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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재원, 조민석, 최재원, 김찬중, 우대성, 윤승현, 김광수, 양수인, 허서구, 한승재

공공일호

조재원 2017년 6월 17일 샘터사 김성구 대표의 인터뷰 글로 ‘샘터사옥이 그 가치를 존중해 줄 매수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가 보도됐다. 평소 미래세대를 위한 실험 공간에 관심이 있던 클라이언트는 기사를 읽고 ‘이를 기회로 삼아 가치 있는 건물에 혁신적인 테넌트를 더해 공간을 새롭게 바꾸는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공공그라운드가 생긴 이유다.

매수 검토를 위해 샘터사옥을 함께 방문하고 나서 내가 처음 낸 의견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건물 자체보다 땅값이 부동산 가치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던 터라 평당 약 1억 5천만 원, 근 300억 원에 가까운 투자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용자들은 다이내믹한 변화와 역동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난 사용성을 살려야 할 콘텐츠와 이렇게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건물이 잘 맞을지, 이 조합이 지속적일 수 있을지 건축주에게 되물었다. 그는 “각각의 목표만 보면 오래된 걸 충실하게 남기자는 쪽과 혁신적인 콘텐츠로 사용하자는 쪽 양측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두 목표가 한 장소에서 만날 기회를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답했다. 사실 반문한 이유는 운영 주체의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의지를 강하게 밝혀줘서 나도 ‘내 힘이 미치는 한 두 목표가 제대로 만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하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8년 공공일호 리모델링 후 전경 / 사진: 공공그라운드, 타별사진관
1979년 샘터사옥 신축 당시의 전경 / 사진: 샘터

주한프랑스대사관

조민석 프랑스 정부는 2015년 주한프랑스대사관 증축 및 리모델링 설계 공개 공모를 개최하고 다섯 쌍의 프랑스-한국 건축가 팀을 선정한 후 2단계에 해당하는 제한경쟁 공모를 열었다. 여기에 한국계 프랑스인 윤태훈 대표가 이끄는 사티와 매스스터디스가 함께 참여했다. 현장설명회로 프랑스대사관 부지에 참여 팀이 모였던 날 공모 주최측은 지침을 말하며 ‘변형된 대사 집무동(파빌리온)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장소로 활용하겠다’라고 밝혔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대사관저에 비하면 대사 집무동은 크게 변질된 상황이었기에 그러한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설계 공모 지침 발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은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은 지붕이 중요하니 보존해달라’는 요청을 한 차례 보냈고,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관이 ‘브릿지로 연결된 대사 집무동을 보존해달라’는 요청을 전했다. 이내 공모는 일시적으로 멈춰 섰다.

3개월 후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와 반갑게도 ‘대사집무동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다만 지침에서 밝힌 요구 면적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신축 건축물을 위한 대지 면적은 크게 줄어들고 건축가에게는 더 큰 도전 과제가 생긴 셈이었다.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현재의 도시적 맥락에서 역사적 건물과 신축 건물의 관계와 밀도를 다룰지 고민했다.

2021년 착공 예정인 주한 프랑스대사관 증축 및 리모델링안 조감도 / ©사티+매스스터디스

구산동도서관마을

최재원 2013년 5월 제안서 공모 공고 당시 ‘강당(공연장) 한 개소 신축을 제외하고 기존 건물 5동을 리모델링하라’는 지침이 나왔다.3 처음에는 합리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는 건물을 보존하겠다는 생각보다 사용성을 고민하면서 어떻게 도서관으로 잘 쓸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그러다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또 건물을 자주 보면서 차츰 애정이 생겼다. 자세히 관찰하니까 눈길을 끄는 부분들을 있었다.

무엇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주민(사용자)이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에 있다는 배경이 중요했다. 함께 모일 공간이 없다는 여건이 공공건축물의 요구로 이어졌고 이번 사업이 그 소망을 실현하는 기회였다. 그래서 주민들이 이곳에 왔을 때 공감할 만한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내내 봐왔던 건물도, 골목도, 사람도 제자리에 있어서 느낄 수 있는 공감 말이다.

