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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합으로 모여서 해낼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이혜연


이혜연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개인들은 함께하고 함께 하기 때문에 무한한 엮임의 가능성을 가진다.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동료들과의 동행 속에서, ‘나’는 다양한 조합을 통해 수많은 가치-삶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 근대화의 주된 방향에서 비켜선 채 잔존해 온 인현동 인쇄 골목에서, 우리는 조합이라는 방식의 유연성과 이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힘을 보았다.

더 많은 나를 향하여 열리는 인현동 인쇄골목

인현동은 1~2인 규모의 작은 인쇄 관련 업체 약 3500곳이 밀집한 동네이다. 인쇄물의 종류에 따라 각각의 업체가 매번 조합되어 하나의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산업 구조는 긴급한 발주 요청에도 빠르고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그 결과 인현동은 조합형 인쇄업체 집적지로서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심에 잔존해 있다. 그러나 인현동은 폐쇄적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거래 관계를 전제로 작동하는 B2B 중심의 산업 구조 안에서, 한 번도 인현동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들어오지 못한다. 인현동의 강점이었던 다양성은 약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소재와 공정을 시도하며 인쇄의 범위를 확장하는 움직임이 커져야 할 시점이다. AI 등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의 생산력은 높아졌지만 브랜딩에서 제품 제작까지의 실무 경험이 부족한 주체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인현동 인쇄 골목과 조합될 수 있는 새로운 개인이다.

거 봐, 모이니까 할 수 있잖아

이 설계는 새로운 개인들이 인현동의 조합 구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길의 폭과 필지 규모라는 두 척도에 따라 블록 내 건축물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각 부지 특성에 맞는 설계 전략을 통해, 인현동이 새로운 개인과 새로운 조합을 맞이할 준비를 돕는다.

도로를 따라 리듬감 있게 늘어선 도로 작은 필지 연속형 건축물은 입면의 리듬감을 유지하며 2층으로 증축해 삼발이 운전기사님과 사장님, 방문객을 위한 창고 겸 쉼터와 화장실이 된다. 방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기획사 사무소와 달리 좁은 네트워크를 가진 개별 공정 업체 사장님들의 접점을 만들어준다.

세 갈래의 길에서 인현동 인쇄 골목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도로 큰 필지 후퇴형 건축물은 로비가 없는 인현동 전체 블록의 로비 역할을 한다. 어느 길에서 들어오든 인포 데스크로 향하도록 1·2층을 대수선하고, 뒤로는 회의실·자료실·세미나실을 배치했다.

6개의 방 중 4개가 공실이었던 골목 작은 필지 연접형 건축물은 벽의 절반만을 남겨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며 각 인쇄 공정을 배울 수 있는 프린팅 라이브러리가 된다.

막다른 골목 끝의 골목 큰 필지 종점형 건축물은 세 건물의 맞닿은 벽을 철거해 5갈래 골목의 결절점이라는 새로운 접근성을 가진 기획사 사무소의 공간을 만들었고, 그 위 11층 규모의 레지던스가 얼굴 없던 건물의 새로운 간판이 된다.

우리를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개인을 맞이하며 새롭게 조합됨을 반복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윤주선 여러 명이 함께한 프로젝트인 줄 알았는데 혼자 했다니 놀랍습니다. 부성 마스터라는 특정 회사 내의 동선과 강아지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설정해 놓았는데, 새로 제안한 프로젝트 내에서 이 부성 마스터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하게 되나요?

이 조합 부성 마스터는 제 설계 전략을 뒷받침해 주는 기초적인 연구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인쇄 골목의 평면들은 굉장히 세밀하게 분할되어 있는데, 코어로 인해 절반으로 나뉘어 있는 공간들을 서로 통할 수 있게 변화를 주거나, 건물의 입면에서 큰 입구와 분할된 평면의 특성이 드러나도록 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홍보라 본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했고, 인쇄 골목의 흩어진 공정들을 하나의 조합처럼 묶어 전시와 업무 기능까지 엮어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있지만 정작 ‘동료’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료들과 어떻게 조합하여 새로운 커뮤니티를 이룰 것인지, 건축적 제안과 개인 사이의 연결 고리를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이 조합 저는 현재 작업실의 일원으로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제안해도 동료들이 “이거 재밌겠는데”라며 열정적으로 받아주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각자의 개인이 유지된 채로 함께 모여 살며, 다양한 조합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최재필 조합이라는 개념을 통해 개인이 아닌 모여 있는 도시의 구조를 파악하고, 거기서 찾은 구조로 다시 도시를 설계하는 방식이 매우 좋았습니다. 공모전 취지에도 적합하고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다만 리서치 대상이었던 부성 마스터의 삶이 실제 을지로 블록에 설계된 디자인과 어떻게 만나 시너지를 내는지 궁금합니다. 인쇄기획사를 중심으로 한 조합의 구조가 기존의 성격을 어떻게 강화하거나 증폭했는지, 이용자가 아닌 주체의 관점에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조합 기존 인쇄 업체들이 자기 기계를 가지고 운영하는 공간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대신 도면에서 보시면, 가장 위쪽에 위치한 건물은 인쇄 산업에 새로 진입하려는 경험 없는 창작자들을 받아들이는 로비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곳에서 주변 인쇄 공정들을 소개해 줍니다. 만약 물건을 만들기 위한 조합을 구성하고 싶다면 중앙에 위치한 기획사 사무소 밀집 건물로 가고, 공정을 배우고 싶다면 전시실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맨 왼쪽 건물에서는 개인들이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조합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시설들을 제안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이 조합으로 모여서 해낼 줄은 상상도 못했어

분량2,844자 / 6분 / 도판 19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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