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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문화비축기지 & 성수연방

허서구, 윤한진, 한승재 × 임진영, 전숙희

전숙희 마지막 회차의 토론을 시작하겠다. 지난 시간에 이어 산업자산을 조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산업자산은 건축과 사회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문화비축기지는 석유라는 자원을 담는 그릇이었고 쓰임을 다한 뒤 새로이 활용하는 제안으로써 탄생했고, 성수연방은 민간이 부동산적 가치를 재해석해 (사용기한이 더 있지만) 리모델링을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먼저 허서구 소장에게 리모델링의 배경, 즉 구조물의 쓰임이 실제로 다했는지를 묻고 싶다.

허서구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 석유비축기지의 구조물과 환경적 특이성이 주목받은 것 같다. 우리는 현장을 사이트라고 명명했다. 밋밋한 땅보다 더욱 복합적인 이야기가 벌어질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리모델링 설계에서는 기존 공간의 환경이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건축가가 어떤 기능을 설계할 때 본인의 경험 데이터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동굴’은 이미 그걸 뛰어넘어 존재하고 있으니까, 건축가가 그 환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디자인적으로 감성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은 것이다. 가로수길처럼 젊은이들 사이에 떠오르는 장소에 왜 리모델링이 활성화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짓는 집들과는 다른 스케일감이나 좁고 높아서 느끼는 공간의 깊이감이 매력적이어서인 것 같다. 때로 묵은지가 필요한 요리가 있듯이 리모델링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진영 ‘건물의 수명 연장’ 기획을 듣고 반가웠다. 인문학적・철학적 수사 없이 건축물의 물리적 구조, 구축법, 작동방식을 말한다는 것, 또 ‘수명’이라고 접근한 태도가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하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더욱이 지난 시간에 산업유산을 배경으로 본다는 것, 집착의 대상이 된 보존과 복원 등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오늘의 두 프로젝트는 최소한 배경으로 쓰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근본적으로 두 프로젝트의 출발에는 (공공과 민간의 입장 차가 있겠지만) 산업유산에 집착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포문화비축기지의 경우 그럴 듯한 재생 프로젝트가 필요했던 서울시의 요청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성수연방의 경우 공간기획사업자인 오티디코퍼레이션의 기획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각각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한승재 실제처럼 만들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197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에도 가능한 이야기라고. 많이들 클라이언트와 우리 사이에 큰 마찰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설계 기간 동안 좋았다. (웃음) 건축가를 선정하기까지 고심했어도 결정하고서는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주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상업시설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찬성한다. 우리는 구조 및 설비를 전면적으로 바꿔 더 오래 쓸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전숙희 표현을 정정하고 싶은 게 있는데 1회차 건축자산인 공공일호(구 샘터사옥), 주한프랑스대사관과 나머지 자산은 구분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산’으로 볼지 단순 ‘자산’으로 볼지의 문제인데, 오늘 두 프로젝트의 경우는 자산(asset)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쓸 수 있는 값어치가 있고 그 값어치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고쳐야 하는 게 아니라 고쳐 쓰겠다는 ‘선택’을 한 프로젝트다. 리모델링 전의 모습을 놓고 판단하면 성수연방의 구조는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한편 마포석유비축기지는 석유탱크를 위한 구조와 시설이었다. 그렇다면 이 공간들은 왜 ‘문화’를 선택했을까?

허서구 참고로 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변화를 도시재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프로젝트 재생, 건축 재생이라고 부른다. 자산이냐, 유산이냐 논쟁도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의 삶과 공존하고 있는 대상이지,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쳐쓰기, 다시쓰기에 관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20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공장 리모델링을 부분적으로 맡았다. 낡은 공장 사진을 내 나름대로 쭉 찍어서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줬더니 “우리 공장이 이렇게 이뻤냐”라고 되묻더라. 다시 말해 ‘어떤’ 고쳐쓰기를 할지는 결국 대상을 읽어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지혜와도 연관된 일이기에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문화비축기지의 경우 사회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었고 그것을 공간으로 구현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은 거칠고 모호해 보일 수 있으나 훗날에는 또 다른 쓰임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지금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아파트도 새로이 쓰일 수 있다. 이미 내진 설계가 튼튼하게 된 건물이고, 인구가 줄고 거주 방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쓰일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건축 재생은 더욱 확대되리라고 본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리도 계속 필요하다.

윤한진 우선 반가운 자리이다. 푸하하하프렌즈가 독립하고 셋이서 처음 한 프로젝트가 문화비축기지 설계공모였다. 현장 답사에 갔다온 뒤 하루 끄적이다가 결국 그만뒀는데, 되돌아보면 그 내용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셋 다 마포구에 오래 살았지만 그 존재를 알지도 못했고 왜 문화시설로 리모델링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유산이나 자산 개념으로 접근한 적은 없다. 개소한지 얼마 안됐을 때에는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밖에 할 수 없었다.

