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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재개

박유진, 이지훈, 이승헌


박유진 숙명여자대학교 환경디자인학과
이지훈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이승헌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우리는 ‘목욕’을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경험으로 바라보았다. 일상을 돌아보던 중 반복되는 일정 속에서 유독 규칙적으로 표시된 날이 있었고, 그것은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해야 할 일과 약속으로 가득 찬 달력 속에서도 목욕은 하나의 리듬처럼 반복되고 있었고, 이는 단순한 위생 행위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고 느꼈다.

목욕탕에서의 경험은 일정한 루틴으로 반복된다. 샤워를 하고 온탕과 열탕을 오가며 몸을 데우고, 사우나와 냉탕을 거쳐 다시 탕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일종의 의식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목욕이 끝난 후 마시는 바나나우유까지, 이 일련의 흐름은 몸을 씻는 행위 이상의 만족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기능적으로 완결된 샤워와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샤워가 개인의 위생을 위한 행위라면, 목욕은 타인과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형성되는 감각적 경험이다.

목욕탕에서는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순간 사회적 역할이 해제된다. 직업이나 나이, 위치와 같은 외부의 기준은 옷과 함께 벗겨지고, 개인은 보다 평등한 상태로 전환된다. 탕과 사우나에서는 낯선 타인과 같은 온도를 공유하며 물리적, 심리적 경계가 흐려진다. 말없이 이어지는 사우나 속의 긴장감이나 더 오래 버티기 위한 암묵적인 경쟁, 그리고 때를 밀며 서로의 몸을 맡기는 순간은 개인을 넘어서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경험은 목욕이 개인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라는 감각을 형성하는 장치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정 내 위생시설의 보편화와 시간 효율, 프라이버시의 중시는 목욕탕의 필요를 감소시켰고, 그와 함께 공동체적 경험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목욕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목욕의 가치를 현대 도시 속에 새롭게 작동시키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이에 따라 목욕을 특정 건물에 한정된 기능이 아닌, 일상의 흐름 속에 스며드는 경험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대상지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이다. 이곳은 현재 대규모 재개발을 통한 급격한 주거 재편이 일어나는 동시에, 오래된 다세대 주택단지의 흔적이 공존한다. 기존 거주민과 새로운 주민들의 혼재 속에서, 이문동은 일상의 관계를 이어줄 작은 인프라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 속 반복적인 접점을 만들기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캠퍼스 내, 기존 주택단지, 그리고 외대앞역의 작은 광장 세 곳을 사이트로 선정하였다.

첫 번째 제안은 이문동 주거지 중심의 생활 거점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슈퍼마켓과 코인세탁소, 그리고 목욕탕이 결합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장을 보거나 빨래를 맡기듯 자연스럽게 목욕을 경험하게 된다. 기존 목욕탕의 카운터는 단순한 출입 기능을 넘어, 일상과 목욕을 연결하는 매개로 확장된다. 사람들은 슈퍼마켓에서 결제를 하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며, 목욕 이후에는 도로와 맞닿은 평상에 앉아 쉬거나 주변 시설과 연결된 활동을 이어간다. 이는 기존의 생활 패턴 속에 목욕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을 제안한다.

두 번째 제안은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내 목욕탕이다. 도서관과 강의실 사이에 위치한 이 공간은 학습과 휴식 사이의 중간 상태를 제공한다. 카페와 스터디 공간, 소규모 회의실과 결합된 목욕탕은 학생들이 공부 도중 잠시 몸과 사고를 이완시키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기존의 딱딱한 학습 공간과 달리, 목욕은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고 보다 유연한 생활 리듬을 만들어낸다. 작은 단위로 나뉜 목욕 공간은 공유와 프라이버시 사이의 균형을 형성하며 다양한 사용 방식을 수용한다.

