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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한 건물의 새로운 역할은 무엇일까

조재원, 조민석, 최재원, 김찬중, 우대성, 윤승현, 김광수, 허서구, 한승재

공공일호

조재원 ‘스페이스에서 플랫폼으로의 전환’이라고 소개한 것처럼 한 회사의 사옥을 플랫폼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샘터사옥의 역사적·건축적 맥락을 이어가며 동시에 플랫폼으로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했다.

내가 생각하는 플랫폼이란 사용자 간의 다중 상호작용을 위한 ‘거점’이다. 저마다의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가깝게 모여 의도하지 않더라도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다. 그래서 우연한 마주침이나 스침으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저곳의 이웃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는 환경과 자유롭게 나의 것을 드러내고 남의 것도 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했다. 

불특정 다수가 쓰는 공간이라고 해서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하지 않았다. 테넌트에게 요구 사항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사항들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풀어갔다. 현 사용자가 먼저 공간을 잘 사용하고 그 의미를 소화해야 일종의 문화가 형성되어 다음 사용자에게 전달될 것이란 믿음에서였다.

플랫폼 개념도 / 자료: 공일스튜디오
2018년 공공일호 단면도 / 자료: 공일스튜디오

주한프랑스대사관

조민석 일대에서 가장 높은 구릉지에 자리잡아서 마치 르 코르뷔지에가 동경하던 아크로폴리스를 연상케 하던 모습은 60년이 지난 지금 찾을 수 없다. 또 대서관저 이외의 건축물은 원형이 크게 변질된 상태였다. 대사 집무동의 1층 필로티는 막혔고 바로 옆의 직원 사무동은 2개 층 규모로 증축됐다. 세월이 흐르며 필요한 면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랑스대사관이 요구한 면적을 맞추기 위해 김중업 선생의 건물과 비율도, 특징도 전혀 다른 신축 건물 두 동을 제안했다. 하나는 대사관저 뒤편에 배치한 10층 높이의 미니타워 뚜루(Tour, 타워의 프랑스어)다. 뚜루는 보안이 철저하게 필요한 대사 집무실을 비롯한 여러 부서를 위한 업무 공간이다. 이와 형태적으로 대비되는 수평 상자 제띠(Jetée, 방파제의 프랑스어)는 원래 있던 직원 사무동 자리에 새로 들어선다. 다시 원형 높이로 만들어 대사 집무동과의 단면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도다. 비자 발급 및 각종 상담 등의 민원업무가 진행되는 공간으로 뚜루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며 특히 제띠 옥상은 실내 연회장으로 이용될 대사관 집무동 2층 공간과 이어져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김중업 선생의 의도를 확장적으로 복원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의 관계를 나타낸 배치도 다이어그램 / 자료: 매스스터디스

구산동도서관마을

최재원 보통 도서관은 큰 공원이나 대로변을 끼고 생기기 마련인데 2종일반주거지구 한가운데에서도 막다른 골목길에 몰린 빌라 및 단독주택군을 리모델링해 만든다니 난감했다. 주택을 도서관으로 바꾼 전례도 없었다. 그래서 공간의 기능성에 먼저 접근했다. 만약 이곳이 도서관이 아니면 무엇일지  질문했고 그 답으로 ‘마을’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골목이 얽혀 있고, 숨바꼭질하며 몸을 숨길 틈도 있는 그런 장소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마다 공간을 다르게 인식하는 게 재미있다. 저마다 ‘한 건물이다’, ‘마을이다’, ‘방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여러 요소의 특성이 공존하는 곳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의 특징이다.

용도를 전환하면서 생기는 충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활용 측면에서 꽤 긍정적이었다. 집과 방의 모듈을 따라 공간 구조와 열람실 크기가 정해졌으니 다른 도서관과 달리 쉽게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층고가 2,600mm 정도로 일반적인 도서관과 비교하면 확실하게 다른 공간감이다.

도시적 맥락에서 살펴 본 배치도 다이어그램 / 자료: 최재원

플레이스원

김찬중 기존 건물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만들 것, 다시 말해 ‘은행 같지 않은 건물’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과장해서 말하면 기존 모습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그야말로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한편 면적을 키울 방도가 없을지도 고민이었다. 일반인은 리모델링 전보다 규모가 줄었는지 혹은 커졌는지에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더 커보이는 방법을 고민한 것 같다.

