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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공공일호 & 프랑스대사관

조재원, 조민석 × 김정임, 전숙희

김정임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어떤 마음이었나?

조민석 어찌 보면 20세기 한국 건축사에서 김수근과 김중업 선생은 마치 캐논 같은 존재 아닌가. 순위가 중요하지 않지만 2013년에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최고의 한국 현대건축물’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김수근 선생의 공간사옥과 김중업 선생의 주한프랑스대사관이 각각 1위, 2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신화화된 면이 있다.
한편 프랑스 정부와 일하면서 흥미롭다고 생각한 건 결과보다도 과정 자체를 즐기는 태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명화된 국가임을 느꼈다. 또 당선안 아이디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모습도 훌륭한 면모였다. 클라이언트와 폭넓은 공감대를 바탕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참가작과 비교했을 때 우리 제안이 그나마 새 건물의 덩치를 과장하지 않고 주변 맥락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난해 보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적절하게 최적화하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기존 건물의 조형이 특별하므로 새 건물은 그 배경 정도로 두되 질감과 컬러의 시각적인 대비를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어떤 입장을 강하게 제시하기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여러 관계를 조정하려는 역할을 했다. 

조재원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가장 크게 든 감정은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바깥에서 자주 봤고 도면을 읽을 수도 있지만 어디에서 출발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예컨대 공간사옥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모습을 보고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 겉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남기는 것’이 되는지,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남기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공공일호는 ‘어떻게 계획할까’라는 질문보다 ‘어디에서 시작할까’라는 질문을 만드는 데 훨씬 긴 시간이 걸린 프로젝트다. 질문의 방향을 바꾼 뒤로는 어렵지 않았다.
원형에 내재한 공간의 힘을 미래의 프로그램과 매칭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건 결국 건물의 가치가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형태를 보존했다고 해서 역사적 가치를 존중한 설계라고 할 수 없다. 역사적 가치와 오늘날의 사용가치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후에 ‘이렇게 바꾸었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이 최선의 존중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정임 만약 김수근 선생이 아닌 다른 건축가의 작업이었다면 어땠을까? 한국 건축계에서 김수근 선생의 위상이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만약 그런 부담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새로운 용도나 새로운 사용자를 위해 더 개선하거나 변화를 꾀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을까?

조재원 공공일호 3층에 거꾸로캠퍼스란 일종의 대안학교가 있는데, 한 날 학생들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발표하는 워크숍을 연다기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어떤 학생은 “벽돌이 너무 거칠다. 벽돌 하나하나에 벽지를 바르고 싶다”라고 했고 어떤 학생은 “천장 때문에 어둡다. 이걸 다 (밝게) 칠하고 싶다”라고 했다. 여기에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실 이 건물은 한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으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 불편할 수 있지만, 여러분은 원형의 모습 그대로 잘 쓴 다음에 그 기억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도 깨달았다. (웃음) 내 말을 듣고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바꿔보겠다는 마음보다 나의 행위를 어떻게 정의할지, 그걸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던 것 같다.

전숙희 김중업 대 조민석의, 김수근 대 조재원의 충돌은 없었을까? 현재 건축가의 에고와 과거 건축가의 에고가 충돌하는 부분을 어떻게 희석하고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사실 신축이 아닌 사이트에서 일을 출발하면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다. 나는 샘터사옥에서 3년간 생활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꽤 많았다. 건축가로서 지우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조재원 소장은 벽 하나를 부쉈다고 하니 이에 대해 설명을 더 듣고 싶다. 반면 조민석 소장에게 물으면 김중업 선생의 랭귀지와 조민석 소장의 랭귀지는 일맥상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데 어떻게 접근했나? 

