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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측면에서 특별히 고민한 것은 무엇일까

조재원, 조민석, 최재원, 김찬중, 우대성, 윤승현, 김광수, 양수인, 허서구, 한승재

공공일호

조재원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가장 크게 든 감정은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한국 근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김수근 선생의 작업을 고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바꿔야 할지 가구만 새로 넣는 식으로 최소한으로 손대야 할지 건축가로서 내 위치를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 고민이 컸다. 결론은 ‘어떻게 계획할까’라는 질문보다 ‘어디에서 시작할까’라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질문의 방향을 바꾼 뒤로는 어렵지 않았다.

내가 정한 입장은 새롭게 무엇을 해석하겠다는 것이 아닌, ‘40년간 이어져 온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멋있게 차려진 밥상이기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 보이게 만든 다음 숟가락을 얹겠다는 생각이었다. (웃음) 그때부터는 ‘제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가 아니라 ‘이어져 온 이야기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첫 문장은 이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로 프로젝트에 임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자료와 현황을 충분히 읽고 분석해 이야기의 큰 구조를 파악하고 난 다음부터는 선을 그리거나 재료를 정하거나 벽을 허무는 어떤 결정에도 근거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물리적인 변화를 꾀한 부분은 서쪽 계단실 3~4층 벽이었다. 플랫폼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농담으로 “내가 앞서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풀고 추리한 이유가 여기 벽 하나를 부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3~4층 공간은 상주하는 구성원이 독점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공유하는 잠재적인 사용자들에게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는 특징이 있었다.1 ‘김수근 선생이 설계 당시에 건물이 지닌 씨앗이 발아해 자라날 도시적 상상력2으로 건물을 설계했다면 지금 스스로 건물을 고치더라도 이 정도의 변화를 만들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단실과 전용공간 사이에 있는 벽돌 벽을 허물고 투명한 유리로 교체했다. 눈을 마주치고 소통할 수 있게끔 하는 변화가 결국 건물의 성격을 바꾸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원형에 내재한 공간의 힘을 미래의 프로그램과 매칭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느낀 건 결국 건물의 가치가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형태를 보존했다고 해서 역사적 가치를 존중한 설계라고 할 수 없다. 역사적 가치와 오늘날의 사용가치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후에 ‘이렇게 바꾸었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이 최선의 존중이 아닐까.

주한프랑스대사관

조민석 김중업 선생이 초창기에 작업한 자료를 보면 여러 가지 버전의 배치 계획을 확인할 수 있으나, 전체적인 중심은 두 건축물의 지붕에 있다. 이 지붕의 앙상블은 사방에서 잘 보였고 또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시점에 따라 서로 겹쳐지며 하늘을 조각내는 모습은 사진으로 보아도 상당히 멋지다. 김중업 선생은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 건물 전경 사진 위에 하늘을 더 강조하고자 파란 마커칠을 하기도 했다. 마치 하늘을 주인공 삼기 위해 건축물이 디자인된 것처럼.

하늘을 강조하고자 했던 김중업의 스케치 / 자료 제공: 김중업건축박물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전혀 다른 풍경이 됐다. 처음 현장에 갔을 때 충격을 받았다. 언덕 밑에서 건물을 올려다본 그 유명한 흑백 사진을 보고 갔는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고층 건물이 병풍처럼 대지를 둘러싼 형국이었다. 한 쌍의 지붕이 만들어 낸 조각 하늘 대신 고층 건물이 보였다. 더는 사방에서 건축물을 볼 수 없었고, 빈 앞마당을 통해 전면에서 들어갈 때만 보였다. 그나마 고마운 상황은 정원의 나무가 높게 자라 주변 건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60년간 밀도 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겪은 서울의 전형적인 콘텍스트 변화다.

우리 설계안은 김중업 선생의 건축물 원형을 복원하면서도 새로운 요구에 맞춘 두 신축 건물(뚜루와 제띠)과의 관계를 현재 상황에 적절하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타워동 뚜루의 평면 방향은 대사관저와 맞추고 수평 박스 제띠의 평면 방향은 파빌리온 평면 방향과 맞췄다. 기하학적으로 또한 경험적으로 기존 건축물과의 관계 맺기, 다시 말해 대화를 시도하고자 했다. 또 제띠의 기둥 간격은 대사 집무동의 4.5×4.5m 그리드를 그대로 차용했다. 김중업 선생의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이고 신축 건물은 철골 구조이지만, 공간 단위는 이런 식으로 연계된다.

두 신축 동의 외장재에 관해서는 김중업 선생의 건물이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밝음의 건축이라면 새 건축물은 어둠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잿빛으로 도장한 철골과 태운 소나무로 마감한 벽을 생각하고 있다. 어둡고 매트한 질감으로 밝은 콘크리트 건축물의 배경이 될 것이다.

