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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메종 구에뜨 일화로 보는 수명 연장

조민석

‘건물의 수명 연장’과 관련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겠다. 벨기에의 앤 드묄르미스터(Ann Demeulemeester)라는 훌륭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2007년 서울에 이 분의 건물을 설계할 기회가 있어 그 계기로 앤 드묄르미스터와 그의 남편이자 예술적 동반자 패트릭 로빈(Patrick Robyn)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들은 르 코르뷔지에가 벨기에에 남긴 유일한 건축물인 메종 구에뜨에 사는 분들로 유명해 그 전부터 알고 있긴 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1920년 메종 시트로앙(Maison Citrohan)이라는 가상의 주택 프로토타입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집은 삶을 위한 기계’라는 철학을 강조하고자 자동차 모델처럼 이름을 붙였고 1926년 앤트워프에 클라이언트를 위해 실제로 지었다. 이 집이 메종 구에뜨다. 1927년 준공된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지드룽(Weissenhof-Siedlung) 집도 이와 유사한 형식이다.

패트릭 로빈에게 어떻게 르 코르뷔지에의 집에서 살게 되었냐고 물었다. 패트릭 로빈과 앤 드묄르미스터는 고등학생 때 만나 이후 결혼한 사이인데, 20대 초반의 대학생 때 동네에 까만 슬레이트 형태의 돌로 덮인 상자형 집이 있길래 왠지 호기심이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고 한다. 연세가 지긋한 여성 한 분이 문을 열었고 이들이 집을 구경해도 되냐고 물으니 선뜻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길 화가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지은 집이고 아버지가 작고한 후 물려 받아 혼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르 코르뷔지에의 클라이언트였던 것이다. 집 구경을 마친 다음 패트릭이 당돌하게 “이 집을 살 수 있냐”고 물으니 그녀는 웃으면서 “지금은 팔 생각이 전혀 없지만 언젠가 팔 계획이 있으면 연락주겠다.”고 말했고, 이에 패트릭은 연락처를 남기고 왔다고 한다.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패트릭에게 연락이 왔다. 직장 은퇴 후 남쪽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려고 하기에 집을 팔 생각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패트릭이 얼마 정도에 팔 생각이냐고 물으니 20대 후반인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말했다고 한다. 아쉬움에 시무룩해진 패트릭을 보고는 아버지가 무슨 일인지 물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양가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이 차례로 조금씩 돈을 꿔 주셔서 패트릭은 그녀가 제시한 금액의 ¼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여전히 턱없는 금액이었다. 다시 집에 찾아가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이 이 금액이라고 이야기하니 그녀가 뜻밖에도 ‘그래요. 이제 당신 겁니다!(Okay, It’s yours!)’라며 집을 팔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 집에서 결혼도 하고 아들도 키우며 쭉 생활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생긴 총알 자국을 덮으려고 지역에서 나는 검은 편마암으로 감싸놓은 이 집을 이들은 르 코르뷔지에 관해 잘 알지 못했음에도 한눈에 반했던 것이다. 요즘에야 코르뷔지에의 건물이 재조명되어 대단한 가치를 지니지만 그가 작고한 지 20년도 안 된 1980년대에는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세계 곳곳에 있었다.

1987년 르 코르뷔지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정부에서 복원 금액의 90% 이상을 지원해줘서 이 집은 전체적인 복원 작업을 했다. 덕분에 부부는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원본의 단판 유리를 당시 법규상 요구되는 복층 유리로 교체하면서 둔탁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방식이라든지, 페인트 색도 일일이 공부해서 준공 당시 1930년대 제조법으로 만든 색을 냈다.

원 주인은 왜 헐값에 이들에게 집을 팔았을까? 그녀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이 유별난 집에 의미를 가지고 평생 즐겁게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집의 가치를 직감적으로 알아보고 찾아온 이들이 운명적으로 이 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봤을 수도 있다. 어린왕자와 장미꽃보다 더 동화 같은 이야기 아닌가.

나는 대학원생 시절 혼자 배낭을 매고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오늘날 70곳도 채 되지 않는 르 코르뷔지에 건물 중 26곳을 보러 다녔다. 그때 가보지 못한 코르뷔지에 집에 사는 이들을 만났으니 당연히 집에 방문하고 싶었다. 수많은 답사 중에 가장 특별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기념관처럼 박제된 공간이 아니었다. 이 집에 찾아갔을 때 복층 구조의 마치 르 코르뷔지에의 초기작 오장팡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방에서 갓 미대생이 된 그들의 아들이 놀이 하듯이 큰 테이블 위에 페이퍼 클립을 변형해서 알파벳 폰트를 만들고 있었다. 오장팡, 원래 화가였던 주인, 이들의 아들까지 한 건축가를 통해 이어지는, 예술을 매개로 한 어떤 서사가 보였다. 

두 번째 이유는 호기심이 많은 나를 위해 세탁실, 기계실이 있는 지하실까지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열정적으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패트릭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분은 평생 이 일을 셀 수도 없이 자주 했겠구나. 이걸  이렇게 즐겁게 반복할 수 있음을 전 주인이 알아보고 75% 바겐세일을 하며 헐값에 양도했구나.’ 이런 생각에서 오는 감동이었다. 어느 날 아시아계 노신사가 문을 두드리며 구경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알고 보니 아이엠페이 선생이었다는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이 집으로 뜻밖의 특별한 사람들과의 무수한 만남이 평생 이어지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이후 집 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의 부지를 사들여 앤 드묄르미스터의 브랜드 사옥을 붙여 지었다. 이들은 땅을 마련한 뒤 마치 김중업 선생처럼 르 코르뷔지에 영향을 받은 벨기에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다고 한다. 새 건물을 위한 원래 도장 계획은 백색이었다가 실제로는 어두운 회색으로 했는데, 원형과 같은 색이면 기존 건물의 특별함을 상쇄시킬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메종 구에뜨와는 2층 침실층에 작은 개구부를 내어 연결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원형에서 유일하게 달라진 부분이다.

주한프랑스대사관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김중업 선생의 건축물을 수도 없이 들여다보았고, 그 과정에서 원 설계자의 건축 언어를 마주하고 동시에 르 코르뷔지에에게 받은 영향을 발견했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요소를 기존 대지에 삽입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빈 땅에 신축 건물을 설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정보가 설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력은 메종 구에뜨에서도 볼 수 있듯이 건축을 매개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연장되어 갈 것을 기대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메종 구에뜨 일화로 보는 수명 연장

분량3,112자 / 5분

발행일2021년 3월 31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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