조민석 랭귀지는 없다. 태도는 있지만. (웃음) 옛 것을 다루는 일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던 때가 2008년 서울시신청사 리모델링 공모전에서다. 우리 세대가 공부하던 때에 콜라주 시티, 올드 앤 뉴의 긴장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는데, 서울시청사를 보고 건축가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평면을 구성하는 방식이 신선해 그걸 가지고 쫙 설계안을 발전시켰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베를린에 있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노이에스 뮤지엄(Neues Museum)보고 감탄했다. 최근에 우연히 증축한 갤러리까지 봤지만, 열주도 그렇고 준공 당시의 양식과 기술과 재료가 그대로 있다. 우리 팀에게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 “당인리 문화공간 조성 프로젝트는 노이에스 뮤지엄처럼 가야 한다. 대신 저렴이 버전이지.” (웃음) 수확이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그저 발품을 팔고 머릿속에 있는 단상을 재구성하는 거 말고 이렇게 재미있는 땅을 언제 또 만나겠냐는 마음으로 해봤다.
2019년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던 스페인 건축가 페르난도 메니스의 강연에서 그가 말했다. “건축은 라자냐 같은 거야. 레이어가 많을수록 맛있어.”(웃음) (페이스북에 이 내용을 올렸더니 ‘그래도 소스가 중요한 거 아니냐’는 댓글도 있었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건축물 그 자체부터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한 층위의 디테일한 이야기가 쌓여야 수명 연장의 빌미가 된다는 거다. 사실 건축가에게 흥미로운 것은 거기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찾고, 무엇을 재료로 삼아서 재미있고 풍부한 공간적 경험으로 드러낼지에 있다.
한 세기 사이에 세계 인구가 네 배 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집’이라고 부르는 건조환경의 3/4 정도는 지난 100년 사이에 급조된 환경이란 소리다. 그만큼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상대적으로 희박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늘었는데 역사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전쯤부터 그런 생각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김정임 대부분 유럽 국가의 경우 오랜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옛 것을 리모델링하는 시도를 쌓아온 반면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고 폐허가 된 시간을 지나 이제서야 그러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사실 여러 논리 중에 가장 강한 힘이 경제 논리 아닌가. 리모델링에도 이러한 경제적 가치가 생긴 것 같다. 지금은 얻을 수 없는 용적률을 가지고 있거나 화제 거리가 있어 사람을 끌어 모으거나. 그래서 여태까지 신축하기에 급급했던 클라이언트도 옛 것을 다시 보고 건축가도 자기만의 시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한다. 나는 이러한 움직임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리모델링 설계를 몇 번 해보니 신축 설계를 할 때도 이런 고민이 들었다. 과연 건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동인은 무엇일까? 구조의 튼튼함일까, 설계자의 인지도일까,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부응하는 유연함일까? 두 분의 생각은 어떤가?

조민석 건축물과 건물이 구별되는 지점은 그 용도가 없어져도 사회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을 것 같다. 설령 폐허가 되어도 이 땅에 남을 수 있다면 그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조재원 앞선 질문에서 건축가의 ‘언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어떤 일관된 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언어보다는 조민석 소장의 말처럼 태도에 가깝다. 더욱이 지금은 언어를 생성할만한 시간이 없는 때 아닌가. 햅틱 기술처럼 메시지를 즉각 전달해야 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하다’란 것을 건축 언어로 쓰는 요즘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맞닥뜨린 숙제에 최선을 다해 반응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게 시대정신이든 새로운 사용자의 필요이든 나는 매개체란 생각이다. 건축가란 자신의 에고를 공공적인 도구로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용도가 바뀌고 주인이 바뀌어도 건축물에 ‘어떤’ 태도가 남을 수 있도록.
조민석 소장이 설계한 스페이스닷원에 집주인이 바뀐 다음에 간 적이 있었다. 건물 입구에 노트북을 들고 선 돌하르방이 있는데, 노트북에 새겨진 글자가 ‘daum’에서 ‘kakao’로 바뀌었더라. 그때 조민석 소장과 같은 생각을 했다. ‘집주인이 바뀌고 용도가 바뀌어도 건축가가 건물에 심어 놓은 건물의 특성이 이렇게 지켜질 수 있겠구나.’
계획 당시 공공일호가 나에게 어떤 프로젝트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이 전환의 시기가 이 건물이 ‘어떤’ 건물로 다음 세대에게 기억될 지를 가늠할 순간이란 사실이 내 개인적인 의미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한 장소가 건축가를 만나는 때는 짧게는 건물의 본래 수명동안의 시간, 길게는 그 이후의 시간까지 연장될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이할 때가 아닌가. 건축가는 한 장소의 미래가 좌지우지되는 중요한 순간에 개입해 역할하는 존재다.