또 클라이언트는 커뮤니티 기반의 복합문화점포가 되길 바란다는 요청을 전하며 문화적인 시도를 접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1 우리는 방향을 구체화한 다음 프로그램을 실제로 운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반들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코어(슬로우 코어)를 더한 것도 그 일환이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

우대성 리모델링을 하면 대부분 물리적인 성능 개선에 집중하는데, 나는 성능은 기본이고 리모델링을 결정한 배경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은 수녀들의 어머니 집과 같은 장소이자 동시에 일상을 영위하는 곳이기에 그 배경을 이해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 건물은 그 자체로 수도회 정신을 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복도를 기준으로 모든 방이 균등하고 평등하게 배치된 모습은 건물이 진화하며 자연스럽게 드러난 결과인데, 이는 수평적인 수녀의 관계를 암시한다. 그렇기에 독립성을 존중하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집단생활 또한 윤택해질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 했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 2층 평면도

서소문역사공원

윤승현 기념성과 일상성이란 개념을 서소문역사공원에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천주교 성지로서의 장소성을 기념하면서도, 중림동 주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어떻게 만들지에 관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중심부를 가능한 한 비우고 가장자리에 수목을 두텁게 심었다. 빈 땅을 기념의 장소로, 주변을 산책로 및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바깥에서 보면 건조한 도시 환경의 풍요로운 녹지 숲이고 안쪽에서 보면 도심의 여백이다.

서소문역사공원 배치 개념도 / 자료: 아뜰리에나무
서소문역사공원 모형(중앙의 타워는 설계 과정에서 삭제됐다) / 사진: 김재윤, 사진 제공: 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

부천아트벙커 B39

김광수 말하자면 소각장은 기계를 위한 공간이었다. 철저하게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운영되므로  운영자도 채 몇 명이 되지 않았다. 주요 동선도 쓰레기차가 오가는 뒤쪽 도로였가 중심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위한 동선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대로변 쪽에 입구를 배치하고 열주를 세워 길을 만들고 기존 관리동과 소각시설을 하나로 엮어내 방문객이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실내에서는 새로 도입한 프로그램실과 기존 실들이 깍지를 끼듯이 만나도록 해 서로 간의 접촉면을 많이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듣고자 찾아 온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소각 시설과 마주하길 바라는 의도였다.

부천아트벙커B39 동선 다이어그램 / 자료: 스튜디오K웍스

프로젝트를 끝낸 지 몇 달 후, 잠을 자다가 벌떡 깬 적이 있었다. 1999년에 동료들과 서울리서치그룹이란 이름으로 함께 작업한 콜라주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콜라주 작업은 저지대에 있으나 극명하게 운명이 달라진 섬인 여의도와 난지도의 이미지를 이어 붙인 그림이었다. 여의도는 유토피아 지향성을 가진 문명의 상징 공간이 되었고, 난지도는 방치되어 있다가 약 90m 높이의 쓰레기 산이 되었다. 그러한 두 장소를 한 장면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콜라주를 했는데, 지금 보니 부천아트벙커 B39가 그 모습이었다.

서울리서치그룹 콜라주 / 자료: 스튜디오K웍스

문화비축기지

허서구 다섯 개의 탱크 크기가 각기 다른데3 휘발유, 경유, 등유 등 종류별로 비축량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암반 절개지, 콘크리트 옹벽, 오일탱크, 프로그램 네 가지 요소를 어떻게 조합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제안할지 고민했다.4

새롭게 만든 6번 탱크는 1번 탱크와 2번 탱크 두 개를 포갠 것이다. 가장 서쪽에 있는 1번 탱크는 크기가 가장 작은데, 이걸 가장 큰 2번 탱크에 넣어 실내 벽으로 쓰는 방안이다. 이곳에는 지원시설이 들어간다. 1번 탱크 자리에는 유리 구조물로 만든 탱크를 배치했고  2번 탱크 자리에는 야외무대를 만들었다. 4번 탱크는 실내를 활용하는 방안이고 5번 탱크는 외부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한편 3번 탱크는 원형을 존치해 시간의 변화를 온전히 겪도록 했다.

문화비축기지 전체 배치도 / 자료: 허서구

성수연방

한승재 낡은 건물에 구로 강판을 접어 만든 테이블 몇 개를 두고 조막만 한 간판을 거는 식은 정말 싫었다. 도시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재미도 없다. 이곳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먼저 고민했다.

클라이언트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요즘 성수동이 인기 있고 카페를 만드는 게 트렌드이지만 뭐가 더 있지 않겠어?’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때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이 발동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개인의 이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곳은 화학공장이었다가 신발공장이 된 곳이다. 우리는 이 다음 단계도 공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지가 크고 이미 공장이란 프로그램에 적합하게 구조가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훗날 인기가 없어졌을 때를 더 고려했던 것 같다.

카페 대신 가고 싶은 곳은 그런 곳이다. 유럽 도시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공원, 도서관, 정육점 등이 어우러져 ‘여기에선 무엇을 하나’ 싶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곳, 누군가는 연주하고 누군가는 장사를 하는 곳 말이다. 중세시대의 성벽 너머, 소비에트 공화국의 담 너머에 숨겨진 폐쇄적인 사회를 상상해봤다. 아주 작은 도시가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모습이 한 장면에 펼쳐지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도시는 산업의 여러 단계 중 가장 마지막만을 소비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그 이전 단계를 더해서 함께 보여주자고, 그 이전 단계를 소비하는 문화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클라이언트와 이야기 나눴다. 그러면서 생산 공장을 만들기로 정했다.5

리모델링한 건물의 새로운 역할은 무엇일까

분량4,345자 / 10분 / 도판 19장

발행일2021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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