밝음의 건축과 어둠의 건축의 조화 / 자료: 사티, 매스스터디스

구산동도서관마을

최재원 누구나 공간 구석구석을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꿈꿨다. 그래서 기존 건물의 높낮이를 맞추는 작업이 중요했다. 여러 번에 걸쳐 측량을 반복했고 꼼꼼하게 따져가며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통해 모든 실에 진입할 수 있게끔 계획해 유모차나 휠체어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3

건물의 계단은 그대로 뒀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안에는 총 네 개의 계단이 있다. 좋게 보면 올 때마다 다른 길을 경험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길로 실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내심 좋았다.

방 크기뿐만 아니라 벽 두께, 계단 폭까지 세심히 실측한 치수 / 자료: 최재원
실내 동선 다이어그램 / 자료: 최재원

플레이스원

김찬중 ‘은행 같지 않은 건물’을 만들어 달라는 건축주의 요청을 받고 나서 기존 건물의 밋밋한 벽을 보다 보니까 켜를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단순하게 외장재를 교체하는 식으로 접근할지 혹은 공간의 개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스템적으로 새로운 건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면과 단면을 오가며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생기는 켜가 어떻게 작동될지 오랫동안 연구했고, 마침내 구조와 설비가 차지하는 시스템적인 공간이되 실생활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의 켜를 구상하게 됐다.

여러 시도 끝에 처마 밑 1m 공간을 찾았다. 건축법상 외벽 중심선으로부터 수평거리 1m 이하 돌출된 면적은 건축면적으로 산정하지 않는다. 전제조건은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사용자가 쓸 수 없는 공간으로 1m씩 바깥으로 옵셋할 수 있었다. 이 구간에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플러그인 모듈의 ‘아트 디스크’라는 개념을 고안해냈다. 2년에 한 번씩 아티스트를 선정해서 작품을 발표하는 장을 만들고, 이후에는 전국 지점으로 이전하는 방식이다. 첫 아티스트로는 진달래&박우혁이 초대됐다.

아트 디스크의 케이스는 프리캐스트콘크리트 공법으로 초고성능 콘크리트(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 UHPC)를 썼다. 일반 콘크리트로는 18cm 두께에 6.5t일 것을 UHPC로 8cm에 1.5t으로 줄였다. 8cm 두께는 기존 콘크리트와는 전혀 다른 미감을 주는 점도 특징이다. 이 검증 작업에만 4개월이 걸렸다. UHPC 모듈 제작5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날 선 가장자리, 평평한 단면을 균질하게 구현해야 했다. FRP 거푸집, 철판 거푸집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물성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가 부족했던 터라 필요한 품질을 얻는 데 연거푸 실패했다. 결국 다섯 번의 실패 끝에 UHPC를 포기하기 직전에 정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병합 거푸집을 시도해서 성공했다. 생산 방식을 찾고 나니 뒤쳐진 일정을 따라잡을 만큼 속도가 붙었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

우대성 큰 고민 혹은 어려움이라면 디자인하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건축가로서 욕망을 누르고 원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물론 실천은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대화를 통해 그 방도를 알아내는 길밖에 없었다. 내가 할 일은 오직 사용자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전체를 건축가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었다. 마치 한의사가 막혔던 혈을 풀어주듯이 기존 공간에 없는 통로를 열어주고 방치된 옥상을 재정비하고, 그럼으로써 일상생활을 더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방치해 온 옥상을 증축해 옮긴 장독대 / 사진: 윤준환, 사진 제공: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또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수명 연장’이었다. 보통 프로젝트가 건축가의 손에서 떠나면 끝이라고 여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다음의 수명 연장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프로젝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어떤 재료를 골라가면 수녀원에서 ‘얼마나 가나요?’하고 물었다. ‘10년은 더 간다’고 대답하면 ‘10년이면 새 건물인걸요. 최소한 50년은 가야 할 텐데요’라고 했다.

콘크리트 수명이 얼마다, 설비 수명이 얼마다 식의 ‘카더라’ 통신으로 대강만 알았지 한 번도 그 수명을 면밀히 따져본 적이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정말 오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음에 더 쉽게 고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또한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서소문역사공원

윤승현 공공공간에 특정 종교단체의 성지를 만든다는 특혜 의혹으로 천막농성까지 있었다.6 이에 서울대교구 측은 ‘공공장소에 성지가 있을 뿐이다. 이곳의 의미를 가슴에 품고 공공성을 발휘하기 위해 잘 관리하겠다’라고 뜻을 밝혔고, 그 이후부터 경직되다 싶을 정도로 종교적 상징성을 배제하고자 했다. 천주교와 관련된 모든 표식을 덜어냈고 종교 행위도 소성당 한 군데에서만 하도록 했다. 우리로서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역사적 현장으로서의 가치야말로 이곳의 조성 배경이자 고유한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바탕인데 말이다. 마치 또 다른 공공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종교인은 대중성을, 비종교인인 우리는 종교성을 외치는 오묘한 중합 관계가 생겼다.

