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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 재생이라는 흐름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서구, 최재원, 김찬중, 우대성, 김광수, 최춘웅, 양수인, 조민석, 조재원

허서구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석유탱크에 들어서는 순간 높이도 높이거니와 넓은 면적, 소리의 울림, 철판을 뚫고 들어오는 빛줄기 등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간감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일컬어 ‘동굴’이라고 불렀다. 그 상태를 고스란히 인정하고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리모델링 설계에서는 기존 공간의 환경이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건축가가 어떤 기능을 설계할 때 본인의 경험 데이터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동굴’은 이미 그걸 뛰어넘어 존재하고 있으니까, 건축가가 그 환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디자인적으로 감성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은 것이다. 가로수길처럼 젊은이들 사이에 떠오르는 장소에 왜 리모델링이 활성화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짓는 집들과는 다른 스케일감이나 좁고 높아서 느끼는 공간의 깊이감이 매력적이어서인 것 같다. 때로 묵은지가 필요한 요리가 있듯이 리모델링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고쳐쓰기를 할지는 결국 대상을 읽어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지혜와도 연관된 일이기에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문화비축기지의 경우 사회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었고 그것을 공간으로 구현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은 거칠고 모호해 보일 수 있으나 훗날에는 또 다른 쓰임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비축기지의 프로그램을 논의할 때 나는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장소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당이면 어떻고 카페면 어떻나.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공공프로젝트에서 상업성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런 탓에 상상력이 커지지 못한다. 자꾸 정체 모를 문화라는 탈을 씌운다. 상업적인 경쟁력을 가진 공간, 다시 말해 한 걸음 더 솔직한 이야기에 다가선다면 더욱 풍요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간시장에서 리모델링이 활발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최재원 요즘 설계사무소에 문의 들어오는 일의 상당수가 리모델링이다. 이제는 우리 주변의 동사무소가 박물관으로, 주택이 음식점으로, 다시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사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영향이라면 기존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설계하면서도 느꼈지만 리모델링은 신축과 달리 건물에 잠재한 힘을 미래의 상황에 적합하게끔 활용할 여지가 있다. 그 힘을 끌어내고 적재적소에 위치시키는 일이 건축가의 역할이 된다.

이제 대중은 사소한 것에도 가치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성수동에 있는 여러 리모델링 건축물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면 (향수를 자극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늘 주변에 있던 것을 새로운 이야기로 향유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건물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어나가는 노력이 중요해 보인다. 이때 건축가는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김찬중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건축적 경향도 움직이고 있다.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양분되는 느낌이다. 한쪽은 일반적인 것을 원하고, 다른 한쪽은 독특한 것을 원한다. 콘텐츠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사용자로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마치 스위스 나이프 같은 만능의 공간을 원하거나 무작정 특별한 것을 주문한다는 말이다. 자체 콘텐츠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공간의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들린다. 현대건축에 이야깃거리가 없었던 것이 불안한 모양이다. 그래서 플레이스원도 새로운 이야기를 원했던 것 같다. 거대한 담론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쉽게 반응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어! 저거 돌아가네”, “너 지하 선큰 정원 가봤어?” 이런 말이 퍼지는 자체가 새로운 가치라고 여기는 지점에 우리가 서 있는 것 같다.

