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들의 마을 세우기
백준혁, 이은탁, 김성일
분량3,817자 / 8분 / 도판 16장
발행일2026년 9월 28일
유형작업설명
백준혁 인하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이은탁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김성일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시골쥐들에게 도시는 ‘기회의 장소’로 여겨진다. 일자리와 교육, 문화 인프라가 층층이 쌓인 그곳을 향해 우리는 꿈을 품고 상경한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도시의 삶은 사뭇 다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벽으로 둘러싸인 단칸방에 몸과 마음을 욱여넣은 채 작아져 버린 나의 세상을 발견하곤 한다. ‘내 공간’이 아니면 곧바로 ‘모두의 공간’으로 도약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내 취미를 담을 공간도, ‘우리’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고향의 시골집은 조금씩 결이 다른 여러 겹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내 방에서 마당을 지나 낮은 담장 너머 골목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공간들 속에서 우리는 ‘나’의 취향을 즐겼고, 때로는 마을의 틈새를 통해 이웃과 ‘우리’가 되었다. 혼자이면서도 외롭지 않았고, 함께이면서도 침해받지 않던 삶. 시골에서는 일상이었던 그 풍경이 도시에서는 그저 판타지처럼 여겨진다.
삭막한 도시에서도 ‘나’로서, 동시에 ‘우리’로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시골 마을을 도시 안에 재현해 보려 한다. 다만 도시는 협소하기에 시골 마을을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도시의 밀도에 맞춰 수평으로 펼쳐져 있던 시골 마을을 수직으로 세워 올릴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세운 마을에서 ‘기존의 집’은 주거 유닛이 되고, ‘담장’은 구조이자 경계로 변모한다. ‘마당’은 개인의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며, ‘부속건물’은 그 판타지의 실현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개구멍과 같은 ‘틈새’들은 이웃과 ‘우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연결부로 작동한다.



서울 후암동의 어느 골목에 우리의 마을을 처음 제안하며, 그 모습을 상상해 본다. 501호의 온실 쥐는 302호의 운동 쥐와 친구가 되어 서로의 집을 수직 철봉으로 연결해 취미를 공유한다. 402호의 회사 쥐가 출근하면, 반려동물들은 401호 작가 쥐의 집으로 가 심심함을 달래며 돌봄을 나눈다. 301호 형아 쥐의 마당에 놓인 놀이터에는 어린이 쥐들의 웃음소리가 번지고, 1층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경로당의 할머니 쥐들이 그 풍경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도시의 빠른 시간 속에서 이웃이 바뀌어도 마을의 온기는 식지 않는다. 기존의 판타지가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판타지가 들어서고, 틈새는 또 다른 관계를 낳는다. 이렇게 마을은 판타지와 관계를 비우고 채우며 지속된다. 시간이 지나 도시 곳곳에 마을이 늘어나면, 이번에는 마을끼리도 ‘우리’가 되어 간다.
시골쥐와 도시쥐의 이야기는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다. 시골쥐들이 세운 이 마을을 통해, 도시 또한 ‘나’의 판타지가 공존하며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도시에 지친 시골쥐들의 삶을 응원한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최재필 저는 시골이라는 단어에 먼저 설득된 것 같습니다. 비록 리서치가 방대하지는 않았으나, 시골 마을의 공간 구조가 우리의 공동체 삶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는 전제가 이상하리만큼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시골의 삶이 상상되면서 이것이 도시의 입체적인 공간으로 변환되는 방법론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단순한 방법론일지라도 변환 과정에서 ‘디자인적인 도약’이 있어 담장이 장소화되거나 부속 건물이 판타지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등의 디자인적 장치가 무척 좋았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주거 유닛의 창을 내는 방식이나 기존 건축의 클리셰를 그대로 차용하는 듯한 모습은 이 이야기의 판타지성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리얼리티를 담되, 판타지성에 더 집중하는 디자인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쥐 저희가 생각한 기존의 다가구 주택은 주거와 취미 등 모든 생활이 하나로 우겨넣어진 공간이었습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시골집을 예시로 들자면, 집 밖의 마루와 마당이 있고 마당에 철제 지붕을 올리면 차를 고칠 수 있는 차고가 됩니다. 즉, 하나의 필지 안에서 주거와 취미 등 모든 기능이 분리된 삶을 영위하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저희는 하나의 다가구 주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드는 개념으로 접근했습니다. 검은색 유닛의 담장과 흰색 유닛의 주거 공간은 주택의 기본적인 니즈를 해결하는 기능적 역할에 집중했기에 클리셰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속 유닛과 그 사이의 틈새 공간은 낭비되는 곳이 아니라 장독대나 식물 등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 판타지 실현 공간으로 계획했습니다.
덧붙이자면, 프로젝트가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과감해 보이지 않을까 우려하여 창문 등은 오히려 현실적인 요소를 가져왔습니다. 만약 심사위원분께서 이렇게 느끼실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발칙한 상상을 표현했을 것 같습니다.
임태병 작업 프로세스에서 실제 모형에 주안점을 두고 작업한 뒤 나중에 평면에 반영한 것인가요? 모형과 평면의 느낌이 다르고 평면의 완성도가 다소 아쉽게 느껴져 묻습니다.
시골쥐 저희가 가장 우선시한 것은 이웃 건물 사람이나 거주자가 저희 건물을 보았을 때, 도시인들이 몰랐던 시골 마을의 삶과 다양한 영역, 겹치는 틈새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역을 잘 보여주고 엮어낼 수 있을지에 집중하다 보니 그 부분이 선행된 것이 맞습니다.
홍보라 시골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고 팀원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여기서는 공간을 유연하게 쓴다는 점에 방점을 둔 것인지 궁금합니다. 실제 시골은 한곳에서 오래 거주하기에 시간의 유연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편입니다. 시골의 시간성보다는 공간의 유연성에 집중한 것인지, 실제 마을의 핵심을 어떻게 구현하고 싶었는지 다시 한번 설명해 주세요.
시골쥐 기존 시골 마을은 이웃이 누구인지, 외부 손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형태입니다. 반면 도시의 청년 주거는 계약 단위에 따라 거주자가 짧게 교체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시골의 시간적 유연성보다는 도시에 상경한 이들이 본인의 판타지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습니다. 부속 공간을 통해 거주자의 시나리오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뀔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하여 모델을 계획했습니다.
윤주선 시골적인 삶이 공간의 다양성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전남 나주에 살았다는 분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간의 재미 외에 더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시골쥐 공간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는 시너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배치를 취했습니다. 나아가 일본의 마을 만들기 주식회사 프로젝트처럼 건축가가 입주 단계부터 개입하여 거주자 요구를 조율한다면, 다양하게 설계된 공간이 사람들의 시너지를 증폭시키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해든 결과물이 흥미롭습니다. 평면을 단면으로 세운 방식은 개인적으로 생소하지만, 결과물에서 상당한 스터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평면이 단면으로 치환될 때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데, 그 과정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안점을 두었거나 끝까지 가져가려 했던 핵심 요소가 있다면 설명 부탁합니다.
시골쥐 준비한 프로세스 페이지에서 단계가 넘어갈 때, 보는 분들이 갑자기 감각적인 요소로만 조합했다고 느끼실까 봐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중 한 명이 실제로 살던 마을의 담장을 기준으로 분해하고 이를 모티브로 주변 상황에 맞춰 조합했습니다. 수직 건물이지만 ‘마을’처럼 보이게 하는 데 가장 주안점을 두었기에, 일부 감각에 의존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를 밀어붙였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시골쥐들의 마을 세우기
분량3,817자 / 8분 / 도판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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