조민석 말을 조금 보태면 스페이스닷원 설계 당시에 수명 연장과 관련해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 전제는 실리콘 밸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힙스터스럽게 투박스러운 창고에 DIY 정신으로 (센스 있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있으니까) 스스로 공간을 창조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다보니까 건축의 아우라가 약해졌다. 지금이야 헤더윅 스튜디오, 노만포스터 등 파워풀하고 자신만의 스테이트먼트를 만드는 이들의 작품이 더해지고 있지만. 그때 우리도 반대 방향을 봤다. 건축을 강렬하게 만들어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표현해보자고 했다.

청중 조재원 소장의 설명에서 ‘김수근 선생의 프로젝트임에도 자료가 거의 없었다. 마치 발굴하듯이 자료를 찾았고 이를 체계화해 웹사이트에 게시했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한편으로 ‘김수근 선생의 작품도 이럴진대 일반적인 건물의 자료는 전무하겠구나’ 싶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건물의 자료를 발굴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는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 듯한데 이 부분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그리고 조민석 소장에게는 지붕에 관해 묻고 싶다. 당시 시공력의 한계로 한 차례 무너졌다고 들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료나 구조 면에서 다른 시도를 하고 싶지는 않았는가? ‘복원’이라고 말했지만, 이미지로 느껴지는 건 좀 더 해석된 입면 같다. 정말 똑같이 복원하는지 혹은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조재원 2000년 샘터사에 입사한 박은숙 경영이사가 ‘앞으로 건물을 손볼 일이 계속해서 생길 텐데 원형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에 하나둘씩 모은 자료가 기존 건물에 대한 자료로 거의 유일했다. 국내에서는 이런 상황이 보편적인 것 같다.
암스테르담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잠깐 일했을 때 시내의 한 블록을 호텔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었다. 도면을 확인하려고 시청에 가서 물으니 “어느 시기의 도면을 찾나요?”하고 묻더라. 큰 뜻 없이 “100년”이라고 대답했는데 정말 100년 전 도면부터 오늘날까지의 도면 더미를 건네 받았다. 아주 소소한 변화까지 건축가의 사인이 들어간 도면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보존해야 할 부분에 관한 정보도 단순히 ‘건물 모양’, ‘파사드’ 이런 게 아니라 보와 기둥 별로 체크되어 있을 정도였다.
과거를 의미 있게 되새길 자료가 늘 부족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여기까지 왔구나’ 하며 회상할 지점을 만들지 못한 채 지나왔으니 돌아보면 없고 돌아보면 없다. 저마다의 기억 속에 장소의 근원을 갖는 것은 사회의 정신적 건강 내지는 안정감 측면에서 큰 영향력이 있다. 그렇기에 건축가는 리노베이션 계획 때 대지의 기원은 무엇이었는지, 남아있는 흔적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발견하고, 오늘날의 이야기로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솔직하게 말하면 분명 설계와 구별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때가 아니고서는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기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스스로 숙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이 내 책상에 있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새주인이 될 사람에게 자료를 넘겨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조민석 대사 집무동의 사진이나 옛 도면 등의 자료를 찾기 위해 긴 시간을 보냈다.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하려고 한다. 다만 용도가 바뀌어 기능을 새롭게 갖추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원래 사무실로 쓰던 2층이 응접실 콘셉트로 소규모 문화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는데 그에 따라 필요한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또 김중업 선생의 도면을 보면 창호가 비대칭으로 그려진 부분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공사하며 일부러 내지 않았던 것 같다. (김중업 선생이 원한 것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이 부분을 이번 리모델링 공사에서 대칭 관계로 구현하는데, 이 대목은 ‘복원’이라고 보지 않는다. 해석한 것이다.

김정임 원형을 복원한다고 해도 현재 에너지 기준을 맞추기 위해 창호나 단열 등을 바꾸면 기존의 모습을 상당 부분 잃을 수 있지 않나. 원형 복원이란 목적에서 법규적으로 완화해주는 부분은 없는가? 

조민석 없었다. 벨기에 코르뷔지에 주택의 경우도 현행 법규를 엄격하게 준수해 수리했다고 들었다. 그런 와중에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기억난다.