전숙희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면) 허서구 소장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건물의 수명 연장’에서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도시재생의 모델이라고 보지 않는다. ‘수명’이라고 표현했듯이 우리는 건축물을 생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건축물을 고쳐서 다시 쓰겠다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려는 시도라고 봐달라. 이상하게도 산업자산을 리모델링할 때는 ‘문화’란 키워드가 늘 따라 붙는다. ‘산업’이 왜 ‘문화’로 바뀌었는지 그런 질문을 한 적 없는가?

한승재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철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특정 기간에 지어진 건물은 기능도, 설비도, 단열도 형편 없다. 기능을 해결하지 못하는 건축물은 키오스크와 다를 바 없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성수연방이 ‘복합문화센터’란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설계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예를 들어 행정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를 때 ‘열린’이란 단어를 많이 쓰더라. 같은 이치로 기획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문화’란 단어를 쓰는 것 같다.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임진영 체험을 소비하고 경험을 소비하는 시대이기에 ‘문화’란 타이틀은 공간을 상업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아닐까. 한편 허서구 소장에게 묻고 싶었던 게 있다. 규모가 굉장히 큰 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면 좋을지, 어떻게 작동되면 좋을지 전략도 있었나?

허서구 문화비축기지의 프로그램을 논의할 때 나는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장소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당이면 어떻고 카페면 어떻나.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공공프로젝트에서 상업성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런 탓에 상상력이 커지지 못한다. 자꾸 정체 모를 문화라는 탈을 씌운다. 상업적인 경쟁력을 가진 공간, 다시 말해 한 걸음 더 솔직한 이야기에 다가선다면 더욱 풍요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간시장에서 리모델링이 활발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임진영 ‘올드 & 뉴’라고 표현했다. 기존 건축물을 배경이 아니라 ‘건축가 없는 건축’, ‘구조물에 담긴 시대의 질서를 내보낸다’는 표현이 흥미로웠고 건축가가 개입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각자 그 질서를 찾아간 과정에 대해 부연 설명을 듣고 싶다. 또 허서구 소장은 ‘특이함’이라고 표현했는데 탱크 안에서 어떤 질서를 찾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달라.

한승재 올드 & 뉴 사례 중 인상 깊었던 건물은 테이트 모던이었다. 그러나 그걸 답습하는 건 뻔한 전개였기에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손을 댄다는 건 장식하고 박제하고 오마주하는 것 이상의 쾌감이 있는 일이었다. 건물을 이미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건물로서 상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허서구 탱크 안에 들어가면 정말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소리도 떨어지는 빛줄기도 공간감도 생소하다. 나는 이를 ‘동굴’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상태를 인정하고 시작하려는 자세였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 상상하기 힘든데 이런 ‘동굴’은 그 기본 데이터를 뛰어 넘어 존재하고 있으니까 디자인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다. ‘웃음’에 비유를 자주 했는데, 보통 웃음의 기저에는 격한 공감과 뜻밖의 반전이 공존한다. 나는 공간적 경험에도 이 두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승재 더 날것의 상태로 유지하고 싶지는 않았나?

허서구 탱크 구조체에 어떠한 변형이나 가공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용접조차 할 수 없어서 사소하게는 전등이나 기초 설비 등 어떠한 요소도 탱크를 지지체로 활용할 수 없었다. 또 벽체에 손이 닿지 않도록 하면서 안전 난간을 설치해야 했다. 이토록 원형을 보존하겠다는 원칙이 뚜렷했다. 처음에는 5번 탱크의 경우 자체적으로 풍화되어 스러져 가는 모습을 전시하려고 했는데, 분진 등 안전 상의 문제로 의견을 거뒀다.

임진영 두 분의 발표를 들으며 기존 질서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수명 연장일까, 다른 방식의 박제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두 분에게 프로젝트 의미를 듣는 걸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한승재 상업적인 성공을 바란 면도 있고, ‘쓸 수 있는 건물인데 잘 써야지’라고 생각도 했다. 건물 구조를 단단하게 보완하며, 단열 및 수도 설비를 모두 교체했다. 이게 가장 분명한 답변일 것 같다.

허서구 누군가 주차장 공터에 무언가를 지으려고 시도했는데 완강히 안된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설계한 다섯 탱크도 한시적 점유일 뿐이다. 언젠가 다시 다른 용도로 활용될 테다. 한편으로는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기름탱크도 공간이 되네, 그런 가능성의 의미도 있을 것 같다.


  • 발표자 허서구(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발표자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
  • 토론자 임진영(건축전문기자)
  • 모더레이터 전숙희(와이즈건축)

(토론) 문화비축기지 & 성수연방

분량4,981자 / 10분

발행일2021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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