1. 우리 어떡해?: ‘사회적 무소속’과 점유의 공간

5년간 머물던 설계실에서의 퇴거는 단순한 작업 공간의 상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설계실은 개인의 책상(1600*700 mm)이라는 최소 단위를 기반으로 취식, 휴식, 작업이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밀도 높은 공동체 공간이다. 그러나 도시 안에서 이러한 ‘장기 체류’와 ‘물리적 점유’가 동시에 허용되는 공간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공공 공간은 특정 시간 동안 머물다 떠나야 하며, 개인의 물건을 부릴 수 있는 중간 영역이 부재한다. 본 프로젝트는 이 지점에서 사회적 소속감이 느슨해진 이들을 위해, 아무 이유 없이 찾아가 오래 머물 수 있는 ‘도시 단위의 설계실’을 탐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2. 대상지 분석: 고속터미널 꽃시장의 시간적 적막

도시 내에서 설계실의 성격-열린 평면, 가변적 밀도-과 가장 부합하는 장소는 낮 시간대에 비어있는 ‘새벽 시장’이다. 그중 인프라가 안정적이고 다양한 인구 집단이 교차하는 고속터미널 꽃시장을 대상지로 선정한다. 이곳은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 운영되며, 이후 낮 시간에는 거대한 공간이 유휴 상태로 남는다. 반면 인근의 재택근무자, 프리랜서, 학생 등 ‘사회적 무소속’ 집단은 카페 등에서 커피 가격으로 환산된 짧은 시간만을 허락받으며 부유한다. 본 안은 이 두 집단의 시간대를 교차시켜 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것을 제안한다.

3. 시장의 메커니즘: 관계와 생애를 담은 단면

기존 꽃시장은 위탁 판매 중심의 관계 기반 공동체라는 점에서 설계실의 풍경과 닮아 있다. 그러나 공간 구조상 상인과 물류 중심의 동선만 강조될 뿐, 소비자와 방문객을 위한 점유 공간은 계단실 등으로 밀려나 소속감을 저해하고 있다. 또한, 꽃의 진열 방식은 꽃의 생애(신선도)에 의해 디자인된다. 입고 초기에는 얼굴이 잘 보이게 눕혀 진열하고, 시간이 지나 선도가 떨어질수록 줄기를 잘라 물통에 꽂는 방식이다. 이러한 ‘꽃의 생애에 의한 진열’과 ‘지면의 단차를 이용한 소통’ 방식을 건축적 유닛의 핵심 모티프로 삼는다.

4. 건축적 제안: 유닛의 전환과 입체적 루프

밤에는 꽃시장으로, 낮에는 작업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공간 전환 시스템’을 구축한다.

  • 가구 시스템의 전환: 역계단식 ‘저온 창고’는 하부에서 꽃을 전시하는 동시에 낮 시간 작업자의 접근을 제한하여 재고를 보호한다. ‘상온 진열대’는 낮이 되면 덮개가 열리며 작업자를 위한 책상, 의자, 서랍장으로 변모한다.
  • 동선의 입체적 분리: 기존의 혼재된 동선을 개선하기 위해 소비자, 판매자, 물류의 레벨을 단면적으로 분리한다. 소비자는 다양한 꽃을 조망하고, 판매자는 높은 레벨에서 시장 흐름을 파악하며, 물류는 최상단에서 효율적으로 이동한다.
  • 도시적 맥락의 확장: 3층에 고립되었던 꽃시장을 1~4층으로 통합 확장하고, 1층 터미널의 유동인구가 유입되도록 전체를 순환하는 ‘빙글빙글 루프’를 배치한다. 이 루프는 완만한 경사를 가지며 시장과 하부 공동체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도시적 산책로가 된다.

5. 결론: 향기로운 공존의 아지트

시장 유닛 하부에 형성되는 ‘주렁주렁’ 공간은 공동체의 영역으로 설정한다. 밤에는 상인들이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되고, 낮에는 도서관, 전시실, 수공간 등 사회적 무소속 집단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12시간의 사이클을 통해 공간을 공유하는 이 시스템은, 물리적 장소를 넘어 ‘사회적 소속감을 잃어버린 누구나 언제든 머무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건축적 상상이 더해진 이 낮의 꽃시장은, 사람들이 향기로운 꽃과 함께 교류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의 새로운 대안적 풍경이 될 것이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임태병 꽃시장 상인과 사회적 무소속을 위한 공간이 딱 반반씩 나뉘어서 시간표대로 정확히 돌아가는 방식인가요?

사람꽃 하부 공간의 경우 연못, 전시장, 도서관 등으로 구성되는데, 낮과 밤의 주 사용자가 저희 같은 사회적 무소속인에서 꽃시장 상인들로 바뀝니다. 공간의 형태나 프로그램은 동일하지만, 저희는 두 집단이 교차하는 그 짧은 틈의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임태병 그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상인이 쓰고, 그다음부터는 누가 쓴다고 시간이 딱 정해져 있으면 종 치듯 전환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일어날 때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이 생길 것 같거든요. 어떤 가능성을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꽃 그런 가능성은 하부 공간보다 유닛에서 더 잘 드러납니다. 유닛 하부의 선반 형식은 주로 작업자들이 사용하게 되는데,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의 꽃시장 운영 시간에는 상인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상인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의 위계를 나눴습니다. 하부 선반은 가치가 조금 떨어지는 꽃을 놓아 24시간 동안 상시 판매할 수 있는 공유 공간으로 두었고, 안쪽의 진열장이나 휴식 공간은 상인만의 사적 공간으로 설정해 경계를 두었습니다. 섞이는 것과 섞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저희 나름대로 세밀하게 설계한 것입니다.

이해든 작업 공간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다시 한번 설명해 주세요.

사람꽃 작업자가 자리에 앉아 작업을 하게 되고, 이 공간이 평소에는 꽃시장 상인의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물론 낮 시간에는 작업자 공간도 꽃 진열대로 활용됩니다.

이해든 안쪽의 침대 공간은 상인을 위한 것이군요?

사람꽃 네, 상인을 위한 공간입니다.

최재필 터미널이라는 메가 스트럭처 안에서 틈을 통해 공유 공간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재미있습니다. 다만 꽃과 무소속자가 시간차를 두고 점유하는 과정에서, 가구적으로 서로 겹침을 만들려는 시도는 좋으나 꽃과 사람 간의 시너지라기보다는 시간을 낭비 없이 쓰려는 소프트웨어적인 방식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꽃과 사람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시너지가 있을까요?

사람꽃 프레젠테이션에서 다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폐기 예정인 꽃이 전체 물량의 약 20% 정도를 차지합니다. 상인들에게는 아픈 부분이지만, 작업자들에게는 그날 하루 자신의 공간 점유를 주장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매개체가 됩니다. 작업자가 그 꽃을 단순히 관상용으로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자리를 규정하고 점유하는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감각하게 되는 시너지를 생각했습니다.

이해든 현재 거대한 건축 스트럭처 안에 아주 작은 모듈들이 꽉 채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모듈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디자인적 의도는 무엇인가요?

사람꽃 기본적으로 저희는 시장이라는 공간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시장은 저희가 설계한 것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그리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현재의 복도는 사용자, 상인, 물류, 배달 기사 등 모든 동선이 엉켜 있는데, 이를 더 쾌적하고 순환 가능한 구조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기존 상점의 수를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공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최적화된 유닛을 설정하고 그것이 조직처럼 퍼져나가는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분량3,464자 / 7분 / 도판 13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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