청중 공공일호에서 설계 당시 사용자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주한프랑스대사관 에서 “주위 환경이 바뀌어 마치 언덕에서 계곡같은 느낌으로 콘텍스트가 변했다”라고 설명했는데 그런 변화에도 지붕을 복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조재원 어린 학생과 여성 사용자가 많아서 클라이언트는 거리 시위 참가자 혹은 노숙인이 건물에 들어오면 사용자 안전에 위협적일 수 있으니 늦은 저녁에는 (샘터광장에) 셔터를 내리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이에 “문턱이 없던 곳에 문턱을 넣으면 우리가 다음 챕터라고 선언했던 포부가 무색해질 수 있다”라고 설득한 적이 있다. 김수근 선생이 그린 도면 속 모습을 지키려는 것보다 그동안 건물에 덧붙여진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40년 동안 시민에게 공감 받았던 가치, 건물이 계획된 모습 그대로 운영해 온 샘터사의 노력까지도 원형이라고 생각했다. 이외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다. 원래 내장재로 미송 패널을 많이 썼기에 우리도 목재를 썼고, 와플 천장 구조가 중요한 요소이기에 가벽을 세우지 않고 기둥 사이를 활용해 책장이나 선반, 파티션을 만들었다.

조민석 멀리서 보면 콘텍스트의 변화를 느끼지만 사이트로 들어가면 계곡 같은 느낌이 남아있다. 올려다 보면 하늘을 볼 수도 있고. (웃음) 또 그 맥락을 중재하는 것이 가장자리에 울창하게 자란 나무다. 어쨌든 전체적인 조화 면에서 두 건물의 지붕 대조는 핵심적이다. 현재 흉내를 내다만 채로 있지만. 복원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숙희 두 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왜 김수근 선생의 박물관은 안 생겼을까,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어떻게 생긴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자료의 유무로 따지면 사실 김수근 선생의 자료가 더 많을 테다.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는 지속되고 있으니까. (내가 부정적인 시각이라서 이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는데) 구 유유산업 공장(현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외진 곳이라 지자체가 살 만한 금액이었던 게 큰 이유가 아닐까. 김수근 선생의 경우 공간사옥이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겠지만 아라리오갤러리에 매각할 당시 99억 원 정도였다. 건축계가 돈을 모아도 마련하기 어려울 큰 금액이다.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오늘 자리의 마무리로, 현재 진행형인 건축가에게 적합한 질문은 아니지만 각자 자신의 건축자산으로 무엇이 남으면 좋겠는가? 

조재원 건축을 만드는 방식, 건축을 향유하는 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가 다른 시대로 들어선 것 같다. ‘자산’으로써 데이터를 남기기 어려웠던 어제와 다르게 요즘은 캐드, 3D 모델링, 사진 등 데이터가 넘치고 SNS를 통해 건축을 소비하는 방식도 새롭다. ‘유산’이라고 남는 것이 과연 내가 의도한 그대로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텍스트로만 기술한 건축이라든지, 상상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다른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민석 건축가는 두 유형이 있는 것 같다. 화장실 휴지에 쓴 메모까지 모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성격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지 않는 사람’ 쪽이다. 의식적으로 역사화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다.
당인리 프로젝트 때문에 영상을 한 편 만들었는데,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한강이 변모하는 모습을 쭉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걸 만들면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도대체 뭘까, 참 희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벨기에의 르 코르뷔지에 주택에서 보면 마치 뒤웅박 팔자처럼 버려진 건물을 한 젊은이가 발견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까지 되지 않았나. 건축이란 그런 여지가 있어서 재미있는 것 같다.
김정임: 얼마 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기억은 공간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한다. 오늘 조재원 소장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1991~1992년 사이에 샘터사옥 4층에서 일한 기억이 떠올랐다. 저 구석 창문을 열고 있으면 거리에 울려 퍼지던 노래가 새어 들어왔고, 그 앞 KFC 매장에서 친구들이 내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준 순간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건물을 매입해서 철거하고 신축했다면 아예 이 기억도 사라졌을 것이다.
서울시민 천 만 명 중에 1% 정도, 한 10만 개의 기억이 저 샘터사옥 언저리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세대가 겹칠 때 기억도 겹쳐지는 것이라 우리 공동의 기억이 더 많아지면 더 따뜻한 도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이야기 감사하다.


  • 발표자 조재원(공일스튜디오)
  • 발표자 조민석(매스스터디스)
  • 토론자 김정임(서로건축)
  • 모더레이터 전숙희(와이즈건축)

(토론) 공공일호 & 프랑스대사관

분량8,806자 / 15분

발행일2021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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