(그러한 논의 끝에 만들어진) 관람 동선상 끝자락에 있는 기념 전당은 최대한 종교성을 표현한 공간이다. 가로 25m, 세로 25m 크기의 상자가 2m 높이로 떠 있는 모양새다. 관람객 입장에서 종교 공간에 들어간다는 낯섦을 완화하면서도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사방을 개방하되 마치 경배를 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도록 연출한 디자인이다. 전당 안에는 천창에서 내려온 빛줄기 하나만이 어둑한 사위에 드리워지는데 이 모습이 죽음을 받아들인 위인들의 심연을 암시한다.

기념전당 안쪽에서 복도를 바라본 모습 / 사진: 김재윤

부천아트벙커 B39

김광수 관람객은 이곳에서 밝은 영역과 어두운 영역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볼 때,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이  상반될 수도 있다. 설계할 때에 이러한 효과를 염두에 뒀다.쓰레기 소각장이라는 기존 건물의 용도상 실내의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규모와  어둑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완화해줄 방법이 필요했다. 이때 전작인 판교 케이브하우스에서 사용한 아치 볼트를 떠올렸고, 이곳의 과도한 스케일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다. 구축적인 기능보다 요소의 도상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사용자의 시선에 맞춰 스케일감을 확 낮추면서도 기존 공간과 대비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코스모40

양수인 구조적으로 기존 공간과 새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단열 시공을 하지 않고자 함이었다. 산업시설을 리모델링할 때는 그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려는 의도가 있는데, 실내든 실외든 단열 시공을 새로 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그 분위기를 잃는다. 두 번째 이유는 철골 내화 처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 건물은 1990년대에 준공된 공장이라서 철골 내화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기존 페인트를 벗겨내고 내화 페인트를 칠하는 비용만 가늠해 봐도 전체 예산의 20%를 차지할 정도였다. 비슷한 사례를 많이 경험해 본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니 보통 단열재를 붙였다가 사용승인을 받은 후에 뗀다고 이야기했다. 나와 건축주는 그 방법보다는 기지를 발휘해서 발전적인 대안을 찾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네스코의 리모델링 지침에 따르면 새로 적용하는 재료와 기존 재료는 명백하게 구별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 또한 그것이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코스모40에서 새 공간을 표현할 때 명백하게 새것 티를 내려고 했다.

문화비축기지

허서구 보통 웃음의 기저에는 격한 공감과 뜻밖의 반전이 공존하는데 나는 공간적 경험에도 이 두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계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굴’이었다. 석유비축기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구축 과정을 역순으로 밝히면서 이뤄가는 이야기다. 먼저 작업로를 냈을 것이고, 그다음 바위산을 뚫고 들어가 바닥과 옹벽을 다지고, 탱크를 세웠을 것이다. 이후 작업로로 다시 빠져나오면서 길을 막았으리라 추정했다. 우연히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1977년 대상지의 항공사진을 발견하고는 그 생각을 확신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석유비축기지 조성 당시 항공 사진 / 사진 제공: 허서구

설계에는 제약이 뒤따랐다. 예를 들어 마감재 목록에서 내후성 강판(코르텐)을 철저히 배제해야 했는데, 이유는 새 코르텐이 이 땅에 들어오는 순간 원 구조물까지 새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또 탱크 구조체에 어떠한 변형이나 가공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용접조차 할 수 없어서 사소하게는 전등이나 기초 설비 등 어떠한 요소도 탱크를 지지체로 활용할 수 없었다. 또 벽체에 손이 닿지 않도록 하면서 안전 난간을 설치해야 했다. 이토록 원형을 보존하겠다는 원칙이 뚜렷했다.

성수연방

한승재 대게 리모델링을 결정하는 동기는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공감했을 때다. 예를 들어 공간사옥 같은 경우다. 애초에 사회적으로, 건축적으로 되새겨 볼 만한 멋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현장은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1970년대에 준공된 이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의 작업도 아니고 뚜렷한 작품성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건물의 가치와 분위기를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건물에 인상을 만들고자 했다. 사람들이 보고 특이하다고 느낄 법한 기둥 조형으로 그것을 입히기로 했다. 1970~1980년대에 지어진 건물에서 조형에 관한 힌트를 얻었는데, 당시에는 기둥이나 벽과 같은 구조체를 장식요소로 활용하던 때다.

그런 식으로 이 기둥을 모뉴먼트라고 생각하고, 옛날 건물에서나 볼 법한 기세등등한 인상을 표현했다. 향후 테넌트들이 입주해 간판을 붙이거나 글씨를 써 붙여도 이 기둥의 거대한 존재감을 가릴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너비 30cm 남짓한 발코니를 확장하는 용도로는 과한 사양이었다. 그래도 현장 소장님에게 요청했다. “이 기둥을 조각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주세요!” 건물을 자세히 보면 두 동의 기둥 조형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는데, 비례를 달리 한 탓이다. 한쪽은 위로 뻗어가는 기세이기에 1층 기둥이 (상대적으로) 짧고, 반대쪽은 묵직한 느낌을 내도록 길다.

모뉴먼트가 된 기둥 / 사진: 석준기, 사진 제공: 푸하하하프렌즈

디자인 측면에서 특별히 고민한 것은 무엇일까

분량7,067자 / 15분 / 도판 13장

발행일2021년 3월 29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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