모바일 기기와 소셜 네트워크가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앞으로 건축은 하드웨어로서 어떤 속성을 띠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클라이언트가 리모델링을 선택하는 이유도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빈 땅은 재료가 빈약하니까.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경향은 비용과 시간 문제를 떠나서 스토리텔러를 찾으려는 목적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대성 인구가 성장을 멈추고 내리막길에 있다. 가톨릭 교구도 성직자 수가 감소하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아파트 단지 근처 말고는 최근 5~6년 이내에 새로 지어진 성당이 몇 곳 없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성당이 부동산 매물로 나온다고 한다. ‘만약 수도회에 들어오는 인구가 더는 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톨릭계도 이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래서 수녀원의 사용자가 고령화된 때에도 어떻게 지속해서 이 건축자산을 잘 쓸 수 있을지를 지금 세대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 이후의 세대에서는 (매각은 드물 것 같지만) 대부분 통합하거나 일반 시민이 별도의 용도로 쓰게 될 때를 상상하며 그 사용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대부분의 가톨릭 시설이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 하다. 그 건물들에 대한 기억은 가톨릭 교구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기억과 함께 얽혀 있다는 뜻이다. 그것들의 활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김광수 과거에는 산업시설 리모델링을 그 자체의 특징이나 분위기가 좋아서 결정하기보다는 예산이 적어서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이유에서도 리모델링을 선택하고 있다. 산업시설 리모델링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도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미지를 정해놓고서 그대로 요청하는 건축주를 만나도 이제는 건축가 입장에서 ‘그것만이 답이 아니다’라고 그들을 설득하기 힘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때는 과거의 산업시설 그 자체가 집착의 대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요즘 들어 ‘우리가 무시간성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무시간성에 가깝기 때문에 시간성에 대한 증거나 현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도시재생뿐만이 아니고 전반적인 문화 현상 자체가 레트로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유다. (우리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시간을 공간화하는 과정을 거쳤고,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되고, 그러다가 시간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전주한옥마을이나 교외의 시골 마을, 영상테마파크 등지를 배회하며 일시적으로 과거에 돌아간 듯한 체험을 얻고자 하는 것 아닐까. 이제는 서울에 사는 사람조차도 서울을 관광객의 시점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 같다. 때에 따라서 보존이 중요한 상황도 있겠지만, 집착적으로, 관습적으로 재생하려는 것은 개인적으로 경계하고 싶다.

최춘웅 산업시설 리모델링은 다른 리모델링과는 조금 다른 층위의 문제로 보인다. 이번 포럼에서는 ‘건물의 수명 연장’이라며 건축물 자체를 인체화하는 시도를 보여줬는데, 생각해보면 산업시설은 너무 규모가 커서 그야말로 인체화해본 적 없던,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배경화된 건물에 가깝다. 오히려 생태 환경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만물에는 저마다 타고난 수명이 있듯이 건축물 또한 자연적으로 퇴화하게 놔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양수인 건물에 대해서 건축가가 산파 역할을 한다고 보면, 파괴공학 전문가는 건물이 웰-다잉할 수 있도록 돕는 장의사 역할을 하는 셈이겠다. 앞으로는 한 번의 파괴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부서지고, 약간씩 없어지고, 점차 줄어드는 식으로 사라져가는 방법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조민석 2019년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던 스페인 건축가 페르난도 메니스의 강연에서 그가 말했다. “건축은 라자냐 같은 거야. 레이어가 많을수록 맛있어.”(웃음) (페이스북에 이 내용을 올렸더니 ‘그래도 소스가 중요한 거 아니냐’는 댓글도 있었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건축물 그 자체부터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한 층위의 디테일한 이야기가 쌓여야 수명 연장의 빌미가 된다는 거다. 사실 건축가에게 흥미로운 것은 거기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찾고, 무엇을 재료로 삼아서 재미있고 풍부한 공간적 경험으로 드러낼지에 있다.

한 세기 사이에 세계 인구가 네 배 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집’이라고 부르는 건조환경의 3/4 정도는 지난 100년 사이에 급조된 환경이란 소리다. 그만큼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상대적으로 희박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늘었는데 역사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전쯤부터 그런 생각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건축물과 건물이 구별되는 지점은 그 용도가 없어져도 사회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을 것 같다. 설령 폐허가 되어도 이 땅에 남을 수 있다면 그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조재원 건축가란 자신의 에고를 공공적인 도구로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용도가 바뀌고 주인이 바뀌어도 건축물에 ‘어떤’ 태도가 남을 수 있도록. 계획 당시 공공일호가 나에게 어떤 프로젝트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이 전환의 시기가 이 건물이 ‘어떤’ 건물로 다음 세대에게 기억될 지를 가늠할 순간이란 사실이 내 개인적인 의미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한 장소가 건축가를 만나는 때는 짧게는 건물의 본래 수명동안의 시간, 길게는 그 이후의 시간까지 연장될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이할 때가 아닌가. 건축가는 한 장소의 미래가 좌지우지되는 중요한 순간에 개입해 역할하는 존재다.

보존과 재생이라는 흐름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량4,673자 / 10분

발행일2021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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