기존 건물의 모습을 여러 스케일에서 남기려고 했다. 구조체뿐만 아니라 방의 크기, 창문, 문짝까지도 좋은 재료가 됐다. 방을 열람실로 꾸미고 문짝을 활용해 평상을 만들기도 했다. 어느 날 구산동도서관마을에 갔더니 한 노부부가 ‘새로 지은 거다’, ‘있던 거다’ 하며 옥신각신하고 계셨다.(웃음) 그런 부분이 재미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대로 있는 것도 아닌 것, 그래서 이야깃거리다. 이야기는 사람을 묶어주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남은 것들이 다시 이어지고 서로 연결되는 데 힘이 있다고 느꼈다.

2016년 구산동도서관마을 준공 당시 전경 / 사진: 황규백, 사진 제공: 최재원

플레이스원

김찬중 금융소비자 대부분이 온라인 모바일뱅킹을 이용하면서 점포 이용객이 줄어드는 추세다.4 심한 경우에는 하루 방문객이 열 명 내외인 곳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임대료다. 은행은 상대적으로 다른 용도에 비해 도심의 중요한 거점에 있으며 특히 대다수가 1층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곳이 강남이라면 운영자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은 이러한 상황의 대안으로 일정한 범위5 내에 흩어져 있는 지점들을 통폐합해 현재 플레이스원인 삼성동 지점으로 모으자고 결정했다. 임대료를 효과적으로 절약할 수 있으리란 판단이 뒷받침됐다.

리스크는 각 지점의 임대 계약 만료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재계약 시기를 따져본 결과 언제까지 공사를 마쳐야 한다는 데드라인이 정해졌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자연스럽게 리모델링으로 방향이 결정됐고, 그 상태로 우리에게 일이 넘어왔다.

준공일을 맞추지 못하면 점포 여섯 개가 말 그대로 문밖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무조건 시간 내에 끝내야 했다. 그나마 사전 설계 검토 기간이 넉넉했던 터라 그 시간 동안 목업 테스트를 하며 10개월 만에 공사를 끝낼 방식을 찾았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

우대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부산 본원 성당을 ‘새로 지어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럴 수 없노라고, 대신 고쳐 쓰는 방법을 제안하겠다고 말해서 리모델링으로 선회한 경우다. 이 건물은 1965년 스위스 건축가 프리츠 도스왈드란 사람이 설계했다. 모태가 스위스 캄의 성 십자가 수녀원이고 그때 사람과 건축과 자본이 함께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22살의 젊은 이방의 청년 기사가 한국에 감독하러 왔다. 이 스위스 건축가는 한국인의 생활보다 일반적인 유형으로 수도원 건물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는 사람들이 직접 제 몸에 맞춰가며 온돌을 넣고 방 위치도 바꾸는 식으로 건물을 진화시켰다. 나는 이 대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수녀원은 수녀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보통 10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400여 명의 수녀님은 세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가 1년에 한 번씩 수녀원에 돌아와 피정한다. 이를테면 오랜만에 고향에 왔는데 집이 황당하게 바뀌어 있으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그런 마음에 원형을 유지하고 싶었다. 또한 집의 원형이야말로 수도회 정신을 다음 세대에 오롯이 전하는 배경이 되리라는 마음도 있었다.

2016년 광안리 하얀 수녀원 리모델링 후 전경 / 사진: 윤준환, 사진 제공: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1965년 광안리 하얀 수녀원 신축 당시 전경,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60년사 / 사진 제공: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서소문역사공원

윤승현 광안리 하얀 수녀원이 건축가와 클라이언트 상호 간의 철저한 ‘존중’에 기반해 진행됐다면 우리는 기존 건물에 대한 철저한 ‘반감’에서 출발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쉬운 말로 설명하면 이 땅의 공간을 요긴하게 썼지만 성의껏 가꿔서 좋게 쓴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나무 그늘을 찾아온 노숙자와 인근 주민과의 갈등이 있는 곳, 냄새를 풍기는 지하의 중구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 그리고 운영자의 부도로 점차 슬럼화되고 있던 지하주차장은 시민의 발길을 반기지 못했다.6 그런 가운데 ‘서소문성지’란 사실은 반전을 꾀하는 강력한 근거가 돼주었다.