세 번째는 1호선 외대앞역 교통섬과 같은 도시의 잔여 공간에 제안하는 목욕의 경험이다.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의 동선 속에 완만한 물의 흐름을 만들어, 잠시 발을 담그거나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 공간은 단순히 통과되는 장소를 넘어 짧은 이완의 순간을 제공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각기 다른 속도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자신의 리듬에 맞게 머무르고 떠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이처럼 본 프로젝트는 목욕을 특정 시설에 국한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도시와 일상 전반에 걸쳐 확장 가능한 관계적 장치로 재해석한다. 개인의 위생을 넘어 타인과의 공존을 경험하게 하는 목욕의 가치를 다양한 도시 맥락 속에 삽입함으로써,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감각을 다시 회복하고 새로운 도시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공간 제안을 넘어 도시 속 관계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이해든 참가자들에게 기대한 건축적 상상이 드로잉에서 잘 채워졌습니다. 특히 전철역 부분은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다만 아쉬우면서도 궁금한 점은, 드로잉에서 보여준 그 흥미로운 판타지와 상상의 나래가 결과물에서는 왜 갑자기 스위스 사우나 같은 디자인으로 구현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떠나, 서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목욕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다시 생각해보는 포인트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목욕탕의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는데, 결과는 기존 목욕탕의 프로그램을 단순히 배치하는 정도로 실현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의도한 이유가 있는지, 혹은 상상과 결과물 사이에 빠진 단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목욕재개 저희는 기본적으로 도시 사람들이 살고 있던 삶의 리듬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희도 즐겁게 상상했고, 그 상상들을 더 과감하게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거친 뒤에 결국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가지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아주 작은 틈부터 그 리듬을 깨나가는 데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목욕탕들을 분산시켜 배치한 것도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삶의 리듬 속에서 자연스럽게 동선이 겹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상 드로잉과는 조금 다른 현실적인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홍보라 상상과 실현 사이에서, 이것이 실제 운영되려면 자본이 투입되어야 할테고, 한편으로 동네의 목욕탕들이 없어지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운영 주체는 누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나요?

목욕재개 땅은 구나 시에서 매입하고, 운영은 민간에서 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슈퍼마켓이나 빨래방을 운영하시던 분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만든 공간이었지만, 저희가 제안하는 공간에는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목욕 공간을 더하는 것에 동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슈퍼마켓 사장님, 빨래방 사장님, 그리고 건축가와 다양한 주민들이 포함된 지역 공동체가 주체적으로 운영하게 되지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최재필 이어서 질문하자면, 이 프로젝트의 매력은 목욕탕과 도시 인프라 간의 하이브리드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건축 형식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의 목욕탕이 사라진 이유와 그만의 형식이 있고, 스위스나 핀란드의 사우나 형식도 각기 다릅니다. 마트나 학교 같은 프로그램과 목욕탕이 결합될 때 만들어지는 고유한 디자인적 제스처가 있었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결과물은 잘 정리된 건물 안에 테넌트처럼 들어가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디자인 어휘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목욕재개 과거 우리나라 목욕탕은 큰 굴뚝이 있는 대형 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LPG 가스로 물을 데우기 시작하며 굴뚝이 필요 없어졌고, 대형 목욕탕이 사라지는 주된 이유는 운영비와 에너지 측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규모로 재현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고 금방 다시 없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는 최대한 작은 규모로 동네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수준만 제공하되, 그 안에서 느끼는 삶의 이완은 기존 목욕탕과 비슷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기존 프로그램을 해치지 않으면서 옆의 필지를 조금씩 나누어 쓰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임태병 목욕탕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하이브리드 시키는 고민은 안 해보셨나요? 목욕탕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핵심이라기보다 ‘목욕이 만드는 관계 구조의 복원’이 목표라면, 꼭 목욕탕이 아니더라도 공원처럼 자연스러운 공동성이 드러나는 프로그램이 있었을 것 같아서요. 굳이 목욕탕이어야 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목욕재개 초반에 목욕탕이 가진 특별함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때, 저희는 이곳을 ‘역할 해제의 공간’으로 정의했습니다. 공원에서도 모두가 익명으로 존재하지만, 목욕탕이 갖는 힘은 ‘물’이라는 매개체와 ‘탈의’라는 행위에 있습니다. 목욕탕 안에서는 그 어떤 사회적 역할도 수행할 수 없고, 오로지 같은 온도의 물속에서 조용히 교류하게 됩니다. 저희는 이 묵묵한 관계의 교류가 가장 강력한 관계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목욕만이 가지는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희 팀원 셋 다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다른데, 누군가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좋았고 누군가는 평상에서의 대화나 탕의 느낌을 좋아했습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감각을 찾아보려 많이 논의했지만, 목욕탕만이 가지는 추억과 소셜 허브(social hub)로서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여 목욕탕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목욕재개

분량4,498자 / 9분 / 도판 15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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