2011년 7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을 처음 제안했다. 2012년 12월 제2차 학술심포지엄에서 경기대학교 안창모 교수가 고증해 서소문역사공원 자리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됨으로써 새로운 기회의 동인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7 2014년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설계경기8가 열렸고 지침에 의하면 ‘지상의 근린공원을 역사공원으로 재조성하되 지하 공영주차장 공간을 활용해 전시・기념 공간을 조성하라’고 했다.

서소문근린공원 조감도 / 자료: 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 보이드아키텍트건축사사무소, 레스건축
서소문근린공원 조감 사진 / 사진: 서울시 중구청

부천아트벙커 B39

김광수 부천아트벙커 B39는 원래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쓰레기소각장(삼정동 소각장)으로 쓰던 건물이다. 준공 당시에는 도심 외곽에 위치했으나 시가지가 점점 확장해오는 과정에서 결국 주거지와 그 경계가 만나게 되었다. 철거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원성이 커졌고 다이옥신 파동도 있어 결국 2010년 공식적으로 폐쇄됐다.9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2014년 4월 부천문화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 공모에 지원해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리모델링이 시작되었다.

2015년 설계 공모의 현장설명회에 약 30여 개의 업체가 왔던 것 같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이야기 나눌 정도로 시설 자체의 구조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공사비도 대단히 적었다. 전체 연면적으로 봤을 때 평당 350만 원 남짓의 공사비였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모에 3개 업체만 제출했다고 하더라.(웃음) 나는 이 공간이 갖는 일종의 마력을 느꼈기에 어떻게 되든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당연히 시설을 철거할 것이라고 예상한 주민들 입장에서 리모델링은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은 관련 사례 전시, 아티스트 프로젝트, 시민정책토론회, 워크숍 등과 같은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거듭 주민을 설득하고 중지를 모았다.10

부천아트벙커B39 전경 / 사진: 김용관, 사젠 제공: 스튜디오K웍스
삼정동 소각장 전경 / 사진: 강선준, 사진 제공: 부천시

코스모40

양수인 인천 서구 가좌동의 오래된 산업단지에 있는 코스모40은 2016년 코스모화학이 이전하면서 남겨진 건물을 보수하며 문화상업공간으로 조성한 프로젝트다.11 지역민이었던 클라이언트는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다가 버려진 이 공장 건물을 보고선 ‘이렇게 수직적인 공장은 흔치 않겠다’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웃집 카페인 빈 브라더스와 논의해 공장을 매입했다. ‘이곳에서 뭔가 한번 해보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문화비축기지

허서구 2014년 5월 공고된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재생 및 공원화 사업을 위한 국제설계경기 지침에서 리모델링은 결정된 사안이었다.12 석유비축기지의 구조물과 환경적 특이성이 주목받은 것 같다. 우리는 현장을 사이트라고 명명했다. 밋밋한 땅보다 더욱 복합적인 이야기가 벌어질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1970년대 석유비축기지 조성 당시 항공 사진 / 사진 제공: 허서구
문화비축기지 조성 후 항공 사진 / 사진: 남궁선, 사진 제공: 허서구

성수연방

한승재 그동안 성수연방에 관해 발표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핵심적인 질문이 늘 남았다. ‘왜 리모델링을 선택했을까?’ 우리도 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냐면 비용이 싸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기존 건물 용적을 이용해서 대단하게 특혜를 받은 것도 없다. 차라리 무너뜨리고 신축을 했으면 더욱 저렴하게 더욱 마음에 들게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왜 그랬을까’란 질문을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어떤 공간을 상업 공간으로 리모델링한다면 그 이유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신축 건물에서는 일부러 칠을 벗겨서 흉내를 내지 않는 이상 그 느낌을 얻기 힘드니까 말이다.

성수연방 리모델링 전 공장 전경 / 사진: 푸하하하프렌즈
성수연방 리모델링 후 전경 / 사진:석준기, 사진 제공: 푸하하하프렌즈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분량5,579자 / 10분 / 도판 15장

발행일2021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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